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코 I & II (자나 깨나)〉(2018) 上



  • 참고: <아사코 I & II (자나 깨나)>의 타임라인. 영화의 시간대(2008, 2011, 2016)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a) : 시작부터 오프닝 타이틀 이전
    (b) : 오프닝 타이틀 이후부터 지진이 일어난 날(, 아사코와 료헤이가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한 날)
    (c) : (b) 이후부터 끝
    확실하게 시기에 관한 정보를 주는 부분은 도호쿠 대지진(2011311)이 일어난 (b)이다. (b)를 기준으로 (a)(c)를 추론할 수 있다. 먼저 (a)에서 반 년 뒤 바쿠가 사라지고, 2년이 지난 시점이 (b)이다. (b)에서 5년이 지난 후가 (c)이다. , (c)2016년이다. (c)에서 TV 광고 속 바쿠는 “8년 전 시베리아로 갔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바쿠가 아사코를 두고 사라진 시기는 2008년인 것이다. 결국, (a)2008년 여름이고, 아사코를 두고 사라진 시기는 대략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 그리고 (b)‘2010년 말부터 2011년 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참고 2: 본문에서 사용한 영화 이미지는 YouTube 영상에서 캡쳐한 것이다. 참조한 영상은 다음과 같다.
    * ‘ASAKO I & II Clip_TIFF 2018’
    * ‘Trailer de Asako (I & II) Netemo sametemo (HD)’
    * ‘ASAKO I&II Bande Annonce (2019) Romance’



0(a). 제목
 
201812월 기준, 국내엔 <아사코 I & II (자나 깨나)>가 아직 정식으로 개봉하지 않았다. 올해 칸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이후에, 국내에선 부산 국제 영화제, 부산 영화의 전당 시네마테크(“21세기 일본 영화의 재조명”) 그리고 서울 씨네큐브(“2018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 등에서 몇 번의 상영 기회가 있었을 뿐이다. (올해 말에 영상자료원에서 몇 번 더 상영 기회가 있고, 더욱이 내년 상반기에 개봉 예정이라는 소문이 있다.)
 <아사코 I & II>는 시바사키 토모카의 자나 깨나를 각색하여 영화화한 작품으로, 일본 원제는 <てもめても (자나 깨나)>이다. 하지만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미국, 프랑스 등)에 소개된 제목은 <아사코 I & II>이다. 처음 이 제목을 들었을 때, <아사코 I & II>가 하마구치 류스케의 이전 작품인 <해피 아워>(2015)처럼 롱 러닝타임이라 파트가 둘로 나뉜 것으로 생각했다. , “12”는 상영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뉜 파트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나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아사코 I & II>의 러닝 타임. 120분 정도로, 애초에 파트를 나누어 상영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영화 내에서 실제로 확인해본 결과, 파트 혹은 챕터가 감독의 의도에 의해 12로 나뉜 것도 아니다. , 파트가 12로 나뉜 영화가 아님에도 해외 제목이 <아사코 I & II>가 된 것이다. 이는 분명 이상하다.
 물론 이를 다음과 같이 (해외 배급사의 입장에서)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을 받은 시바사키는 일본 내에서 나름 유명하다. 하지만 그 외의 국가에서 인지도를 고려해볼 때, 그녀의 작품 원제를 그대로 영화 제목으로 해서 판매/배급하는 것은 무리다. (심지어 자나 깨나는 직접적으로 영화의 주제나 소재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인 아사코를 제목으로 하자.[1] 여기까지는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여러 영화들이 원제와 관련 없는 제목으로 판매/배급되고, 개봉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올해 6월 개봉했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아녜스 바르다, 제이알, 2017)이 있을 것이다. 원제는 <Visages, Villages>얼굴들, 마을들이라는 의미이다. 개인적으로 바르다를 존경하고 또 그녀의 작품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원제를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로 바꾼 것은 다소 못마땅하다. 영화 내에서 장-뤽 고다르와 연결되고, 한편으로는 공동으로 사진 작업을(혹은 공동 연출을) 하는 제이알(JR)”, 그리고 원제에 명시된 마을들이 삭제된 국내 개봉 제목은, 임의로 명명된 엉터리 제목일 뿐이다.
 
0(b). 넘버링
 
만약 그저 아사코라고 해외 제목이 지어졌다면, 이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아사코뒤에 붙은 “12”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사코 I & II>를 들어가는 첫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2”라는 넘버링은 아마 영화의 후반부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는 뒤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사실 이렇게 개인적인 추측만 해볼 뿐, 이 넘버링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영화를 바라보는 각자의 생각과 해석에 따라 제목을 이해하면 된다. 어쨌든, 혹시나 하고 하마구치의 인터뷰를 몇 개 찾아보았다. 하지만 (일본어가 형편없어 일본어 대신) 영어 혹은 프랑스어로 검색을 해서 찾아본 기사 혹은 인터뷰 영상을 통해선 원제와 다르게 지어진 해외 제목에 관한 하마구치의 언급은 발견하기 힘들었다.
 다만, 추가적으로 알게 된 사실이 몇 개 있다. 원작을 읽지 않아서(못해서) 몰랐던 사실이다. 하마구치에 따르면, 그는 1999년과 2008년 사이의 시간대를 배경으로 하는 원작을 각색하여 2008년과 2016년 사이의 시간대를 영화의 배경으로 변경/세팅한다. 또한 그사이에 2011년 도호쿠 대지진(동일본 대지진)을 묘사한다.[2] 하마구치의 말. “It was a seminal moment in this country’s history and I think it worked well with the general narrative of the film”[3](“그것은(도호쿠 대지진은) 일본 역사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의 전반적인 서사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간대의 변화나 지진 묘사 삽입에 대해 시바사키 역시 동의했다고 한다. 다만 시바사키가 유일하게 요구했던 것은 현실적인 오사카의 억양(accents)을 할 수 있는 배우 캐스팅이었다고 한다. (‘오사카라는 지역의 중요성.)
 이제 <아사코 I & II>의 후반부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영화가 끝나기 약 40분 전. 아사코는 공원에서 고향 친구인 하루요와 배드민턴을 친다. 도쿄에서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다시 헤어지는 것이 아쉽다는 하루요의 말 너머로 학생들이 바쿠를 봤다고 소란을 피운다. 이 소리를 듣자마자 아사코는 바쿠를 찾으러 간다. 하지만 바쿠는 차에 타고 있어서 아사코는 그를 보지 못한다. 대신에 아사코는 멀어져가는 차를 향해 바쿠, 잘 가!”라고 인사한다.
 공원 씬은 바쿠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시점 쇼트로 끝난다. 사실, 바쿠는 2008년 아사코를 두고 사라진 이후 이 공원 씬 이전까지 등장한 적이 없다. 당연히 아사코와 연락을 한 적도 없다. 따라서 그사이에 바쿠의 시점 쇼트는 있을 수 없다. 오히려 2016년에 바쿠는 시선의 주체가 되기보다 시선의 대상이 되었다. 구체적으로 바쿠는 광고판이나 TV 광고에서 이미지 속에 갇혀 사람들의 시선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다 등장한 바쿠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시점 쇼트, 즉 차 안에서 멀어져가는 아사코를 바라보는 시점 쇼트. 영화 내에서 이러한 시점 쇼트는 한 번 더 있었다. 바로 2008년 바쿠가 오카자키 집에서 크림빵을 사러 나갈 때의 시점 쇼트다. 이 이전의 시점 쇼트를 통해 공원 씬의 마지막 쇼트가 바쿠의 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이 두 개의 시점 쇼트는 공통적으로 마치 (구로사와 기요시[4]의 영화에서 볼법한) 유령[5]이 바라보는 시선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어쨌든 바쿠가 아사코를 (뒤돌아) 바라보는 방식은 그의 되돌아옴을 예고하고, 그는 그것을 실제로 이행한다.


