하마구치 류스케의 <우연과 상상 Wheel of Fortune and Fantasy>(2021) 소고, 혹은 트레일러

 

하마구치 류스케의 <우연과 상상 Wheel of Fortune and Fantasy>(2021)을 볼 수 있는 경로(이스탄불국제영화제)를 알려준 친구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자나 깨나>(2018) 이후 하마구치 류스케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Our Apprenticeship>을 경유하지 않고 (대신 구로사와 기요시의 <스파이의 아내>(2020)에 각본가로 참여한 뒤에)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두 작품을 만들었다. (하나는 베를린과 이스탄불에서, 다른 하나는 칸에서 공개되었다.) 이중 먼저 공개된 <우연과 상상>(2021)의 구성은 간단하다. 세 개의 단편 모음. 오프닝 타이틀에서 이미 밝히고 있다시피 <우연과 상상>은 하마구치의 '단편집'(短編集)이다. 각 35분(제1화), 45분(제2화), 40분(제3화) 정도로 구성된 세 개의 단편은 별 기교 없이 차례로 이어진다. 심지어 (얼핏 보면, <우연과 상상>에서 최근 일련의 홍상수 영화의 분위기가 감지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와 달리) '같은 배우'가 세 개의 단편에 걸쳐 반복 등장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독립된 세 개의 단편이 나열된다. 여기서 '독립'이라는 단어는 주의해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 개의 단편이 아무 연관성 없이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잠깐. 논의할 주제를 계속 확장하지 않고, 좁혀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우선적으로 밝힐 것이 있다. 바로 이 글은 <우연과 상상>에 관한 전방위적 분석이나 비평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려, 이미 제목에서 밝힌 바대로, 이 글은 <우연과 상상>에 관한 하나의 소고(小考), 혹은 이 영화 안으로 입장(入場)하는 것을 돕는 트레일러(trail-er)가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트레일러는 아니다. 따라서 이 밑으로는 스포일러가 가득하다.

 다시, 논의의 폭을 좁히겠다는 말로 돌아가 보자. 이 글에서 특기하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다. 바로 대화의 '장소'와 단편들의 배치 '순서'다. 그런데 이 두 개의 항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아무래도 각 화(話)의 제목과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먼저, 제목. 제1화는 '마법 (혹은 덜 확신하는 것)', 제2화는 '활짝 열린 문', 제3화는 '다시 한번'이다. 그다음,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제1화: 메이코, 츠구미, 카즈아키가 중심인물이다. 패션모델 메이코와 모델 어시스턴트 츠구미는 절친이다. 한편,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의 사장인 카즈아키는 메이코의 2년 전 남자친구이며, 최근 츠구미와 만남을 가졌고, 그 만남을 이어가려고 하는 상황이다. 

 길거리에서 메이코는 화보 촬영을 한다. 촬영 일을 다 마치자 저녁이 되고, 메이코와 츠구미는 같이 택시를 타고 귀가한다. 이때 둘은 대화를 쉬지 않고 하게 되는데, 대화의 주된 내용은 츠구미와 카즈아키 간의 만남에 관한 것이다. 츠구미는 카즈아키와 대화가 잘 통했으며, 서로 성적인 에로틱함을 느꼈으나, 더 진도를 나가지 않았는데, 이것이 아쉽다고 메이코에게 토로한다. 이에 츠구미는 진도를 나가지 못했던 것이 카즈아키의 상처, 즉 2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 때문인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인다. 츠구미는 카즈아키와 보낸 시간이 '마법 같은 시간'(magical time)이었음을 강조한다. 츠구미가 택시에서 내린 직후, 메이코는 기사에게 같은 길을 돌아갈 수 있는지 묻는다. 그렇게 아오야마 지역에 도착한 메이코는 카즈아키 회사 사무실로 들어간다. 다소 즉흥적인 사무실 방문의 계기는 바로 메이코가 츠구미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츠구미가 말하는 카즈아키가 자기가 과거에 사귀었던 그 카즈아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들이닥친 메이코는 카즈아키에게 다짜고짜 (그가 츠구미와 보냈던) '마법 같은 시간'을 조롱하듯이 얘기한다. 그리고 둘은 과거 연애에 관한, 그리고 서로의 진심과 숨겨진 진실에 관한 입씨름을 계속한다. 결국, 충동적으로 카즈아키가 메이코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메이코는 "너는 나랑 맞지 않아. 너랑 (츠)구미가 좋은 커플이 될 거야."라고 답하며, 이에 "마법보다 덜 확신하는 것을 감히 믿어 볼래?"라고 덧붙인다. 이 말 직후 카즈아키는 메이코를 포옹한다. 그 순간 퇴근했던 직원이 돌아온다. 메이코가 사무실 밖으로 부리나케 뛰어나가고, 카즈아키는 그녀를 쫓아가려다 포기한다. 3일 뒤로 점핑한다. 한 카페에서 메이코와 츠구미가 웃으며 대화를 한다.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던 카즈아키가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츠구미의 소개로 메이코와 카즈아키는 서로 인사한다. 그런데 갑자기 메이코는 츠구미에게 자신이 카즈아키 사무실을 찾아갔던 일을 고백하며, "내가 카즈(아키)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선언한다. 이 말을 들은 츠구미가 자리를 박차고 떠나자, 카즈아키가 따라 나간다. 이때 고개를 숙인 메이코 줌인. 하지만, 방금 고백은 상상이었다. 다시, 자기소개의 순간. 이번에는 메이코가 카페 밖으로 나간다. 야외에서 걷다가 문득 메이코는 스마트폰을 꺼내 풍경을 찍는다. 프레임 밖으로 메이코가 나간 뒤 카메라가 위를 향한다. 꽃이 보인다.

