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지난 6월 초 하마구치 류스케의 <심도 The Depths>(2010)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처음 감상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돌출되어 보이는 이 작품을 두고 사람들은 ‘이야기가 엉성하다', ‘연기자들의 연기가 어색하다'는 혹평을 남겼다. 당시에 이런 혹평에 반발하는 글을 작성하던 도중 (‘기말고사'라는) 개인 사정상 글을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은 <심도>를 딱 한 번 보고 줄거리나 숏 등을 복기한 노트와 6월 1일과 2일 두 차례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의 대화’에서 들은 것 등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이다. (이 글이 <심도> 자체를 심도 깊게 분석하는 글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심도>의 세부적인 부분과 관련해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나중에 <심도>를 다시 보게 된다면, 폴 발레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에서 한 것처럼 이 글에 변경/발전된 생각을 코멘터리처럼 덧붙이고 싶다.)
1.
1978년생 하마구치 류스케는 도쿄예술대학(TUA) 영상대학원 졸업작품으로 <열정>(2008)을 내놓은 뒤 사실상 2010년대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감독이다. 2010년대의 끝인 2019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특별전이 열렸고, 약 일주일 동안 단편을 제외한 하마구치의 작품들, 즉 <열정>(2008), <심도>(2010), <친밀함>(2012), <해피 아워>(2015), <자나 깨나>(2018), (사카이 고랑 공동작업한 동일본 대지진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파도의 소리>(2011), <파도의 목소리: 신치마치>(2013), <파도의 목소리: 게센누마>(2013), <노래하는 사람>(2013)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언급한 영화들을 모두 감상하면서 <해피 아워>와 <자나 깨나>를 경유해서 미약하게 인지하고 있던 하마구치의 세계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하마구치 작가론'을 구상하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특히, 그의 단편들을 아직 보지 못했다.), 다만 분명히 알게 된 건 <열정>, <심도>, <친밀함>이 있었기에 <해피 아워>가 나올 수 있었고, 또 동일본 대지진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작업했기에 <자나 깨나>가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 앞서 언급한 영화들 중 <심도>에 집중하고자 하는 이유는, 우선 <심도>는 하마구치 필모 중 가장 돌출된 작품이기도 하고, 또 하마구치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한일합작 작품인데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거의 조명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하마구치는 본인의 작품 중 <심도>를 정말 좋아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심지어 <자나 깨나>를 찍으면서 <심도>를 찍을 때의 느낌을 많이 떠올렸다고 한다. 이런 점들과 더불어,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심도>는 ‘하마구치 류스케 연출 방법'의 은유적 모델이 될 법한 작품이기에 하마구치 필모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2.
먼저 <심도>의 제작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009년, 심윤보 프로듀서가 쓴 <심도>의 원안이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와 도쿄예술대학 영상대학원의 프로듀싱 전공 공동 워크숍의 경쟁 피칭에서 뽑혔고, 한일 합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심도>를 제작하기 위해 양국의 스태프들이 선정되었다. 그렇게 (정성일 감독의 <천당의 밤과 안개>(2015), <녹차의 중력>(2018)의 촬영감독으로 잘 알려진) 양근영이 촬영을, 하마구치가 연출을 맡게 되었다. 배우는 한국에서 보낸 캐스팅 리스트를 보고 하마구치가 직접 선정했으며, 각본은 하마구치와 오우라가 한국 측에 검사를 받으면서 공동 집필을 했다(아마 한국어 대사 등을 검사받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심도>에는 한국인 배우(김민준, 박소희 등)와 일본인 배우(이시다 호시, 요메무라 료우타로 등) 모두가 출연하게 되었다. 대사의 언어와 관련해선, 배환(김민준)과 류(이시다 호시) 사이에서 통역을 해 주는 길수(박소희)를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각자 모국어(한국어, 일본어)만을 사용한다. 물론 예외적으로 배환이 종종 영어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극 중 인물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 설정을 두고 한일 스태프들 사이에서의 (언어적, 문화적 차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이 극 중 상황으로까지 반영된 것이다, 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즉, 한일 합작이라는 특수한 제작 환경 때문에 ‘완전한 소통의 불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소통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영화 내/외적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된 것이다. 어쨌든 2010년 3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시작된 촬영은 약 한 달 동안 총 21회차로 진행되었으며 편집이나 초반 믹싱은 일본에서, 색보정이나 마스터 믹싱은 한국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하마구치의 말에 따르면, <심도>는 CJ엔터테인먼트의 배급으로 약 일주일 정도 한국 영화관에 걸렸다. (즉, 사실상 하마구치는 한국에서 <해피 아워>보다 <심도>로 먼저 소개가 된 것이다.)
