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 재학 중인 대학교 철학과 내 영화 소모임에서 발제할 때 작성했던 글입니다. (2017년 5월 29일 모임)
-우정-
타이틀이 뜨기 전, 피구 장면을 통해 선이 어떤 아이인가 추측해볼 수 있다. 피구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기 때문에 선이 금을 밟았는지 안 밟았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주변 아이들의 반응이다. 주변 아이들은 선에게 무조건 나가라고 한다. 그때 선과 같은 편인 보라가 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떠밀어서 내보낸다. 이를 통해 선은 반에서 왕따 취급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보라가 반에서 소위 잘나가는 친구임을 알 수 있다.
보라는 경제적,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며 영악한 아이이다. 방학식 날 청소 담당을 선에게 맡기고 그 보상으로 자기 생일에 초대하는 모습 그리고 생일 초대카드에서의 ‘선물 필수, 5,000원 이상’이라는 글귀를 떠올려보자. 심지어 이 초대는 거짓말이었다. 그저 보라는 순진한 선을 이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선은 어떤 아이일까? 분명 보라는 5,000원 이상의 선물을 준비하라고 했으나 선은 기어코 자기 손으로 직접 팔찌를 만든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선은 5,000원도 없는 가난한 아이라는 것을, 다른 한편으로는 선이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선물을 통한 정성, 진심)를 중시하는 아이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방학식 날 반 청소로 돌아가 보자. 보라에게 이용당한 선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친구가 될 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지아이다. (처음부터 지아는 헤드폰을 쓰고 있다. 이후 지아의 헤드폰은 중요한 오브제로서 기능한다.)
이후 육교에서 보라의 거짓 초대에 상심한 선을 먼저 부른 건 지아이다. 그렇게 선과 지아는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선이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다고 말하자, 지아는 곧바로 ‘그럼 친구 많겠네?’라고 말한다. 그만큼 지아의 관심사는 ‘친구’인 것이다. 하지만 선은 고개를 숙인다. 선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설. 초4 때까지 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결국 경제적인 어떤 문제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선의 팔찌를 보며 지아는 바로 ‘이거 얼마 주고 샀어?’라고 묻는다. 이 지점에서 지아는 정신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아이임을 알 수 있다.
선 역시 같이 놀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아에게 팔찌를 선물로 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친해진다. 그 뒤로 놀이터에서 놀면서 서로의 꿈까지 말하게 된다. 그러다 방방을 타러 가는데, 이 지점에서 선과 지아의 경제적 차이가 드러난다. 선은 돈이 없다며 방방을 못 탈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돈이 있는 지아는 선과 놀고 싶기 때문에 기꺼이 자기의 돈을 내고 선과 즐겁게 논다.
선은 ‘방학 때 1주일 정도 지아가 우리 집에서 자면 안 되냐’고 엄마에게 조른다. 엄마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한다. 이때 선의 결정적 한 마디 ‘바다도 안 갔잖아요.’ 이 지점에서 분명 어떤 사연에 의해서 선의 가족이 바다를 못 가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미안한 엄마는, 선의 (어쩌면 처음인) 친구 지아가 집에 와서 같이 지내는 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문방구 장면. 이 지점에서 지아가 ‘돈’을 내지 않고 24색 파버 카스텔 색열필(오픈 마켓 기준 약 1~2만원 내외)을 훔친 것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문방구 아저씨의 정없는 태도가 지아가 도둑질을 하게 된 한 요인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아가 선을 대하는 태도이다. 지아는 선을 좋아한다. 그리고 선의 직접 만든 팔찌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아는 자기가 직접 뭘 만들 순 없기에 (돈을 내지 않고 직접 손으로) 훔쳐서 선물로 준 것이다. 훔친 것에 대해서 선이는 잘못된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갖고 싶었던 거라 내적 딜레마에 빠진다. 윤리와 경제의 충돌. 선은 ‘돈이 없기 때문에’ 이 색연필을 사긴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선은 결국 갖고 싶던 색연필을 손에 쥔다.