 공원 씬 이후에 (인서트 쇼트로 기차 외관이 삽입된 뒤) 곧바로 오사카의 이사 갈 집을 아사코와 료헤이가 둘러보는 씬이 이어진다. 그리고 어떤 이동 과정의 묘사 없이, 즉 마치 같은 집인 것처럼 편집되어, 도쿄의 이사 가기 전의 집 씬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때 갑자기 현관문 앞에 바쿠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 이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시퀀스().
 이 부분과 그 이후의 일련의 시퀀스()에 대해선 ‘1(c)’에서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여기서 넘버링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부분은, 현관문 너머 바쿠를 마주한 그 날 저녁, 식당에서 아사코가 바쿠의 손을 잡고 떠나게 되는 순간이다. 이 이후로 아사코1은 종결되고 아사코2로 이행되는 것인가? 왜냐하면 갑자기 평화로운 서사가 붕괴되고(혹은 서사에 구멍이 뚫리고),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데이빗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1997)의 오프닝 씬 혹은 짐 자무쉬의 <리미츠 오브 컨트롤>(2009)의 후반부 살인 완수 이후 이어지는 드라이브 씬을 연상케 하는, <아사코 I & II>의 후반부 (바쿠의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밤의 드라이브 씬. 이 씬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긴장감을 자아내고, 이전 서사와 분리되어 나아가는 느낌을 준다. 아마 이 지점을 염두에 두고 “12”라는 넘버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쉽고, 또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넘버링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사유를 좀 더 진전시켜 보면, 이 지점은 오히려 아사코2에서 아사코1로의 회귀로 볼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바쿠를 (다시) 선택했기 때문이다. 바쿠의 자동차 안에서 아사코가 한 말.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시간이 긴 꿈 같다. 엄청 행복한 꿈이었다. 성장한 것 같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나는 전혀 변한 게 없다.” 지금까지 시간, 이는 ‘2008년 바쿠가 홀연히 사라졌던 날혹은 ‘2011년 지진이 난 날 료헤이와 교제하기 시작한 날부터 ‘2016년 바쿠를 다시 만나게 된 날까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오사카에서) 바쿠를 처음 만나고, 그에게 완전히 빠져 버린 그때를 아사코1이라고 한다면, (도쿄에서) 료헤이와 교제하기 시작할 때를 아사코2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사코는 아사코2의 시절을 행복한 꿈같다고 말한다. 그러면 꿈에서 깨어나 바쿠를 선택한 시점은 (다시 원점) 아사코1이 아닌가? 심지어 그녀는 ‘(꿈에서 깼지만) 전혀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지점을 아사코1로의 회귀로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는 불완전하다. 만약, ‘아사코1:오사카:바쿠=아사코2:도쿄:료헤이라는 도식이 가능하다면, 단지 아사코가 바쿠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아사코1로 회귀했다고 보긴 어렵다. 왜냐하면 아사코는 분명 오사카로 돌아가지 않고, 바쿠의 부모님이 사셨던 곳(홋카이도)으로 가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둘은 도쿄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미야기현 센다이시(초입)(으로) 간 것이다. 아사코는 센다이시 초입에서 바다를 보려고 잠시 멈췄다는 바쿠의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가 방파제 위로 올라가려는 순간, 료헤이에게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바쿠는 료헤이가 아니야. 난 제대로 모르고 있었어.” 그리고 아사코는 센다이시에서 오사카까지 (료헤이의 혹은 바쿠의 도움 없이, 즉 그 둘의 자동차를 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이는 아사코1로의 회귀인가 아니면 (12의 변증법으로) 아사코3으로의 이행인가.
 영화 내에서 장소 변화를 살펴보면, '오사카(아사코1)->도쿄(아사코2)->오사카(아사코?)'이다. 한편 아사코의 선택의 변화를 살펴보면, '바쿠(아사코1)->료헤이(아사코2)->바쿠(아사코?)->료헤이(아사코?)'이다. 사실, 이처럼 “12”라는 넘버링을 통해 각각의 경우의 수를 헤아려보거나 혹은 도식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는 그 자체로 나름 재미있는 놀이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영화의 핵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아사코의 내적 변화를 타자인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가? 그녀를 아사코1, 아사코2로 구분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 사실, 아사코를 아사코1’아사코2’로 구분해서 보는 것은 아사코를 그녀 외의 타자들이 각자의 인식 체계/분류 기준에 따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 함수 f:X->Y에서 f를 아사코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집합 X, 즉 정의역에는 아사코의 수많은 자아가 있다. 이 정의역의 원소들 중 무엇이 공역의 어떤 원소와 대응하는지 우리가 알 도리가 없다. 그것은 아사코만 알 수 있다. 물론 아사코와 아사코의 지인들의 발화를 통해서 그 대응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있다. 확실한 것은 공역에 바쿠와 료헤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료헤이라는 원소는 분명 바쿠의 영향 하에 있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아사코의 (영화 내에서) 마지막 선택을 보면 치역은 결국 료헤이가 될 것만 같다. 그러나 아사코와 료헤이가 서로를 마주 보지 않고, 집 앞에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 함수의 치역이 료헤이가 될지는 알 수 없다.