(2) 제2화: 세가와, 사사키, 나오가 중심인물이다. 세가와는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교수이며, 자신의 교수실 문을 항상 열어두는 것을 선호한다. 한편, 사사키와 나오는 모두 대학생이며, 둘은 섹스 파트너의 관계를 맺고 있다. 사사키는 세가와 교수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 모욕감을 느끼고 ('미인계'(honeytrap)를 통한) 복수를 꿈꾸고 있으며, 이를 파트너인 나오에게 부탁한다. 나오는 이미 결혼을 해서 딸까지 있지만, 사사키에게 끌려 육체적 관계를 맺으며, 사사키의 부탁을 수락하여 세가와 교수를 찾아간다.

 나오는 세가와에게 수상을 축하하며,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특이하게도 나오는 책의 겉표지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페이지에 사인을 요청한다. 그리고 나오는 세가와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가령, 결혼은 했는지 여부와 (사인을 받은 페이지의) 몇몇 구절에 관한 의미에 대해서 말이다. 이에 세가와는 자신은 싱글이며, (오랜 시간을 들여 나오가 직접 낭독한) 상당히 외설적인 구절을 쓰게 된 것엔 다소 복잡한 이유가 있다고 답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스토리의 구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단어들 간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배치(의 문제) 때문이다. 계속하여 나오는, 교수실에 온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이 읽은 구절과 관련하여 세가와에게 난감한 질문을 퍼붓는다. 즉, "이 장면을 쓰면서 발기하셨나요?"와 같은 질문. 세가와는 (이상함을 감지하면서도) 나오에게 솔직하게 답을 해준다: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것이 그 장면이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이거든." 이런 답변의 솔직함에 동화가 된 것인지, 혹은 활짝 열린 문이 신경이 쓰여서인지 계속 서 있던 나오는 세가와 옆에 앉아,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관계 맺음', '성적 유혹', '강한 의지' 등에 관한 얘기들. 그러다 나오는 돌발적으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며, (교수실 안에 들어온 뒤에 한 모든 대화를) 녹음 중이던 스마트폰을 세가와에게 보여준다. 세가와는 화가 나서 녹음본을 달라고 말한다. 특히 나오가 낭독한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말이다. 동시에 세가와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자신의 글을 읽어준 나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이에 나오는 녹음본을 줄 테니 이걸 들으면서 한 번 이상 자위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를 수락한 세가와는 나오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녹음본을 받기로 한다. 문제는 나오가 집에서 이메일을 보내는 과정 중에 발생한다. 사가와 익스프레스가 배달 인수증(delivery note)을 놓고 가서, 남편과 딸이 사가와를 반복해서 말하는 바람에, 나오는 세가와가 아니라 사가와에게 이메일을 보내게 된다. 이때 노트북 화면 줌인. 그리고 5년 뒤로 점핑한다. 버스에서 나오는 우연히 사사키를 만난다. 사사키에 따르면, 나오가 이메일을 잘못 보내서 세가와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나오는 이혼을 하게 되었다. 한편, 사사키는 2살 연상인 동료와 결혼을 했다. 이에 나오는 결혼을 축하하고, 행복하길 바란다며 사사키에게 굿바이 키스를 하고 버스에서 내린다. 물론 자신의 명함을 건네준 뒤에 말이다. 사사키가 탄 버스가 터널 안으로 들어선다.

(3) 제3화: 나츠코와 아야가 중심인물이다. 나츠코와 아야는 모두 센다이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특히, 나츠코는 미야기여고를, 아야는 센다이고를 졸업했다. 나츠코는 시스템 엔지니어, 즉 IT업계 종사자이지만, 현재는 실업 중이며, 도쿄에 거주하고 있고, 레즈비언이다. 고등학교 졸업 때쯤 사귀었던 애인을 찾기 위해 모교 동창회 방문차 센다이에 1박 2일 체류한다. 아야는 결혼을 해서 주부이며 차 클래스(tea class)를 운영한다. 남편은 제약회사 연구개발원이며,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다. 한편, 제3화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면서 시작한다. 즉, 2019년부터 퍼지게 된 '제론'(Xeron)이라는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종류의 정보, 자료가 유출되어 세계는 오프라인이 되고, 우편과 전보 시절로 돌아갔다는 상황.