그때 지아 엄마로부터 전화가 온다. 그래서 그날 저녁 내내 지아는 우울하다. 선은 지아를 위로하기 위해 봉숭아로 손을 물들여 준다. 이 장면에서 둘은 어떤 정신적 교감을 나눈다. 그래서인지 밤에 지아는 자신의 비밀을 선에게 털어놓게 된다. 즉, 자신의 부모님이 초1 때 이혼했다는 비밀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아는 자신의 엄마와 할머니 사이가 좋지 않다고까지 말하게 된다. 이 얘기를 들은 선 역시 자신의 아빠와 할아버지가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한다. 이렇게 둘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한편 비밀을 토로하는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어른들의 문제가 아이들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렇게 서로의 가정사를 고백함으로써 선과 지아는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어른들의 복잡한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지아와 선은 둘 다 가정환경 때문에 왕따를 당했다. 지아는 이혼한 가정 속에서 자랐고 ‘이혼’으로 인해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그리고 선은 가난한 가정 속에서 자랐다. 아마도 대사를 통해서 유추해보건대 선의 할아버지 때문에 선의 부모님이 어려워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선은 ‘가난’으로 인해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이처럼 어른들의 문제가 아이들의 세계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와 단순히 독립되어 있는 세계가 아니다.
이 장면 뒤에 여름 방학 동안 즐겁게 노는 선과 지아의 모습이 보여진다. 골목길을 지나 시장으로 가고, 그 다음 시냇가에서 놀다가 학교 놀이터로 간다. 학교 놀이터에서 선이 학교를 소개해준다. 그렇게 둘은 우정을 쌓았다. 이 연결 시퀸스에서 처음으로 음악이 삽입되는데, 밝았던 음악이 점차 어두워진다.
-질투-
친구 사이엔 ‘우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28분경을 지나면서 선과 지아 사이에 ‘질투’가 생기기 시작한다. 먼저 지아의 질투가 시작된다. 선은 지아가 좋아하는 ‘오이 김밥’을 엄마에게 싸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까먹어서 선은 엄마에게 ‘빨리 오이 김밥 사주세요’라며 애교를 부린다. 이 장면을 자다가 목격한 지아는 다정한 모녀관계에 질투를 느낀다. 그래서 오이 김밥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헤드폰’을 쓰고 바나나킥을 먹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헤드폰’은 중요한 오브제이다. 헤드폰을 쓴다는 것은 지아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겠다는 뜻을 말하기 때문이다. 즉, 헤드폰 쓰기는 바깥 세상과의 단절을 뜻한다. 한편으로 <토니 에드만>(2016)에서 토니가 ‘틀니’를 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방어 기제를 뜻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때 처음으로 선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이내 둘은 다시 친하게 지낸다. 그러다가 지아네 집에서 학원 숙제를 하던 지아는 선에게 자기와 학원을 같이 다니자고 말한다. 방방 때와 마찬가지로 선은 ‘돈 때문에’ 못 다닐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선의로 지아는 자기 아빠가 돈 내주면 안 되겠냐고 말한다. 이때 선은 이와 같은 선의에 불쾌감을 느끼고 발끈한다. 그때 핸드폰에 과거 지아를 왕따시키던 아이들의 전화가 오고, 이런 어색한 상황을 넘어가기 위해 지아는 선에게 ‘핸드폰 좀 사라’고 말하게 된다.
이 말은, 지아가 어색한 상황을 넘어가기 위해서 혹은 선의 발끈함에 대한 반응이라고 봐야 할까? 물론 그 지적도 맞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핸드폰을 사라고 한 이유(너희 엄마가 나한테만 연락한다. 내가 무슨 심부름꾼이냐)는 그 이전의 지아의 태도를 고려해보면, 분명 선-선의 엄마 사이의 관계를 부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지아의 말은 오이 김밥 때의 질투, 부러움이 누적되어 나온 말이다. 그리고 이때 지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돈’(핸드폰)으로 지아를 누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은 병원 장면에서, 할아버지를 찾아 뵙고 아빠 차로 돌아온 엄마에게 핸드폰을 사달라고 조르게 된다. 선은 지아와 고작 ‘핸드폰’ 때문에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심각한 대화속에서 어른스러운 선은 그 상황을 이해하고 더 이상 핸드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선은 지아로부터 두 번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둘 사이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균열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제 선의 질투가 시작된다. 윤을 잃어버렸다 찾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같이 윤을 찾는 선과 지아는 다시 원래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보라가 윤을 찾게 되면서, 보라가 선과 지아 관계에 개입하게 되었다. 윤을 찾아준 보라는 지아를 불러서 같이 팔짱을 끼고 학원을 간다.