1(a). 자나 깨나
 
이와 같은 넘버링 놀이에서 빠져나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그 점을 소개하기에 앞서, 앞으로 본문에서 <아사코 I & II> 대신 <자나 깨나>로 표기하는 것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이유는 단순하게 자나 깨나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시바사키 소설과 이 영화의 원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나 깨나”, (일본어) 제목은 해외에서 “At All Hours”“Sleeping or Waking”으로 소개된다. 둘 다 의미로는 언제든지’, ‘항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식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는 전자 “At All Hours”자나 깨나를 이해하는 것은 가장 무난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아사코가 자나 깨나(언제든지) 바쿠의 외모에 빠져있다혹은 자나 깨나(항상) 과거의 연인에 집착한다등으로 제목을 이해할 수 있다.
 반면 후자인 “Sleeping or Waking”의 경우, ‘(고 있거)나 깨(어 있거)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여기서 자고 있는 경우’(Sleeping)깨어 있는 경우’(Waking)그리고’(and)가 아니라 혹은’(or)으로 연결되어 있다. 두 항의 독립성. 당연한 말이지만 자고 있는 경우와 깨어 있는 경우는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 만약 자나 깨나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아사코가 자고 있을 때와 깨어 있을 때를 민감하게 바라보게 되고, 이는 영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흥미로운 기준이 된다. 이 지점에 대해선 ‘2(a)’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것 중 첫 번째는 ‘(시선의) 마주침과 어긋남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도시/집의) 이어짐이다. 먼저, ‘시선(바라봄)’ 혹은 누가 먼저 보는가 그리고 누가 시선을 회피하는가’, 이는 <자나 깨나> 내에서 꽤나 중요하다. 사실, <해피 아워>에서부터 누군가는 하마구치 류스케로부터 나루세 미키오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루세 미키오와 시선, 이 주제와 관련해서 유운성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감정은 누군가를 바라봄으로써, 혹은 누군가에게 보이게 됨으로써 촉발되고 다시 시선과 제스처로 표현되는 그런 것이다. 나루세 미키오는 시선과 제스처로 영화의 표면을 직조한 감독이자 그로써 영화적인 것을 정의한 감독이다.”[6]
 실제로 <자나 깨나> 내에서 시선의 마주침과 어긋남은, 아사코와 바쿠아사코와 료헤이가 처음 만날 때, 그리고 연애를 하는(혹은 썸을 타는) 과정에서 각자의 감정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하지만, 하마구치의 멜로드라마는 나루세의 것과 다르다. 나루세의 멜로드라마는 운명적 사랑이나 비극적 숙명과 어울리지 않고, 더욱이 사랑이 이미 파국을 맞은 상태에서 시작되는 사건 이후의 멜로드라마.”[7] 한편, <자나 깨나>는 이것의 변주 같다. <자나 깨나>는 첫 시선의 마주침이 불러온 운명적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벗어나려는 시도(바쿠의 사라짐, 아사코의 료헤이 회피 등)와 회귀(바쿠의 회귀, 아사코와 료헤이의 교제, 아사코의 회귀 등)의 과정을 다룬다. 더욱이 <자나 깨나>는 이미 파국을 맞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파국을 맞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영화다.
 두 번째는 후반부 편집에 관한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엔 아사코-료헤이 커플 서사가 진행되는데, 이는 바쿠의 등장 이전까지(시기적으로 표현하면, 2011311일 지진이 일어난 날 이후부터 2016년 오사카의 이사 갈 집을 둘러보는 순간까지)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전개된다. 바쿠 등장 이전에 이 커플의 서사에 (다시) 새롭게 등장한 인물은 하루요 정도이다. 그런데 하루요는 아사코-료헤이, 마야-쿠시하시 커플 사이에 흡수되어 도쿄에 혹은 서사 내에 정착하는 데 성공한다. 반면, 바쿠는 이 커플의 서사에 구멍을 내고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바쿠가 등장하는 것은, 오사카, 도쿄 두 도시/집이 이어진 뒤다.
 아사코와 하루요가 배드민턴을 치고, 바쿠가 탄 차를 찾아간 공원 씬을 다시 상기해보자. 공원 씬 다음에 이어지는 건 오사카의 이사 갈 집을 아사코와 료헤이가 둘러보는 씬이다. 이 씬은 그 다음 씬(집 내부 씬)과 그대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같은 집인 것처럼 말이다. 그사이에 어떤 이동 과정 묘사도 없다. 그래서 처음엔 이 두 집이 같은 집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같은 집, 시간의 변화? 하지만 이내 제시되는 몇몇 정보를 통해 편집상으로 (그대로) 이어진 집이 오사카의 이사 갈 집이 아니라 도쿄의 이사 가기 전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쿠시하시가 10분 뒤에 집에 올 것이라는 료헤이의 메시지, “짐이 하나도 싸여져 있지 않네. 이사가는 거 맞아?”라는 마야-쿠시하시 커플의 말, 그리고 (이미 아사코가 하루요와 마야-쿠시하시 커플을 초대해서 공개된 바 있는) 부엌의 구조 등을 토대로 말이다. ‘어떤 이동 과정 묘사도 없이 두 집이 편집상 그대로 이어져 있다.’ 이는 마치 <토니 에드만>(2016)에서 빈프리트가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 갑자기 나타났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독일과 루마니아의 동일화. 독일 자본(주의 논리)의 루마니아 침투. 마렌 아데가 의도한 편집의 폭력(). 이처럼 하마구치의 편집 역시 어떤 의도가 있었을 테다. (이는 ‘1(c)’‘1(d)’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1(b). 시선의 마주침과 어긋남
 
2008년 아사코와 바쿠의 첫 만남을 떠올려보자. 둘이 처음 만났던 곳은 고쵸 시게오 사진전이다. 사진 몇 개가 보여진 직후에, 사진을 보고 있는 아사코의 얼굴을 정면으로 담은 프레임이 나오고, 그 안에 바쿠가 들어온다. (이 쇼트는 2011년 도쿄의 고쵸 시게오 사진전에서 남자가 료헤이로 바뀐 것 말고는 그대로 반복된다.) 처음부터 바쿠에게 관심을 갖고 따라간 것은 아사코였다. 아사코는 바쿠를 따라간다. 그러다 계단을 올라가서 바쿠는 오른쪽으로 아사코는 왼쪽으로 빠진다({1}). 그 순간 어린 학생들이 가지고 놀던 폭죽이 터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련의 쇼트들. {2}가 잠깐 삽입되고, 바로 {3}(아사코의 시점 쇼트){4}(바쿠의 시점 쇼트)가 이어진다.