 결국 찾고 있던 사람을 동창회에서 만나지 못한 나츠코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고등학생 시절 자주 가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센다이역으로 향한다. 나츠코는 센다이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이때, 반대편에서, 즉 내려가는 방향의 에스컬레이터를 탄 흰옷을 입은 여인(아야)을 우연히 보게 된다. 시선의 교환. (이때 우리는 나츠코의 얼굴, 즉 표정을 볼 수 없다. 카메라가 나츠코 뒤에 있기 때문이다.) 나츠코는 다시 내려간다. 그 여인도 다시 올라온다. 둘은 서로 찾던 사람을 본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더 얘기를 나누고자 나츠코는 여인의 집에 같이 가기로 한다. 집으로 가면서 여인은 나츠코에게 센다이에 왜 왔는지, 동창회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등을 묻는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도중에 여인의 이웃을 만나기도 한다. 이때 나츠코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약간 초현실적이네."(It's kind of surreal.) '고바야시'라는 명패가 달린 집 안으로 나츠코가 들어선다. 여인이 차를 준비하는 동안 나츠코는 집 안을 살피면서 여인의 가족의 신상을 묻는다. 여인은 바이러스와 관련해서 남편 얘기를 하고, 피규어와 관련해서 아들 얘기를 하며, 피아노 관련해서 딸 얘기를 한다. 사실, 나츠코가 이렇게 여인의 가족과 관련된 정보를 캐묻는 것은 자기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사는 삶이 행복한지 묻기 위해서다. 실제로 나츠코는 여인에게 행복한지 묻는다. 이와 관련해서 둘이 얘기를 주고받다, 문득 여인이 나츠코에게 "솔직히 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라고 말한다. 동시에 자기 이름은 아는지 묻는다. 이때 여인의 이름이 공개된다. 바로 고바야시 아야. (결혼 전엔 노무라 아야.) 즉, 나츠코가 찾고 있던 유키 미카가 아닌 것이다. (한편, 아직 나츠코의 이름은 아야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아야가 나츠코를 반겼던 이유는 나츠코의 놀란 표정 때문이었다. 즉, 아야는 나츠코를 도쿄로 간 자신의 친구로 오인한 것이다. 아야가 나츠코가 찾는 미카가 아니라는 것은 둘의 출신 고교가 다르다는 사실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나츠코가 떠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우연히 아야 아들의 택배가 도착한다. 택배원에 의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막힌 나츠코는 자연스레 아야의 집에 좀 더 머무르게 된다. 아야가 나츠코에게 미카에 관해 묻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미카는 고등학교 졸업 때쯤의 나츠코의 애인이었다. 하지만 나츠코가 도쿄로 가게 되면서, 미카는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그리고 미카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이제 아야가 자신의 남편 얘기를 꺼낸다. 바이러스로 인해 이메일 오발송 문제가 발생하여, 남편의 이메일이 아야에게 전송되었다. 그래서 아야는 남편이 고등학생 시절 사귀었던 전 여자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하지만, 아야는 남편의 문장이 '잘 쓰였다'고 생각하며, 이메일을 읽은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다. 남편과 불편해질 것을 우려해서다. 나츠코가 갑자기 일어난다. 아야에게서 미카가 계속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야의 바이브(vibe) 때문이다. 

 이때 아야가 나츠코에게 역할극을 제안한다. 자신이 미카 역을 맡겠다는 것이다. 아야가 나츠코에게 (늦었지만) 이름을 묻는다. 이에 대한 답. 히구치 나츠코. 역할극이 시작된다. 나츠코는 하고 싶었던 말을 (아야가 연기하는) 미카에게 한다. "네가 내 유일한 사랑이었어." "내가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고 싶었어." "나는 이제 알았어, 고통이 우리 삶에서 필수적이었다는 것을 말이야." "너는 분명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을 갖고 있어. (투 숏에서 아야 바스트 숏으로 전환.) 내가 그 구멍을 채울 방법은 없어. (리버스 숏. 나츠코 바스트 숏으로 전환.) 그러나 나도 너와 같은 구멍을 가지고 있지. 우리는 아마 여전히 그 구멍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을 거야. 그걸 말하려고 여기에 온 거야." 이 역할극은 아야의 아들이 귀가하면서 종결된다. 나츠코가 떠날 채비를 한다. 아야는 나츠코를 배웅하기 위해서 센다이역까지 같이 가게 된다. 역 앞에서 나츠코는 아야에게 "나를 누구로 착각한 거야?"라고 묻는다. 아야는 고등학생 시절 점심시간에 같이 피아노를 치며 대화를 나누던 보이시한 여자애라 답한다. 둘은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이때 나츠코는 아야에게 역할극을 다시 한번 하자고 제안한다. 이번엔 나츠코가 아야를 위해 보이시한 피아니스트 역을 맡는다. 우연한 만남으로 가장하며 시작된 역할극. 아야와 (나츠코가 연기하는) 야아의 친구는 서로 반가워한다. 친구가 안부를 묻자, 아야는 자신의 고민을 얘기한다. "나는 더 이상 어떤 것에도 열정적이지 않아.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 시간이 천천히 날 죽여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게 되어 미안해." 이에 친구는 "네가 유일하게 내게 다가와 준 사람이야. 단 한 발자국이었지만, 그건 내게 큰 의미였어. 너는 내 유일한 빛이었어. (...) 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능력을 갖고 있어. 그걸 반드시 기억해줘."라고 답한다. 서로에게 고마워하며, 둘은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나츠코는 프레임 오른쪽으로 향한다. 아야는 왼쪽으로 향하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카메라는 아야 뒤에 있다. 갑자기 아야가 아래로 뛰어 내려가 다시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마치 카메라는 이 상황을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는 듯이 아야를 물리적으로 따라가지 못하고, 그저 부리나케 왼쪽으로(정확히는 좌상단 쪽으로) 시선을 돌려 반대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뛰어가는 아야를 포착한다. 아야가 뛰어가 나츠코를 붙잡는다. 그리고 그 여자애 이름이 생각났다고 말한다. 바로 노조미. 둘 다 동시에 "노조미!"라 외치며 포옹한다. 나츠코가 노조미의 성을 묻지만, 아야는 기억나지 않는다. 둘은 다시 한번 포옹한다.