여기서 잠시 우회해야 할 것 같다. <심도>를 찍기 이전에 하마구치의 연출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도쿄예술대학 재학 시절 하마구치는 <솔라리스>(2007)를 찍으면서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꼼꼼히 내렸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배우들에게 시선을 마주쳐라, 마주치지 말아라 등의 디렉션을 내릴 정도로 디테일한 것까지 관여를 했던 것이다. 그 당시 하마구치는 연출에 있어서 전권을 쥐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이 연장선상에서 <열정>을 준비하고, 찍었을 테다. 물론 하마구치의 말에 따르면, 그는 <열정>에선 <솔라리스> 때만큼 배우들에게 크게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않았고, 세부적인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하마구치는 <열정>에서 자신의 “영화 열정"(리차드 라우드의 책 제목)을 쏟아붓는다. 그래서인지 <열정>을 보고 있노라면, 하마구치의 시네필리적인 면모(특히, 하마구치가 여러 번 좋아한다고 고백한 에릭 로메르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가 두드러지고, 또 대사를 쓰는 데 있어서 자신의 장기를 감추지 않고 십분 발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사실, <열정>에서 ‘대화'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하마구치가 도쿄예술대학 재학 시절 평론가 우에모토 요이치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우에모토가 일본 영화에서의 말의 빈곤함을 지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신의 공력을 총동원해서 <열정>을 촬영하던 도중에 하마구치는 몇 번의 우연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교훈을 얻게 된다. 바로 감독의 연출 영역 바깥에서 ‘우연'(혹은 ‘운')을 포착하는 것 역시 영화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교훈은 하마구치가 <열정> 이후 1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연출 비전으로 삼게 된다.
하마구치의 말에 따르면, 그가 <열정>을 작업하면서 얻은 교훈은 두 가지이다. 먼저, 이상적인 그림을 얻기 위해선 ‘손에서 한번 놓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그저) 상황에 맡겨야 한다'는 말인데, ‘무계획'의 의미는 아니다. 물론 상황에 맡긴다고 다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딱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 ‘우연적 순간'은 분명히 발생하고, 바로 그 지점에서 삶에 대한 감각이 형성된다. 그다음, ‘우연'(coincidence)이 화면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착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하마구치는 <열정>의 두 장면을 언급한다. 후반부의 두 장면인데 바로 트럭 씬과 (엔딩의) 소파 씬이다.
먼저 트럭 씬의 경우, 겐이치로가 가호로부터 자신의 진심을 인정받은 줄 알고 좋아서 풍차돌리기를 한 뒤 다시 키스를 하려는데, 가호가 안 되겠다고 말하며 프레임 바깥으로 빠지는 장면을 말한다. 문제는 가호가 프레임 바깥으로 빠지는 순간 발생한다. 가호가 빠져나간 뒤 곧바로 거대한 화물 트럭이 갑자기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관객은 순간적으로 가호가 트럭에 치이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실제로 하마구치도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로 그 순간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사실 트럭은 촬영 현장에서 20~3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망원렌즈로 촬영을 하다 보니 거리감이 왜곡되어 그런 효과를 낳게 된 것이다. 하마구치는 이 장면을 두 번 찍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원하는 ‘새벽의 시간대'(매직 아워)가 하루에 딱 한 번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첫 번째 테이크에서 원하는 결과물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담기 위해서 두 번째 촬영을 하게 된 것인데, 갑자기 트럭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우연적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후 편집실에서 하마구치는 두 개의 테이크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즉, 첫 번째의 ‘아름다운 장면이 담긴 테이크'와 두 번째의 ‘우연적 순간이 담긴 테이크' 사이에서의 고민. 결과적으로 하마구치는 후자를 택했다. 그 이유는, 그 장면이 이 세계에서 딱 한 번만 벌어질 수 있는 것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럭이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우연의 순간이 당시 연기하던 인물들의 상황이나 감정과 적합하게 ‘링크’(link)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소파 씬의 경우, 도모야와 가호가 이제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도모야가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용서해달라고 한 뒤 둘이 같이 프레임 바깥으로 빠지는 장면을 말한다. 이 장면에서 도모야와 가호의 시선은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혹은 같은 방향으로, 같은 곳을 바라본다. 이런 시선 처리는 하마구치의 디테일한 주문에 의한 것이 아니다. 달리 말해, 감독이나 스태프 등이 의도적으로 연출하고자 하지 않았지만, 배우들이 시선 처리를 그 상황(에서의 감정)에 맞게 한 것이다. 이는 곧 배우들 사이에서 발생한 우연적 순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순간을 과연 카메라로 잘 포착할 수 있는가이다. 즉, ‘서로 무관한 두 개인, 혹은 두 개체가 서로 링크되는 순간’을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위치, 장소에 카메라를 놓는 것이 연출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다. 운이 좋게도 하마구치는 이런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했다. 달리 말해, ‘현장(혹은 배우)과 카메라 사이의 링크' 지점을 찾은 것이다. 이때부터 하마구치는 다시 만들어낼 수 없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는 것이 카메라라는 장치의 본질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연출이란 (‘운에 단순히 맡기는 것’과는 구분되는) ‘운을 만들어내는 것'이자 ‘우연을 잘 포착하는 것'이라고 믿고, 이를 발전시켜온 것이 자신의 10년의 커리어라고 말했다.