{1}
{2}
{3}
{4}

 이 이전 쇼트()에선 아사코와 바쿠가 같은 사진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아사코가 바쿠의 등을 쳐다보는 방식을 통해 둘의 시선 교환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폭죽의 터짐. 이때가 바로 아사코의 시선과 바쿠의 시선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순간이다. 마치 불꽃처럼(스파크처럼) 순식간에 벌어진 시선의 교환.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쇼트 제시 순서는 분명 아사코의 시점 쇼트({3})가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바쿠의 시점 쇼트({4})가 뒤따른다. , 아사코의 먼저 바라봄. 이번엔 2011년 도쿄에서 아사코와 료헤이의 첫 만남을 떠올려보자.

{5}
{6}
{7}

 사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2008년 오사카) 등장했던 인물은 아사코였다. 2008년 오사카, 이 시기는 아사코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반년 뒤 바쿠가 사라졌다’)과 함께 끝난다. 그리고 2011년 도쿄, 이 시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료헤이다. 회사 모습을 보여주는 몇 개의 쇼트 이후에 료헤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아사코가 커피포트를 찾으러 온다. 이때 문이 열리고 바쿠와 아사코의 투 쇼트 직후에 아사코의 시점 쇼트({5})가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바쿠의 시점 쇼트({6})가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아사코의 시점 쇼트({7})가 이어지고, 료헤이는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 아사코의 먼저 바라봄. 그리고 아사코는 료헤이에게 바쿠가 아니냐며 료헤이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이름과 고향 등을 물어본다. (한편, 아사코가 커피포트를 찾으러 오는 씬은 한 번 더 반복되는데, 즉 똑같은 구도로 아사코가 료헤이(와 쿠시하시)가 있는 프레젠테이션 룸으로 들어오는데, 이때 아사코의 시점 쇼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사코와 료헤이가 처음 만날 때 삽입된 아사코와 료헤이의 시점 쇼트는 중요하다.)
 편의상 2008년 오사카 시기를 (a), 2011년 도쿄 시기를 (b)라고 하자. 앞선 내용을 정리하면, (a)에서 아사코가 바쿠를 먼저 바라봤고, (b)에서 역시 아사코가 료헤이를 먼저 바라봤다. 이를 바탕으로 아사코-바쿠 혹은 아사코-료헤이 커플의 연애(혹은 썸타는)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나 깨나> 내에서 먼저 바라본 사람은(, 아사코는) 상대방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빠지게 된다. 물론 (a)에서 아사코는 바쿠를 본 뒤 바로 사랑에 빠지지만, (b)에선 료헤이에게 바로 빠지지 않고, 오히려 여러 번 회피한다. 이 회피는 단순히 밀당의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바쿠와의 만남료헤이와의 만남사이엔 공백이 있는데, 이 공백에 바쿠(의 외모)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사코와 료헤이와의 첫 만남은 바쿠의 영향 하에 있다. 그래서 아사코는 료헤이를 보자마자 바쿠가 아닌가 하고 의심한 것이다.[8] 이와 같은 아사코가 누군가에 한 눈에 반하는/사랑에 빠지는 상황, 혹은 이런 그녀의 성질은 하루요의 말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2016년 도쿄의 한 백화점에서 아사코와 재회한 하루요는 료헤이에게 했던 말, “아사코는 뭔가에 꽂히면 그거밖에 못 봐요.” 결국 이는 <자나 깨나> 내에서 일종의 룰 혹은 (아사코의) 운명으로 작용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자나 깨나>는 아사코가 이런 룰 혹은 운명을 순응 혹은 회피하는 과정(여정)의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먼저 (a)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전에서 아사코가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바쿠는 그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아사코는 바쿠에게 관심을 갖고 뒤따라간다. 그러다 폭죽이 터지면서 아사코는 바쿠를 바라본다. 뒤따라 바쿠 역시 아사코를 바라본다. 시선의 마주침. 이 순간 아사코는 처음 본 바쿠에게 빠진다. 그래서 바쿠가 아사코에게 다가와 이름을 물어보고 키스를 해도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한편, 바쿠가 아사코에게 다가갈 때 나오는 발 쇼트는 이후 변주되어 반복된다. (b)에서 지진이 난 날 밤, 아사코와 료헤이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데, 이때 아사코가 료헤이에게 다가가는 발 쇼트가 있다. 료헤이에게 아사코는 그를 껴안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씬들에서 아사코-바쿠 커플의 연애와 과정이 나열된다. 예를 들어, 아사코는 바쿠가 디제잉(DJing)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바쿠의 오토바이 뒤에 타거나, 오카자키 집에서 바쿠가 가르쳐주는 빨래를 널어 말리는 법을 배우거나, 바쿠가 따라주는 맥주를 마시거나, 바쿠가 크림빵을 사가지고 오는 것을 기다린다. 이 씬들은 분명 그저 아사코-바쿠 커플의 연애의 한 과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진 않다. 여기서 <자나 깨나> 내에서 아사코가 말수가 적다는 점을 덧붙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사코는 대화에 잘 참여하지 않고, 주로 침묵을 지킨다. 그런데 이처럼 아사코의 말이 많지 않음에도, 그중에서 대부분은 바쿠에 대한 칭찬이나 바쿠에 대한 애정 고백이다. 앞서 언급한 씬들과 이런 아사코의 말을 종합해 고려해보면, 분명 아사코는 바쿠에 빠져있는 것이 확실하고, 더욱이 바쿠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달리 바쿠는 아사코에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을뿐더러 좀 늦더라도 반드시 돌아올 거야. 아사코가 있는 곳으로 반드시 돌아올 거야.”와 같은 무책임한 말만 할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반년 뒤 아사코를 떠났다. 그리고 8년이 넘게 연락을 하지도 않았고, 돌아오지도 않았다. 요컨대,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면, 아사코는 이 관계에서 바쿠에게 (콩깍지가 씌어) 끌려다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사코는 이러한 룰 혹은 운명을 거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쿠의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를 대면서 바쿠를 따라다니고 또 그의 상황, 말을 이해하려고 한다. 