첫 번째. 대화의 '장소' (⇢ 대화의 '종결')
 아마 세 이야기를 어떤 뜰채로 엮어 내느냐에 따라 <우연과 상상>은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미 고지한 두 개의 기준에 따라 <우연과 상상>을 정리할 생각이다. 즉, 대화의 '장소'와 단편들의 배치 '순서'에 따라서 말이다. 먼저, 대화의 '장소'다. 그런데 나는 대화가 아니라 장소를 강조해 두었다. 사실, <우연과 상상>은 가히 대화의 영화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사량이 상당히 많고, 실제로 대화가 한번 시작되면 어떤 계기에 의해서가 아니면 끊기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하마구치가 대화를 담아내는 방법', '대화 장면에서 하마구치의 카메라 위치' 등 공학적인 측면에서의 분석론을 펼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나는 대화가 어떤 계기에 의해서 끊기게 되는가, 그것에 관심을 두고 따져보려고 한다. 이 계기와 관련하여, 우선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것이 바로 대화의 '장소'다. 각 화에서 대화의 장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에 각 장소의 대화자들을 병기한다. 단, 영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화의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인물에는 취소선 표시를 해둔다.)

(a) 제1화: 길거리(메이코, 츠구미, 스태프들), 택시(메이코, 츠구미, 택시기사), 사무실(메이코, 카즈아키, 직원), 카페(메이코, 츠구미, 카즈아키, 직원 및 타 손님들

(b) 제2화: 강의실(교습자, 학생들), 교수실(세가와, 사사키, 타 교습자), 사사키 집(사사키, 나오, (TV속) 세가와), 교수실(세가와, 나오, (바깥의) 타 학생들), 나오 집(나오, 남편과 딸), 버스(나오, 사사키, 버스기사, 졸고 있는 타 승객들

(c) 제3화: 동창회(나츠코, 기요미야, 타 졸업생들), 식당(나츠코, 식당 주인, 타 손님들), 육교⇢길거리(나츠코, 아야), 집 앞 골목길(나츠코, 아야, 아야 이웃), 아야 집(나츠코, 아야, 택배 배달원, 아야 아들 케이), 집 앞 골목길⇢길거리⇢육교(나츠코, 아야)

 이 장소들을 몇 가지 기준을 세워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실내 혹은 야외', '공적인 장소 혹은 사적인 장소', '정지 혹은 이동' 등에 의해서 말이다. 사실, 제1화의 시작, 길거리에서 화보 촬영을 할 때 단순 의견 교환 수준의 대화를 제외하고, 제1화와 제2화에서 대화의 장소는 전부 실내다. (몇몇 야외 장면을 상기하면 다음과 같다. 제1화에서 메이코는 택시에서 내려 사무실을 올라가거나,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길거리에서 방황하거나, 카페에서 빠져나와 풍경을 찍는다. 또한 제2화에서 나오는 지하철을 타고, 걸어서 세가와 교수실을 방문한다. 하지만 이 야외 장면들에서 대화가 이루어지진 않는다. 대화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내라고 하여 전부 사적인 장소는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집은 섹스를 하거나(사사키 집), 외설적인 내용인 담긴 녹음본을 이메일로 보낼 수 있는(나오 집) 사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지만, 사무실, 카페, 교수실은 포옹을 하거나(사무실), 소동을 피우거나(카페), 소설의 외설적 구절을 읽기엔(교수실) 다소 적합하지 않은 공적인 장소라 할 수 있다. 특히 사무실에는 직원이, 카페에는 다른 손님이, 교수실(의 주인은 심지어 문을 열어두는 것을 선호한다.)에는 다른 학생이 언제든 오고 갈 수 있다. 여기서 또 다른 축을 더해볼 수 있겠다. 실내는 기본적으로 정지의 상태에 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바로 교통수단, 특히 택시와 버스 안의 경우. 택시와 버스 안은 실내이긴 하지만 계속 이동을 하는 공간이기에, 만약 (가족, 룸메이트, 파트너 등의 관계를 이유로) 같은 집 혹은 같은 목적지를 향하지 않는 이상 동승의 관계(즉, 대화의 지속)는(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으며, 한편 직접 개인 차를 운전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과 달리 제삼자, 즉 기사나 다른 손님 등이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에 관한 보충적 설명. 제1화에서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뒷자리를 확인하는 숏이 삽입되긴 하지만, 이 고급택시(히노마루 리무진)의 기사는 묵묵히 운전할 뿐 메이코와 츠구미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다. 또한, 제2화에서 버스기사는 물리적인 거리상 사사키와 나오의 대화에 참여할 수 없고, 뒤에 앉아 있는 손님들은 모두 졸고 있다. 따라서 택시 및 버스에서 기사나 다른 손님들을 두고 단적인 대화의 참여자나 시청자라 할 수는 없다. 그래서일까. 제1화와 제2화에서의 인물은 주변 사람들의 존재에 영향을 받아 대화의 주제를 바꾸거나, 범위를 좁히지 않는다. 가령, 택시에서 메이코와 츠구미는 연애와 섹스를 소재로 스스럼없이 대화하며, 버스에서 사사키는 나오의 이메일 오발송 사건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이에 나오는 사사키에게 굿바이 키스를 한다.)