이때 선은 처음으로 보라에게 질투를 느낀다. 결국 지아와 선은 서로의 관계에서 ‘질투’를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게 된다. 개학 때 지아는 방학 동안 재밌게 놀았고 또 같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던 선의 인사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지아는 ‘같은 학원에 다니는’ 보라의 인사를 받는다.
지아는 왜 보라 무리에 끼어들게 된 것일까? 그렇게 선과 즐겁게 방학을 보냈으면서 왜 선을 버리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파악해볼 수 있다. 먼저, 지아는 ‘많은 친구’를 원한다. 지아가 전학을 온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왕따당하던 학교 생활에서 벗어나 원만한 교우 생활을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소위 반에서 잘나가는 보라 무리에 끼어들고 싶었을 것이다. 이때 반에서 왕따인 ‘선’은 도움이 안 된다. 여기서 지아는 잔인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강한 자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지아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도움이 안 되는 친구(선)를 멀리하게 된 것이다.
지아가 보라 무리에 낀 또 다른 이유는, 보라가 자기와 경제적, 지적 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단 보라는 지아와 같은 학원을 다닌다. 그리고 비싼 매니큐어를 자랑하는 것으로 보아 보라 역시 경제적,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아이이고, 또 경제적으로 나름 풍족한 집에서 사는 것 같다. 보라는 지아가 오기 전에 반에서 일등을 했다. 지아 역시 올백을 맞을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 이 둘은 처지, 사고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 끌린 지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 둘 사이에 돈도 없고 성적도 낮은 선은 끼어들 수 없다.
이처럼 ‘경제적, 지적 수준’이 판단 기준이 되고 또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아이들하고만 ‘친구’를 하는 지아의 태도는 세속적인 어른들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 그 속에서 순수한 관계를 추구하는 선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이렇게 뒤틀린 관계는 지아와 보라 무리의 선 왕따로 이어진다.
지아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색연필 회수’이다. 보라 무리와 함께 지아는 선에게 다가와 색연필을 돌려달라고 말한다. 지아의 진심이었던 색연필을 다시 돌려받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때 보라는 ‘필요하면 네가 사.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선을 무너뜨리는 말이다. 선의 콤플렉스를 긁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아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다. 색연필을 돌려받고 나갈 때 역시 지아는 보라 무리와 조금 떨어져서 나간다. 이를 통해 지아는 선을 왕따시킬 마음은 없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아마 이 아이디어는 보라가 제안했을 것이다. 보라 무리의 선 왕따 시키기에 지아는 어쩔 수 없이 가담하게 된 것이다.
색연필 회수 사건 이후, 선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김밥집에서 숙제를 하다가 선은, 윤호가 또 윤을 때렸다는 말을 듣고 ‘걔 재수 없어. 왜 살아’라고 말한다. 그래서 엄마가 무슨 일이 있냐고 캐묻지만, 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때 선과 선의 할머니가 김밥집에 온다. 다음날이 소풍날이기 때문이다. 지아는 헤드폰을 끼고 있다. (추측이지만, 낮에 선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것과 할머니의 말을 듣기 싫다는 것 때문에 헤드폰을 끼고 있었을 것이다.)
선과 선의 엄마, 지아와 지아의 할머니는 앉아서 대화를 한다. 하지만 주로 어른들이 대화를 한다. 특히 어른들은 자신의 시선으로 아이를 단정하는 얘기를 한다. 아이들은 엄마 혹은 할머니의 그런 말을 들으면서 ‘에이~ 엄마’, ‘아, 좀, 할머니’ 등의 민망함 표출 내지 불평을 한다. 그렇게 대화를 한 후 헤어질 때, 선은 지아의 아빠, 지아 아빠의 애인을 보게 된다.