또한 바쿠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한편, 하루요만 이런 바쿠의 성질, 즉 정착하지 않는 떠돌이의 성질을 간파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하루요는 바쿠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사코에게 일관되게 바쿠를 만나지 마라.”, “바쿠가 너를 울릴 것이다.” 등의 조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b)에서 역시 아사코는 료헤이를 먼저 바라봤다. 하지만 여기서 아사코는 료헤이에게 관심은 생기지만, 사랑에 바로 빠지진 않는다. 오히려 이런 룰 혹은 운명을 거절하고 회피한다. 그래서 료헤이 혹은 그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다. (a) 시기 서사의 주체가 아사코라면, (b) 시기 서사의 주체는 료헤이다다소 과감하게 정리하면, (a)는 아사코가 바쿠를 따라다니는 에피소드가 주였다면, (b)는 료헤이가 아사코를 찾아다니고, 아사코는 회피하는 식의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물론 지진이 난 날 아사코와 료헤이는 재회하고, 또 아사코는 료헤이와 사랑에 빠진다. 요컨대, 아사코가 료헤이에게 빠지게 될 것이라는 (첫 만남에서의 시점 쇼트의 룰이자) 운명은 이루어지긴 이루어지나, 첫 만남 직후가 아니라 지진이후에 이뤄진다는 것이다.
 사실, 아사코가 료헤이를 회피하는 이유는 바쿠와 똑같은 외모를 갖고 있어서다. 물론 바쿠와 똑같은 외모 때문에 료헤이에게 관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아사코는 바쿠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순간을 떠올렸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이 남자(료헤이)도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사코에게 료헤이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래서 아사코는 몇 번의 확인 작업을 한다. 바로 료헤이의 눈을 마주보는 방식을 통해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아사코와 료헤이의 첫 만남에서 아사코는 다짜고짜 료헤이에게 바쿠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료헤이와 눈을 마주치며 이름과 고향에 관해 묻는다. 이 지점에선 오히려 료헤이가 아사코의 시선을 피하고 당황스러워 한다. 그리고 고쵸 시게오 사진전 앞에서 료헤이가 인사를 하자 아사코는 아무 말 없이 료헤이의 눈을 마주보며 얼굴을 만져본다. 마지막으로 회사 계단에서 아사코를 뒤따라나온 료헤이가 고백을 하자, 내내 시선을 피하던(그리고 료헤이 자체를 피하던) 아사코는 료헤이와 시선을 맞추고, 그의 얼굴을 만지며, 키스를 한다.
 이처럼 아사코가 (료헤이와 사랑을 하게 될 운명 하에서) 료헤이와 감정을 교류하는 방식, 혹은 료헤이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은 바로 시선의 마주침과 어긋남과 관련이 있다. 이런 과정의 절정은 바로 지진이 발생한 날이다. 그날, 료헤이는 지하철을 타지 못했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우연히 아사코를 만나게 된다(시선이 마주친다). 이때 이 둘은 서로의 (지진으로부터 기인했을) 불안의 시선을 감지하며 서로에게 애틋함을 느낀다. 그렇게 아사코와 료헤이는 재회의 포옹을 하고,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한다.
 시선의 마주침과 어긋남의 과정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아사코와 료헤이의 첫 만남 다음 날 료헤이는 카페에 있는 아사코를 찾아간다. 하지만 아사코는 료헤이의 시선을 피한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온 료헤이는 회사 브랜드 명을 영어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가 상사로부터 혼난다.[9] 료헤이는 이런 일에 대해 회사 계단에서 담배를 태우며 쿠시하시에게 하소연을 한다. 그러다 우연히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이때 아사코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모습을 보게 된다(료헤이의 시점 쇼트). 이 계단이라는 공간은 이후에 두 번 더 반복해서 나오는데, 그때마다 아사코-료헤이 사이의 관계에 변주가 생긴다. 계단이라는 공간, 이는 (a)에서 아사코와 바쿠가 같이 걸어 올라가 처음 시선을 마주쳤던 곳이다. 그리고 (b)에선 료헤이가 아사코를 바라보는 곳이다. 특히 료헤이는 위에 있고, 아사코는 아래에 있어서 료헤이의 시선은 빗나가기도 하고(첫 번째 계단 씬), 아사코의 시선과 마주하기도 한다(두 번째 계단 씬). , 계단은 하나의 은유로서, 시선의 어긋남과 마주침을 함축한다.
 두 번째 계단 씬은, 고쵸 시게오 사진전에서의 만남 이후에 이어진다. 사진전에서 나와 카페에 나란히 앉은 마야, 아사코, 료헤이. 아사코는 료헤이를 신경쓰다가, 그에게 감사했다고만 말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계단 씬에서, 료헤이는 고양이를 찾는 아사코를 내려다 본다(료헤이의 시점 쇼트). 그러다 비가 내리자 아사코가 위를 쳐다본다. 시선의 마주침. 하지만 이내 아사코는 료헤이의 시선을 피해 사라진다. (비가 오는데 고양이를 찾는 아사코를 료헤이가 위에서 바라보고, 그런 그를 아사코가 아래에서 바라보는 구도는 (아사코가 바쿠의 손을 잡고 떠난 뒤 돌아온) 2016년 오사카에서 반복된다.)
 세 번째 계단 씬은, 두 번째 계단 씬에서 쿠시하시에게 제안했던 마야-아사코 집에서의 저녁 식사 씬 이후에 이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녁 식사라기보다는 마야, 쿠시하시, 료헤이의 토론. 혹은 그 세 사람의 단막극. (이 마야-아사코 집 씬은 ‘2(b)’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어쨌든 이 저녁 식사 씬 이후, 다시 회사가 나온다. (마치 회사로의 구심력 작용.) 쿠시하시가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뒤에 료헤이와 뒷정리를 하는데, 아사코가 커피포트를 찾으러 온다. 아사코는 별말 없이 커피포트만 가지고 나간다. 그런 아사코를 료헤이는 뒤따라간다. 료헤이가 줄곧 아사코를 위에서 내려다봤던 그 계단에 아사코가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사코는 고개를 떨군 채 료헤이의 시선을 피한다. 료헤이는 처음 만났을 때 뭔가를 느꼈던 거죠?”라고 물으며, 용기를 내어 저는 아사코 당신이 신경이 쓰이고, (그래서) 아침마다 카페에 가보게 된다며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봐달라고 말한다. 이때, 아사코는 고개를 들고 료헤이와 눈을 마주친다. 어긋났던 시선의 마주침, 혹은 균형. 아사코는 료헤이의 얼굴을 만지며 눈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이 직후에 이어지는 실내 클라이밍 씬 이후, 지진이 난 날 밤까지 이 둘은 만나지 않는다(못한다).