 이어서, 이제 하마구치가 대화의 플로(flow)를 끊는 방식을 살펴볼 차례다. 그런데 왜 대화가 끊기는 순간이 중요한가? 잠깐 우회. <우연과 상상>에서 하마구치가 한 것은 오직 인물들 간의 대화를 찍은 것이다. 영화에서 대화하지 않는 장면은 최소화되어 있는데, 있다고 하더라도 지속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렇다면 왜 하마구치는 대화에 집착하는가? 물론 (세가와의 표현을 빌리자면) 복잡한 이유가 있을 테다. 여기서 하이데거의 유명한 말인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를 인용하는 것은 논의의 범위를 너무 확장하는 일일 것이다. 대신 하마구치의 말을 상기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마구치는 말의 힘을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마구치는 “대화하는 행위 자체에 굉장한 희망이 담겨있다."라고 믿는다. 이와 관련하여, 하마구치는 특히 ‘진실한 발음(發音)’, 즉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물리적 측면에서 볼 때, 소리는 음원으로부터 방사되는 압력파가 매질 내에서 전달되는 것이다. 소리가 일으키는 파동을 음파라 하고, 또 매질은 어떤 파동(혹은 물리적 작용)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매개물 역할을 한다. 공기나 물 같은 것들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목소리도 소리다. 공기를 통해 전달된다. 하지만 이제 공기는 2019년 이전의 공기(의 의미)와 다르기 때문에 (김곡의 용어인) '분위기'로 단순히 치환될 수 없다. 갑자기 2019년? 그렇다. 대화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만 하는 새로운 축이 추가된 해. 물론 <우연과 상상>에서 하마구치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혹은 마스크라는 물리적 장치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 이 새로운 축을 염두에 두고 있다. 따라서 공기를 여전히 분위기로 볼 수 있다면, 이때 분위기는 일차원적인 압박감을 넘어서 일종의 의심과 불안의 압박감을 내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맞다. (불안? 하이데거에 의하면, 불안은 공포와 구분된다. 어떤 것 앞에서 두려워 떠는지가 밝혀져 있지 않을 때가 불안이고, 밝혀져 있을 때가 공포다.) 이런 맥락에서, 하마구치가 여러 차례 말했던 '운'과 '우연'의 의미를 달리 해석할 수 있다: '운'과 '우연'은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가령, 제1화와 제2화의 이야기. 두 이야기는 우연한 계기(제1화, 택시에서의 대화) 혹은 실수(제2화, 이메일 오발송)에 의해 인물들 간의 관계에 금이 가고, 그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이야기다. 다소 거칠게 요약하면, 제1화와 제2화는 우연의 불운화 과정의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의 플로 자체가 하나의 은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축을 염두에 둔 은유다.

 여기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대화가 끊기는 순간이 중요한가? 당연한 말이지만, 대화는 무한히 지속될 수 없다. 대화가 시작되면 어느 순간에는 끝나야 한다. 이는 영화가 시작되면 어느 순간에 끝나(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1988-1998) 4(b) 13분경에 의미심장한 말이 나온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문제는 어디서 그리고 왜 숏이 시작하는지와 어디서 그리고 왜 숏이 끝나는지인 것 같다."(Le seul grand problème du cinéma me semble être où et pourquoi commencer un plan et où et pourquoi le finir.) 여기서 '숏'을 '대화 (장면)'(으)로 바꿔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하마구치는 새로운 축을 염두에 두며 대화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종결시킨다. <우연과 상상> 내의 대화를 분류하면, 크게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바로 '상황상 어쩔 수 없이 종결되는 경우'와 '새로운 인물이 등장(혹은 개입, 참여 등)해서 종결(혹은 일시정지(pause))되는 경우'다. 전자의 사례로, 택시나 버스에서 동승자가 내려야 하는 경우(츠구미와 나오의 목적지 도착), 성적 충동에 사로잡히는 경우(사사키와 나오),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 경우(세가와와 나오) 등이 있다. 사실, 이런 경우들은 대부분의 영화에서 대화를 종결시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지점은 후자의 사례다. 일단 '새로운 인물의 등장(혹은 개입, 참여 등)'은 단순히 같은 장소 내에 대화의 장(場) 밖에, 즉 프레임 밖에 제삼자의 누군가가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외려 그 '새로운 인물'이 이미 대화 중인 두 인물 사이에,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나 대화의 플로를 컷하여 대화의 장의 공기를 바꾼다는 것을 뜻한다. 갑작스러운 등장의 상황? 이는 <자나 깨나>에서 오사카로 떠나기 전날 저녁 친구들과 식사 및 대화를 하던 아사코와 료헤이 커플 앞에 바쿠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우연과 상상>의 규칙은 <자나 깨나>의 규칙과 다르다. 제1화와 제2화에 국한해서 생각해볼 때, <우연과 상상>에는 <자나 깨나>에서처럼 4명(가령, 아사코-마야 집: 아사코, 료헤이, 마야, 쿠시하시)이나 5명(가령, 식당: 아사코, 료헤이, 마야, 쿠시하시, 하루요)이 대화하는 장면은 없기 때문이다. 즉, 4명 이상의 인원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경우는 없다. 아니, 사실 있다. 그런데 특수한 상황에 국한된다. 가령, '일'과 '교육'에 관련될 때, 즉 길거리에서 모델과 스태프들이 화보를 촬영할 때와 강의실에서 교습자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4인 이상이 한 프레임에 담긴다. 이때 이들은 물론 대화를 한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테다: 하마구치는 <우연과 상상>에서 (은밀한) 방역지침의 논리하에서 특수한 경우(즉, 일과 교육의 경우)가 아니고선 대화자의 수(혹은 프레임 안의 사람의 수--물론 하마구치는 무조건적으로 한 프레임에 두 명을 욱여넣지 않는다. 숏을 분할해서 한 명씩 보여주거나 숏/리버스 숏도 활용한다.)를 제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택시에서 메이코와 츠구미 2명(기사 제외), 사무실에서 메이코와 카즈아키 2명(직원이 추가되며 3명), 카페에서 메이코와 츠구미 2명(카즈아키가 추가되며 3명, 직원 및 타 손님들 제외), 교수실에서 세가와와 사사키 2명(타 교습자가 추가되며 3명), 사사키 집에서 사사키와 나오 2명(TV-이미지의 세가와까지 친다면 3명), 교수실에서 세가와와 나오 2명(문이 열려 있어 (교수실 바깥에서 안을 바라보는 숏일 때) 특정 순간마다 X명이 추가되며 2+X명), 나오 집에서 나오 1명(남편과 딸이 동시에 추가되며 3명. 그런데 카메라의 시선은 노트북 모니터에 고정되어 인물들이 제대로 보이진 않는다.), 버스에서 사사키와 나오 2명(기사 및 졸고 있는 타 승객들 제외).