다음날, 놀이공원 벤치에 지아는 혼자 ‘헤드폰’을 쓰고 앉아있다. 선은 지아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김밥을 나눠 먹자고 제안한다. 같이 김밥을 먹으면서 선은 지아에게 ‘너희 가족 얘기를 다른 애들한테 하지 않을게’라고 말한다. 사실 선의 이런 말이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곧 ‘비밀을 남들에게 누설해서 너에게 복수하지 않을게’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선은 이미 ‘색연필을 회수’당했고 복수할 명목이 있지만 복수를 할 마음은 없다. 그래서 선은 그 마음을 지아에게 말함으로써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뒤틀린 관계에서 선의 이런 말은 역설적으로 지아를 자극한다. 설상가상으로 보라가 둘이 같이 있는 장면을 보자 지아는 선에게 화를 내며 보라를 따라간다. 이렇게 지아와 선의 관계는 더 멀어지게 된다.
한편 지아와 보라 관계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 둘의 끌림, 만남이 ‘진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시험지 배부 날이다. 즉, ‘성적’이 이 둘의 관계를 갈라지게 만든다. 지아는 올백을 맞아서 반에서 일등을 하게 된다. 그 이전까지 줄곧 반 일등을 하던 보라는 애써 태연한 척한다. 하지만 보라는 ‘잘난’ 지아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결과적으로 지아는 선을 질투하고, 선은 보라를 질투하며, 보라는 지아를 질투하는 상황이 되었다.
-갈등-
학교 성적(60점) 때문에 학원을 등록하게 된 선. 선은 그 학원에서 울고 있는 보라를 만나게 된다. 선은 또 ‘위로 차원’에서 보라와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 지아에게 서운했던 선은 지아의 비밀을 보라에게 털어놓았을 것이다. 그 대가로 보라는 ‘비싼 매니큐어’를 선에게 빌려준다. 매니큐어는 투명한 손톱을 가리는 것이다. 이는 지아를 위로하기 위해서 했던 봉숭아 물과 대비된다. 지아의 비밀을 누설하고 받은 매니큐어는 결국 ‘윤’에 의해서 엎질러진다. (거부된다.)
다음날 보라는 곧바로 지아에 대한 뒷담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보라와 지아는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밤. 선이네 분식집에서 지아의 할머니는 ‘요새 지아가 우울해 보인다’며 왕따를 당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지아의 할머니는 지아의 과거를 말하게 된다. 이때 선은 ‘이혼한 것 때문에 왕따를 심하게 당했고, 엄마가 영국에 있지 않다’는 지아의 비밀을 엿듣게 된다.
이는 분명 아이들의 관계에 어른들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a)지아 부모님의 이혼, (b)지아의 아빠를 분식집으로 부른 할머니(이 때문에 선은 지아 아빠와 지아 아빠 애인을 보게 된다), (c)지아 할머니의 지아 비밀 누설 등을 생각해보면, 결국 지아가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은 모두 어른들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아의 비밀을 선이 알게 되면서 선과 지아의 갈등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다음날 학교 수돗가에서 선과 지아는 마주친다. 선은 이런 상황 속에서 여전히 지아가 팔찌를 차고 있는 것을 보고, ‘왜 차고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순진한 물음은 지아를 자극할 뿐이다. 결국 지아는 자기가 차고 있던 팔찌를 집어 던진다.
그리고 지아와 보라는 학원에서 싸운다. 보라가 지아를 펜 도둑으로 몰았기 때문이다. 이때 지아는 보라에게 ‘누군 돈 없는 줄 알아? 내가 너보다 용돈 많이 받거든’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방어한다. 즉, 자신이 갖고 있는 ‘돈’을 가지고 보라의 논리를 누르는 것이다. 하지만 보라는 선으로부터 들은 비밀, 즉 지아의 색연필 도둑질 전력을 밝힌다. 이때 지아는 할 말을 잃는다.