1(c). 도시/집의 이어짐
 
이제 2016년 도쿄 시기(이하 (c)로 표기)‘(도시/집의) 이어짐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도쿄에 정착한 이후 아사코는 오사카 지인들과 연락을 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바쿠의 말에 따르면) 아사코는 에이코에게 연하장을 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는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닌 것 같다. 혹은 최근의 일인 것 같다. 왜냐하면, 기존에 에이코와 연락을 했었더라면, 오카자키가 아프다는 사실을 에이코가 아닌 바쿠로부터 듣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아사코는 하루요를 만나게 된 이후에 에이코를 떠올리며 연하장을 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바쿠는 이 연하장 덕분에 아사코의 집 주소를 알게 된다. 도쿄의 아사코가 오사카의 에이코에게 연하장을 보냈으나, 이것이 초대장이 되어 (떠돌아 다니는) 바쿠를 불러들인 꼴이 된 것이다. 자크 데리다의 말-“편지가 항상 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의 변주. 편지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않지만, 만약 도착하더라도 그 수신인이 바뀌어, 엉뚱한 사람이 답신을 보낼 수 있다. 그 답신은 바쿠의 등장이다. 이 바쿠의 등장은 오사카와 도쿄 두 도시의 이어짐과 관련이 있다.
 바뀐 수신인의 당사자, 바쿠. 사실, 우리는 바쿠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특히 영화 후반에 그가 모델 혹은 연기자[10]로 데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우리는 바쿠의 직업 혹은 신분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는, (a)에서 오카자키, 하루요, 아사코 세 명이 같은 대학교 학생으로 소개되고, (b)에선 마야는 연기자, 쿠시하시와 료헤이는 회사원으로 소개되는 것과는 대비된다. 다만, 우리는 바쿠가 사진전을 다니고,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며, 그리고 훗날 모델 혹은 연기자를 하는 것으로 보아 나름 미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정도로 추측해볼 뿐이다.
 오히려 바쿠는 떠돌이다. 이는 물리적으로도 은유적으로도 맞는 말이다. (a) 시기 바쿠는 오카자키 네 집에서 같이 살았다. 그리고 오카자키가 아사코에게 했던 말. 바쿠는 집에서 나가면 1~2주 돌아오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그렇다. 바쿠는 원래부터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사코는 이를 알고도 좋아한 것일까? 바쿠는 실제로 아사코와 교제 기간 중에 신발을 사러 간다는 명목으로(물론 이는 진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2016, 바쿠는 이미지로 환원되어 아사코에게 돌아온다. 그 이전까지 아사코는 바쿠가 살아 있는지 여부를 알지 못했다. 그저 바쿠의 외모를 가진 료헤이와 만나게 되면서, 료헤이와 행복한 (꿈 같은) 을 살았을 뿐이다. 사실, 아사코를 포함한 우리는 바쿠가 모델 혹은 연기자로 데뷔했다는 사실을, 그가 나오는 광고판이나 TV 광고 속 이미지를 통해 알게 된다.
 2008년 바쿠가 떠난 이후, 우리는 그를 영화 내에서 본 적이 없다. , 아사코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바쿠가 살아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이미지()() 믿어야만 하는 상황. 아니, 아사코는 이미 이미지 너머 바쿠가 실재한다고 믿는다. (아사코의 시네필리아?) 아사코는 하루요로부터 바쿠의 소식을 접하고, 이미지를 본 순간부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언젠가(혹은 조만간) 바쿠를 만나는 순간이 오리라. 그리고 공원[11]에서 그 기회가 온 것이다. 그래서 아사코는 바쿠가 탄 차에 찾아간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를 볼 수 없다(카메라는 차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바쿠에게 가장 근접하게 다가갔으나, 볼 수 없는 상황. 결국 아사코는 바쿠, 잘 가!”라며 작별 인사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사코의 진짜 작별 인사(adieu)인가? 아니면 바쿠를 부르게 된 하나의 트리거(trigger)인가? , 떠돌던 바쿠를 부르는 소환책(召喚策)으로서의 인사인가?
 요컨대, 바쿠를 도쿄와 오사카 두 도시 중 어디에 속한다고, 혹은 특정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기 어렵다. 애초에 바쿠라는 인물 자체가 자신을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능숙하다. 심지어 바쿠는 아사코를 데리고 훗카이도로 가려고 할 때, 자신의 핸드폰을 부순다(자신의 커리어(career) 혹은 누리던 인기를 한순간에 버린다). 어쩌면 바쿠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아니, 정반대로 바쿠는 어디든 속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바쿠가 아사코 집 현관문에 나타나는 순간을 다시 상기해보자.
 그 전에, 우회해서 잠깐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c) 시기는 아사코-료헤이 커플의 서사다. 아사코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그녀는 (a) 시기에 바쿠, 하루요, 오카자키랑 같이 어울리고, (b)(c)를 아우르는 시기엔 료헤이, 마야, 쿠시하시와 어울린다. 전자를 오사카 그룹, 후자를 도쿄 그룹으로 각각 묶어보자. (c)에서 아사코는 도쿄에 머물면서 도쿄 그룹의 일원들과 갈등 없이 지내고, 더욱이 도쿄 지진과 관련된 봉사를 한다. 아사코는 오사카가 고향이지만, 오사카 그룹의 일원들과는 연락하지 않는다. 이는 앞서 지적한 바이다. 아사코는 최근에 에이코에게 연하장을 보낸 게 전부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하루요는 아사코를 다시 만난 후 그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섭섭함을 표했다. 그리고 연하장을 보낸 대상도 오카자키라기보다는 에이코(인 것 같).)
 어쨌든 (c)에서 아사코-료헤이 커플 서사의 하나의 분기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하루요의 등장이다. 오사카 그룹의 일원 중 한 명인 하루요의 등장. 하루요가 아사코-료헤이 서사에 개입하면서부터 아사코는 오사카와 연관된다. 혹은 오사카를 생각하게 된다. 더욱이 (료헤이를 따라) 오사카로 돌아가게 된다. 하루요는 어떤 인물인가. 하루요 역시 오사카를 떠난 인물이다. 그녀는 (쁘띠) 성형을 했고, 싱가포르 남자와 결혼해서 성이 외국 성으로 바뀌었으며,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도쿄에 정착한다. 한편, 오사카 그룹의 일원 중 또 다른 한 명인 오카자키는 루게릭병에 걸려 오사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쿄의 아사코는 료헤이를 따라 오사카로 돌아간다. (여기서 오사카는 도시 오사카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쿠의 손을 잡고 떠났다 오사카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함축한다.)
 사실, 료헤이의 오사카로 가자는 제안은 다름 아닌 아사코를 향한 청혼이다. 청혼을 받고 아사코는 기뻐하며, 용기를 내어 바쿠에 대한 이야기를 고백한다. 만약 하루요가 등장하지 않았고, 그녀로부터 바쿠의 소식을 듣지 않았으며, 더욱이 바쿠의 이미지()() 접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그 고백. 이에 대해 료헤이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서 괜찮고, 오히려 자신이 바쿠와 외모가 같았기 때문에 아사코 당신과 만나게 된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답한다. 물론 이후 료헤이의 말을 보면, 그에게 이런 고백은 별로 달가운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료헤이는 아사코가 바쿠에게 (언젠가) 떠날까봐 두려웠다고 말한다. 료헤이에게도 바쿠는 공포와 애증의 대상인 것이다. 요컨대, 아사코-료헤이 커플에게 바쿠는 등장해선 안 되는 존재이다.