 따져봐야 할 것은 바로 '추가되며'의 상황이다. 새로운 인물이 갑작스럽게 등장할 때의 상황. 첫 번째 질문. 새로운 인물은 어떻게 등장하는가? 이미 대화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에 입장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두 번째 질문. 새로운 인물은 어떤 장소에 등장하는가? (앞서 한 분류에 따르면) 실내 중 정지된 상태의 공적인 장소에 등장한다. (물론 새로운 인물은 사적인 장소라 할 수 있는 나오 집에서도 등장한다. 바로 남편과 딸. 하지만 나오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따라서 여기서 제외한다.) 종합적 질문. 새로운 인물이 이미 대화가 벌어지고 있는, 실내 중 정지된 상태의 공적인 장소에 입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대화가 끊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적인 대화, 즉 그 '둘'만의 대화가 끊긴다. 가령, 사무실에서 메이코와 카즈아키의 대화는 퇴근했던 직원이 돌아오면서 끊긴다. 카페에서 메이코와 츠구미의 대화는 카즈아키가 카페에 들어오게 되면서 끊긴다. 교수실에서 세가와와 사사키의 대화는 타 교습자가 들어오게 되면서 끊긴다. (교수실은 한 번 더 나온다. 같은 장소이지만 세가와와 나오가 대화할 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오가 닫은 문을 세가와가 다시 열어둠으로써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세가와가 문을 여는 순간 잠시 대화가 끊긴다. 하지만, 다른 경우처럼 아예 끊기진 않는다.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다만, 활짝 열린 문에 의해 나오가 이끌던 대화의 플로는 점차 원래 계획과 다르게 흘러간다.) 통상적으로 영화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과 상상>에선 문제가 된다. 달리 말하자면, <우연과 상상>에서 두 사람이 대화 중일 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마냥 좋은 일이 아니다. 외려 이는 그 둘로 하여금 경계 태세를 취하게 만드는 일이다. 경계 태세? 이는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사람 때문에 새로운 공기가 형성되어서, 그 새로운 공기를 마셔야 하기 때문에 취해지는 태세다. 하마구치가 생각할 때, 이 태세의 적합한 표현 방식은 바로 대화의 '종결(혹은 일시정지)'이다. 일종의 숨참음, 즉 공기 공유의 거부. <우연과 상상>에서 두 명은 대화할 수 있지만, 세 명은 대화할 수 없다. 새로운 사람이 추가되어 둘에서 셋이 되는 순간 (그 둘의) 대화는 붕괴되며, 한 사람이 떠나버리던가(사무실에서 직원 인, 메이코 아웃. 카페에서 카즈아키 인, (상상 이후) 메이코 아웃.) 한 사람만 남게 된다(카페에서 카즈아키 인, (상상 속에서) 츠구미, 카즈아키 아웃. 교수실에서 타 교습자 인, (프레임 안에) 사사키, 타 교습자 아웃, 즉 엎드려 있는 사사키를 바라보는 세가와 타이트 숏으로 씬 종결.). 요컨대, 이것이 한편으로는 <우연과 상상> 내 하나의 규칙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하마구치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새로운 축을 (은밀하게) 전제하고 있다는 증거다.

두 번째. 단편들의 배치 '순서'
 <우연과 상상>에서 하마구치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새로운 축을 (은밀하게) 염두에 두면서, 대화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일종의 실험을 하고 있다, 고 말할 수 있다면, 이 가설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제3화다. 특히 단편들의 배치 '순서'라는 기준에서 봤을 때 말이다.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지금껏 나는 의도적으로 제3화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제3화를 제1화, 제2화와 분리하기 위해서다. 아니, 분리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제3화는 제1화, 제2화와 달리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 공간? 갑자기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의 SF적 세계관을 공유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제3화의 도입부를 떠올려보면, 특이하게도 롤링 텍스트가 삽입된다. 텍스트를 요약하면, 2019년 이후 '제론'이라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해 세상이 오프라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3화는 분명 센다이라는 현실 속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센다이는 현실에서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공간이다. 달리 말해, 2019년 이후로 오프라인이 되어버린 센다이는 하마구치가 상상해낸 가상 공간이다. 이 괴상한 공간에서도 하마구치의 (은밀한) 새로운 축은 여전히 이어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공간에서 두 명의 인물, 즉 나츠코와 아야는 실내뿐만 아니라 야외에서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이 대화는 특수한 경우, 즉 일이나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분명 앞선 두 화와 다른 지점이다. 내친김에 제3화와 제1화, 제2화 간의 여러 차이점을 떠올려 보자. 대화의 장소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플로나 중심인물의 수(數)에서도 차이가 있다. 먼저, 이야기의 플로. 제1화와 제2화는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의 인물 둘(메이코와 츠구미, 사사키와 나오)이 어떤 우연한 계기(택시에서의 대화) 혹은 실수(이메일 오발송)에 의해 그 관계에 금이 가는 과정을 다룬다. 반면, 제3화는 전혀 모르는 (그러나 서로 아는 사람이라고 오인한) 인물 둘(나츠코와 아야)이 서로에 대해서 탐색하고, 우정을 다지는 과정을 다룬다. 그다음, 크레딧에 떠오른 이름의 수. 즉, 각 화의 중심인물의 수. 제1화와 제2화에서의 크레딧엔 3명의 이름이 떠오르지만, 제3화에서는 2명의 이름뿐이다.