이날 밤, 선은 육교 위에 술에 취한 아빠를 데리러 온다. 그때 선과 선의 아빠는 ‘헤드폰을 쓴’ 지아를 만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선은 자신이 지아에게 잘못한 것 같아(비밀을 누설한 것) 화해의 의미로 팔찌를 만든다.
하지만 다음날, 지아는 선의 비밀, 즉 선의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임을 공표한다. 지금까지 비밀 누설은 개인 단위로 이루어졌다면, 이때 처음으로 반 전체에게 공표된 것이다. 이는 큰 사건이다. 지아의 선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화가 난 선은 집에서 아빠에게 화를 내다 손에 상처를 입는다. 이는 지아와 아빠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의 가시화이다.
다음날 학교에서 보라 무리와 지아는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듣는다. 하지만 이 꾸중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결국 지아는 화가 폭발해서 선에게 ‘너 나한테 왜 그래? 네가 먼저 그랬잖아’라고 소리 지른다. 물론 지아 입장에선 선이 먼저 보라에게 비밀을 누설했기 때문에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선 입장에선 지아가 먼저 자신을 왕따시켰기 때문에 비밀을 누설한 것이다. 사실 이 갈등은 지아의 (사소한) 질투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지아는 결정적인 한마디 ‘그러니까 네가 왕따지’라는 말을 한다. 이 말에 선 역시 폭발하게 되고, 반으로 들어가 지아의 비밀을 공표한다. 즉, ‘지아는 원래 전 학교에서 심각한 왕따였고, 영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며, 엄마 역시 영국에 없다’고 공표한 것이다. 결국 지아와 선은 물리적인 충돌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둘의 갈등은 절정에 이른다.
-결말-
선과 지아의 싸움, 갈등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로 끝났다. 선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선은 급히 병원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써 선의 아빠와 할아버지 간의 갈등 역시 해결되지 못한채 끝났다. 이를 화해라고 보긴 힘들다. 끝내 선의 아빠는 할아버지를 찾아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의 아빠는 텅 빈 병실에서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이 장면을 선은 목격한다. 아빠의 눈물은 어떤 의미일까? 아빠는 할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자존심 혹은 부끄러움) 화해를 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가장 단순한 것, 용기를 내는 것을 ‘어른들’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죽음 앞에서 아빠는 평생 후회를 하면서 살 것이다.
뒤이어 선의 가족은 바다로 간다. 역설적으로 할아버지의 죽음이 선의 가족을 바다로 가게 만든 것이다. 여기서 선은 바다를 보며 무언가를 깨닫는다. 오묘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선의 시점 쇼트는 의미심장하다. 선의 얼굴엔 반창고가 붙어있다. 이는 지아로부터 받은 상처이다. 선은, 조부모 세대와 부모 세대의 갈등이 ‘죽음’이라는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로 끝난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다음날 예전과 달리 부모님보다 먼저 일어난 선은, 엄마를 위해 김밥을 싼다. 그러면서 ‘계속 놀고 있는’ 윤과 대화를 한다. 윤 역시 얼굴에 멍이 있다. 그래서 선은 '또 윤호한테 맞았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번엔 윤은 '연호가 나를 때려서 나도 때렸어. 근데 연호가 나 또 때렸어'라고 말한다. 그러자 선은 '그러면 또 때려야지'라고 답한다. 하지만 윤은 '그러면 언제 놀아? 연호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호가 때리면... 그러면 언제 놀아?'라고 묻는다. 여기서 선은 잊고 있던 가치 즉, ‘그냥 같이 노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윤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은 것이다.
그렇다. 결국 세상을 살면서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용기를 내어 먼저 화해를 요청하는 것. 이것은 어른들은 쉽게 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쉽게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 장면. 피구 게임을 하는 도중 지아는 주변 아이들로부터 ‘금을 밟았으니 나가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때 선은 자신이 당했던 수법(?)을 당하는 지아를 위해 용기 내 말한다. “한지아 금 안 밟았어.” 이 용기 있는 한마디. 결국 지아는 다시 마음을 열게 된다. 그렇게 지아와 선은 아직은 서먹하지만, 서로를 바라본다. 이렇게 영화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