 그런데 바쿠는 아사코 앞에 등장했다. 바쿠는 왜 아사코 집에 찾아온 것인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아사코가 인사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는 다소 불충분하다. 그렇다면, 바쿠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온 것인가? 이는 바쿠의 입장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답이다. 그런데 문득 드는 의심들. 여기 우리가 보고 있는 바쿠는 진짜 바쿠가 맞는가? 다시 말해, 바쿠가 실제로 아사코 집을 찾아온 것이 맞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바쿠 등장 쇼트 이전과 이후의 상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공원에서 아사코는 바쿠가 있다는 학생들의 말을 듣고, 바쿠를 찾으러 간다. 하지만 바쿠는 차에 타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차가 떠나자 아사코는 바쿠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하지만 끝내 카메라는 차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비추지 않는다. 바쿠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아사코를 바라보는 시점 쇼트만 이어질 뿐이다. 이 멀어지는 시점 쇼트는 (a)에서 크림빵을 사러 갈 때 나왔던 바쿠의 시점 쇼트와 유사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때 이 쇼트가 나온 후 바쿠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돌아왔다. 아사코를 껴안으며 했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올 거야.” 이는 바쿠가 아사코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이 말은 아사코 집 앞에 회귀한 바쿠가 한 말과 대응된다. "아사코, 나 돌아왔어." 시점 쇼트와 사라짐과 회귀. 그렇다면, 차 안에서 아사코를 바라본 것은 바쿠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사카의 이사 갈 집. 이 집은 아사코와 료헤이가 오사카로 돌아와서 같이 살기로 약속할 집이다. 이 집은 이전에 살고 있던 도쿄의 집과 이어진다. 오사카-도쿄 집으로 불리우는 것이 가능한 집. 바쿠가 찾아온 집은 바로 이 집이다. 따라서 바쿠가 매개체가 되어 오사카와 도쿄의 집을 이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쿠는 오사카-도쿄 집에 갑작스럽게 방문한 손님이다. 자신이 예전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방문. 문을 열고 바쿠를 본 순간, 아사코는 문을 닫고, 부엌 구석에 가서 숨는다. 그리고 이내 문이 열리고 료헤이와 마야-쿠시하시 커플이 들어온다. 이 직후에 식당에서 저녁 식사 씬이 이어지고, 바쿠가 아사코를 재방문하러 온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바쿠(로 추정되는 누군가)는 오사카-도쿄 집에 찾아왔다. 요컨대, 바쿠는 도쿄에 있는 아사코 집 앞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사카의 집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바쿠는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은 시점에 돌아와 자신의 약속을 완벽하게 지킨 것이다. 아사코가 있는 곳에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그 약속.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심은, 아사코가 문을 닫은 직후 (부엌에 숨은 다음에) 료헤이가 들어온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아사코가 료헤이를 보고 바쿠로 착각한 것은 아닌가? 혹은 순간적으로 환각을 본 것은 아닌가? 환각이라 하면, 바쿠는 유령인가? 여기서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안가로의 여행>(2015)의 모티브가 떠오른다. <해안가로의 여행> 도입부에서, 주인공 미즈키는 문득 뒤를 돌아본다. 그 순간,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녀의 남편 유스케(의 유령)() 프레임 안에 등장한다. 미즈키 안에 내재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유스케를 소환한 것처럼 아사코도 바쿠를 소환한 것이 아닌가? 환각 혹은 유령, 바쿠 등장 쇼트는 이런 방식으로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가설은 틀렸다. 아사코가 환각을 본 것도 아니고, 바쿠가 유령인 것도 아니며, 따라서 아사코가 바쿠를 소환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바쿠는 아사코 집 앞에 왔다. 이는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밤의 드라이브 씬에서 바쿠는 아사코를 찾아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 오카자키 집에 보낸 연하장에 적힌 주소 덕분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바쿠는 이 주소를 통해 오사카-도쿄 집에 찾아간 적이 있는 것이다. 만약 바쿠가 실제로 아사코 집에 간 것이 아니라면, 이 쇼트 이후에 나오는 바쿠는 아사코의 환각이나 유령이고, 바쿠와 떠나는 건 꿈속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된다. 하지만 아사코는 분명 바쿠의 (식당으로의) 재방문에서, 그의 손을 잡고 떠났고, 료헤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이 뒷이야기가 모두 아사코가 오사카의 새 집으로 이사 가기 전 꾼 꿈이라고 보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요컨대, 바쿠는 실제로 아사코 집에 찾아간 것이다. (-> 로 이어짐.)