 하마구치는 세 개의 이야기 중 나츠코와 아야의 이야기를 <우연과 상상> 마지막에 배치하면서, 마치 제3화를 제1화와 제2화에 대한 어떤 응답처럼 읽히게끔 만들었다. (<우연과 상상>의 메인 포스터가 제3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어떤 응답? 바로 희망의 응답. 더 이상 '운'과 '우연'이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제1화와 제2화), 그렇다고 해서 그 두 항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새로운 관계, 새로운 우정을 만들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제3화). 사실, 운과 우연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 아니다. 운과 우연의 상황은 그저 우리 앞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다만, <우연과 상상>에서 운과 우연은 대화의 플로에 따라 얼마든지 불운화도 되고, 행운화도 된다. 결국 대화. 대화가 중요하다. 정확히는, 대화의 플로가 중요하다. 하마구치는 여전히 대화의 힘을 믿는다.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것보다 대립과 갈등이 생기더라도 대화하는 것이 낫다고 믿는다. 심지어 하마구치는 상처와 균열이 대화를 통한 교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대화를 가로막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새로운 축이 갑작스럽게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제 대화하는 데 있어서 이 새로운 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바이러스에 이미 감염된 자를 포함하고 있을) 불특정 다수가 돌아다니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의심과 불안의 상태에 있지 않으면서, 대화를 한다는 것을 (심지어 포옹까지 한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하마구치는 이 문제를 제3화로 정한 나츠코와 아야의 이야기에서 괴상한 방식으로 해결한다. 바로 모두가 바이러스에 걸리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바이러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컴퓨터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정보가 유출되었고, 이메일이 오발송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라인, 카톡, 페메 따위를 쓰지 않고, 우편과 전보를 활용한다. 이것이 하마구치가 제3화에서 디폴트로 설정한 것이다. 이런 설정에서, 역설적이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닌 대면해서 대화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츠코가 미카와 교류하기 위해 도쿄에서 센다이까지 온 것이다. 물론 나츠코가 미카에게 우편이나 전보를 할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둘이 헤어진 지 오래된 상태에서, 더욱이 온라인에서 미카의 개인정보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방식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결국 나츠코가 미카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만나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츠코는 미카를 만나지 못했다. 대신에 미카로 오인한 아야를 만났다. 그리고 대화했다. 아니,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나츠코와 아야는 발화하여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그런 대화 상대방을 (은연중에 계속)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하마구치가 현실의 바이러스의 성질을 비틀어 가상의 바이러스를 만든 다음, 모두를 그 바이러스에 걸리게 한 뒤에, 대면하여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무대를 짠 것도 한몫했다.

 이 새로운 무대의 중심인물인 나츠코와 아야는 기억의 문제를 갖고 있다. 즉, 둘은 각자 자신의 친구의 얼굴이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갖게 된 것에 오프라인된 세상의 시스템(특히, 제1화, 제2화와 달리 제3화에는 스마트폰이 등장하지 않는다.)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츠코와 아야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사실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츠코와 아야가 대화를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나츠코와 아야의 첫 만남에서 아야가 받아야 하는 택배 때문에 차를 마시러 가지 못한다고 했을 때도(이는 아야가 나츠코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면서 해결된다.), 서로를 각자의 친구로 오인했음을 깨닫게 된 순간에도(이는 택배 배달원에 의해 떠나려고 하던 나츠코가 아야 집에 좀 더 머물게 되면서 해결된다.), 둘은 대화를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이때 '이어가려고 한다'에서 '-려고'라는 연결 어미는 노력과 의지의 의미를 내포한다. 즉, 나츠코와 아야는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대화의 의지가 있다. 심지어 그 의지가 강하다. 강하기 때문에, 대화는 역할극으로까지 확장된다. 역할극? <자나 깨나>에 이어 <우연과 상상> 제3화에서도 역할극의 문제가 대두된다. (나는 <자나 깨나>에서 아사코, 바쿠, 료헤이 간의 관계의 역전과 반복을 두고 '역지사지의 상황 재현'이라는 표현을 쓰며, 영화의 후반부를 일종의 역지사지의 드라마 혹은 상황극(역할극)으로 본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나의 다른 글 "<아사코 I & II (자나 깨나)>(2018) 下" 참조.) 하지만 <자나 깨나>의 경우와 달리 <우연과 상상>에서의 역할극은, 분명 프레임 안에 두 명만 있지만, 혹은 대화자는 두 명이지만, 마치 세 명이 있는 것 같은 그런 상황이다: 첫 번째 역할극에서 나츠코와 미카(⇠아야). 그리고 두 번째 역할극에서 아야와 노조미(⇠나츠코). 사실, 이와 같은 역할극은 대화의 심화 과정이며, 특히 대화를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하는 간절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태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둘이 새로운 인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을 맞닥트리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령, 집 앞 골목길에서 아야의 이웃을 만날 때나 집에 택배 배달원 혹은 아야의 아들이 들어왔을 때, 나츠코와 아야의 대화가 일시정지되긴 하지만, 이내 재개된다. (여담. 이 일시정지의 순간이 바로 여전히 하마구치가 (은밀하게) 새로운 축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많은 인원이 몰려 있는 미야기여고 동창회에서 나츠코가 기요미야와 잠깐 대화를 나눈 뒤 성급히 떠나는 경우도 여기에 덧붙일 수 있을 테다.) 재개된 대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아야는 센다이역까지 나츠코를 배웅하면서, 그리고 육교 위에서의 두 번째 역할극이 끝나서 작별 인사를 했음에도, 다시 돌아와 나츠코에게 뛰어가서 대화를 이어가려고 한다. 그 절정은 제3화의 마지막 숏이다. 바로 나츠코와 아야가 껴안고 있는 그 숏. 결국, 제3화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나츠코와 아야가 대화(⇢역할극)를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는데, 그 '다가감'(탐색)이 '이어짐'(우정)에 도달하는 그 과정의 이야기다. 반복해서 강조하자면, 이때 중요한 것은 대화를 지속하려는 둘의 노력과 의지다.