[1] 하마구치 류스케의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카라타 에리카를 주연으로 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그녀의 인기가 영화 판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해외 제목이 <아사코 I & II>가 된 것은 단순히 영화 판매를 위해서라고 보는 것은 쉽고 또 타당해 보인다. 그럼에도 아사코가 아니라 아사코 I & II”이 된 배경을 추론해보는 작업, “12”라는 넘버링을 이해해보는 작업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2] 이와 관련해서 하마구치 류스케는 사카이 고와 함께 도호쿠 3부작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이 있다. <파도의 소리>(2011), <파도의 목소리>("게센누마""신치마치" , 2013), <노래하는 사람>(2013)으로 구성된 이 3부작에서, 두 감독은 재해 이후 이와테, 후쿠시마, 미야기현에 거주하는 33명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3] MATTHEW HERNON, “Ryusuke Hamaguchi on His New Film “Asako I & II” and Competing at Cannes Film Fest”, Tokyo Weekender, SEPTEMBER 14, 2018

[4] 구로사와 기요시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스승이다


[5] 실제로 한 인터뷰(https://youtu.be/NbSl7GaSTsk)에선 하마구치 류스케에게 <아사코 I & II>를 유령 이야기(ghost story)로 바라보는지 묻는 질문이 있다. 이에 대해, 하마구치는 그런 해석을 이해는 하지만, 자신은 다소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일상에서의 감정과 두려움을 동시에 포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이 때문에 일상을 묘사하는 것이 곧 무서운 이야기(horror story)가 될 수 있다고 답한다. 자세한 답변은 영상 참조.


[6] 유운성, 하나의 시선을 위한 퍼포먼스: 나루세 미키오에 대한 노트, 유령과 파수꾼들, 2018, 329.


[7] [6]과 동일, 336.


[8] 아사코뿐만 아니라 우리가 료헤이를 처음 볼 때 떠오른 생각들. 바쿠가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료헤이인척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이 의심은 료헤이가 바쿠와 똑같은 외모를 갖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대학 때부터) '오사카에서 생활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증폭된다. (cf. 료헤이의 고향은 오사카가 아니라 히메지다.) 아니면 멜로드라마의 전형적 서사? 바쿠가 사라진 이후 교통사고를 당해 이전의 기억이 삭제되고, 료헤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물론 바쿠와 료헤이가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이 이후 여러 방식으로 증명된다. 특히, 후반부 식당에서 아사코를 사이에 두고 료헤이와 바쿠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씬에서 그 증명은 절정에 이른다.


[9] 회사 동료 쿠시하시는 이 사건을 두고, 외국 이름으로 이름을 변경하는 것은 회사의 정체성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한다. 즉 고유명으로서 이름에 대한 강조. 쿠시하시의 말마따나 이름은 곧 정체성을 의미하며, 함부로 바꿔선 안 되는 것인가? 이와 같은 쿠시하시의 말을 아사코의 말과 겹쳐 읽으면 흥미롭다. 우리는 아사코가 바쿠에 빠지게 된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단지 본문에서 밝힌 것처럼 시점 쇼트와 연관지어 운명적 사랑이라고 짐작해볼 뿐이었다. 사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아사코가 '자신이 바쿠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의 이름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일종의 자기 정당화? 쿠시하시의 말과 하루요의 조언(“바쿠와 헤어져라”)을 겹쳐서 아사코의 상황을 이해해보면, 아사코는 바쿠라는 이름()을 통해 바쿠를 이해했다고 믿고(착각하고), 그에게 콩깍지가 씌어 끌려다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아사코에게 조언을 했던 하루요의 이름이 바뀌게 된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하루요는 (쁘띠) 성형을 해서 싱가포르 남자와 결혼했고, 따라서 그녀의 성은 외국 성으로 바뀌게 된다. 타의와 자의에 의해 하루요의 외적인 요소들은 변화했다. 그러면, 하루요의 정체성이 바뀐 것인가? 그녀는 싱가포르에서 결국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다. 정체성을 바꾸고 외국에 나가서 살아가려고 했던 것의 실패. 혹은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운명. 뿐만 아니라, 하루요는 성과 얼굴이 바뀌기 전에도 아사코를 위했고(물론 그것이 진심어린 조언이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2016년 도쿄에서도 아사코의 선택을 (문자를 통해) 응원했다. , 하루요는 일관적이다. 요컨대, 쿠시하시의 말은 하루요의 경우와 겹쳐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사코가 집착했던 ‘(바쿠라는) 이름‘(바쿠의) 외모는 바쿠라는 실재 혹은 존재 자체를 좋아하는 것과는 무관한, 어쩌면 허상에 가까운 것이다. , 이 둘을 통해 바쿠의 정체성을 읽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아사코는 (그녀의 표현대로) ‘성장하기 이전에, 2016년 바쿠를 다시 만나기 이전에는, ‘진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한때 바쿠를 좋아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이유로 료헤이와 교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다시 마주한 바쿠에게 끌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진을 같이 겪고, 또 그 상처를 같이 극복한 것은 바쿠가 아니라 료헤이다. 아사코는 그런 료헤이에게 진정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바쿠의 차 안에서 잠에 들었다가 깨어난 후 바쿠가 료헤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고 료헤이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이름이나 외모만을 통해 누군가의 정체성을 읽어내거나 혹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이다.

[10] 바쿠와 료헤이를 연기한 히가시데 마사히로(東出 昌大)는 실제로 모델이자 연기자이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이전 작품 <해피 아워>에서 비전문 배우들과 같이 작업했던 것과 달리 <자나 깨나>에서 전문 배우들과 작업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 하마구치가 말하는대로 단순히 영화 판매 증진혹은 국제 영화제 진출을 위해서 전문 배우를 기용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1(d)'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11] 공원, 배드민턴, (무언가를 보려는 혹은 차지하려는) 군중 속 주인공. 이런 요소들 때문인지, <자나 깨나>를 보면서 종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블로우-Blow-Up>(1966)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편, 하마구치 류스케의 이전 작품 <해피 아워>에선 안토니오니의 <라벤투라 L’Avventura>(1960)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댓글 3개:

  1. [수정 내역_181229업데이트]

    (1) ‘1(a)’ : ‘자는 경우’ -> ‘자고 있는 경우’

    (2) ‘1(b)’ : 료헤이는 “누구세요?”라고 묻는다. -> 료헤이는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3) ‘1(c)’ : "아사코, 나 왔어." -> "아사코, 나 돌아왔어."

    (4) 각주 [8] : (료헤이의 고향을 오사카라고 표기했었음.) -> 이 의심은 료헤이가 바쿠와 똑같은 외모를 갖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대학 때부터) '오사카에서 생활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증폭된다. (cf. 료헤이의 고향은 오사카가 아니라 히메지다.)

    (5) 각주 [9] : 마지막 문장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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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下편 링크 => http://overlookhotel2016.blogspot.com/2018/12/2018_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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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멋진 리뷰 아주 잘 읽었습니다.
    꼼꼼한 주석 내용들까지..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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