 어쩌면 <우연과 상상>은 <자나 깨나>의 끝에서부터 시작하는 영화일지 모른다. 우리는 <자나 깨나>의 마지막, 아사코와 료헤이가 나란히 서서 집 앞에 흐르는 강을 두고 상반된 반응을 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둘의 관계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둘 사이에 의심과 불안이 싹텄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플로의 이야기를 하마구치는 정확히 <우연과 상상>의 제1화와 제2화에서 반복한다. 그리고 그 둘의 결말 '이후'로서 제3화를 시작한다: 나츠코와 아야는 이미 자신의 친구와 (어떤 이유에서건) 헤어진 상태고, 특히 나츠코는 미카와의 사랑을 잊지 못해서, 아야는 바이러스에 의해 이메일이 오발송되어 남편의 사생활을 알게 되어서 심란한 상태이며, 이런 둘이 우연히 만났는데, (서로가 찾던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음에도)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우연과 상상>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은 하마구치가 나츠코와 아야의 이야기를 제1화와 제2화에 응답할 수 있는 제3화의 자리, 즉 마지막에 배치했다는 사실과 바로 그 이야기가 간절한 태도를 견지하며 대화를 계속 이어가려고 하는 둘의 노력과 의지의 이야기라는 사실에서 일 테다. 불특정 다수가 돌아다니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대화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작금의 현실을 고려할 때, 나츠코와 아야가 헤어지기 직전까지 (집 앞 골목길⇢길거리⇢)육교에서 장시간 대화(⇢역할극)를 나눈다는 것은 하마구치가 희망적 태도를 견지하며 가상의 상황을 상상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숱하게 대화와 껴안음의 순간을 봐왔지만, <우연과 상상>의 마지막 숏에서만큼 이 행위가 간절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이 행위는 이제 단순하고 소박한 행위가 아니라, (과장 아닌 과장을 하자면) 거의 죽음까지 각오해야 가능한 행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우연과 상상> 마지막 숏에서 하마구치는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대화하고 껴안을 수 있을까. 하마구치는 회의주의자가 아니다. 하마구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냈고, 또 찾아낼 것이다. <우연과 상상>은 그 첫 번째 발견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마구치는 <우연과 상상>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우리에게 또 다른 '이후'를 같이 모색하자고 대화를 건네고 있다. 우리는 이 대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응해야 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자료 
1.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이 문장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Martin Heidegger, "Letter on Humanism", Basic Writings: From Being and Time (1927) to The Task of Thinking (1964) (Revised and Expanded Edition), D.F. Krell (trans.), HarperCollins, 1993, p. 237 
2. <영화의 역사(들)> 불어 원문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Jean-Luc Godard, "chapitre quatre (b) les signes parmi nous", Histoire(s) du cinéma (The complete soundtrack), ECM Records, 1999, p. 57 
3. 진성민, "소리 물리학의 기본 개념", 대한음성언어의학회지 22.2(2011), p. 99 
4. 김곡, 『영화란 무엇인가에 관한 15가지 질문』, 갈무리, 2019, p. 127 
5. 정성일, "영화의 바깥, 말하자면 공기에 관하여: 세편의 영화에 관한 세 가지 가정", 『씨네21』 1301호(2021), pp. 78-88 
6. 필자의 다른 글 


추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독자에게. 

2021년 7월 14일 기준, 국내에서 <우연과 상상>을 본 관객이 많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훗날 <우연과 상상>이 국내에 공개된다면, 하마구치 류스케에 관심이 있는 관객은, 이 영화에 관한 리뷰부터 비평까지 여러 형식의 글(혹은 영상)을 쓸(혹은 제작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다양한 글(혹은 영상)이 작성(혹은 제작)되고, 공개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다만, 만약에 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이 글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나 내용을 인용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그리고 실천한다면), 자신의 글(혹은 영상)에 적어도 내 이름이나 블로그 이름(혹은 주소) 정도는 표기해 주었으면 한다. 비평가 타이틀을 달지 않고 글을 쓴다고 해서, 이것이 내 글의 아이디어나 내용을 함부로 가져가는 것을 허락한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는 '글쓰기(혹은 영상) 윤리'와 관련된 문제다. (고다르식 인용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 

물론 언제든 내 글에 관한 피드백(혹은 비판)은 환영한다. 
여하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것에 감사를 표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댓글 1개:

  1. 21.07.29. 수정된 부분 공지.

    (1) 제3화 이야기 정리 부분: 나츠코에 관한 설명 중에 '현재는 실업 중이며'라는 표현을 추가하였다.

    (2) 첫 번째. 대화의 '장소' (⇢ 대화의 '종결'): (c)에서, '육교(나츠코, 아야), 길거리⇢집 앞 골목길(나츠코, 아야, 아야 이웃)'에서 '육교⇢길거리(나츠코, 아야), 집 앞 골목길(나츠코, 아야, 아야 이웃)'으로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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