3.
하마구치가 <열정> 다음 작품으로 <심도>의 연출을 맡기로 결심한 것은,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일종의 실험을 하고 싶어서였을까? 즉, 한국인 스태프들, 배우들과 번역, 통역을 거쳐서 불완전하게 소통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차이'와 ‘우연의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고 싶어서(즉, 영화 안으로 끌어오고 싶어서) 하마구치가 <심도>의 연출을 맡지 않았을까? 아니, 질문의 방향을 다소 바꿔야 할 것 같다. 하마구치는 <심도>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분명 <심도>의 촬영 현장은 <열정>에서처럼 자신의 공력을 총동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을 텐데, 하마구치는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고 과감하게 걸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무언가를 배웠다. 그다음 2010년 말부터 하마구치는 배우 코스 수업을 3개월 정도 담당했다. 이때, ‘(영화) 배우들과의 친밀해지는 과정'을 통해 ‘(연극) 배우들 간의 친밀함'을 주제로 한 <친밀함>을 찍었다. 그러다 2011년 3월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하마구치는 사카이 고랑 동일본 대지진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하기로 결심하는데, 바로 지진을 경험한 사람들의 말을 듣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방식은 카메라 앞에서 (한 씬에) 한 사람이 계속 이야기를 하는 왕빙의 <중국 여인의 연대기>(2007)나 <사령혼>(2018)과 같은 류의 영화에서의 방식과는 다르다. 하마구치와 사카이 고는 (서로 관련이 있는) 두 사람 이상의 사람을 짝을 지어 마주 보게 만들고 ‘대화’를 하게 한 뒤 그것을 카메라로 담았다. 왜냐하면 “대화하는 행위 자체에 굉장한 희망이 담겨있다”고 생각해서이다. 하마구치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도 우연을 포착하는 데 관심을 두었고, 그러기 위해선 카메라의 위치 선정이나 피사체들이 대화를 잘 할 수 있게끔 촬영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런 일련의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하마구치는 ‘숏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배우를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하마구치는 존 카사베츠와 장 르누아르를 참조한다. 특히, 하마구치가 카사베츠로부터는 배운 것은 배우가 안심하고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며, 르누아르로부터 배운 것은 이탈리아식 책 읽기를 통해 텍스트와 배우 사이의 친화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르누아르와 관련해선 자크 리베트의 <우리의 후견인 장 르누아르 2부: 배우의 연출>(1967), 지젤 브룬베르거의 <장 르누아르의 연기지도>(1968)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하마구치는 자신의 경험 외에 카사베츠와 르누아르를 끌어와 연기 지도법을 고안했고, 이를 접목시켜 자신의 두 번째 데뷔작이라고 해도 무방한 <해피 아워>를 찍게 된다. 한편, <해피 아워>를 선보인 후에 하마구치는 <해피 아워>의 제작 기록을 담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 カメラの前で演じること』이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요컨대, 하마구치는 허우샤오시엔과 또 다른 의미로 학생의 입장에서 계속 무언가를 배우면서 영화를 찍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열정>에서 <해피 아워>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하마구치 연출 방법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그 분기점이 <심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마구치가 <심도>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하마구치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 인용. 하마구치는 <심도>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배우들과 토론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다 특히 촬영 부분과 관련해서 촬영감독과 단순한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즉, 하마구치는 배우 연출만 하고, 그것을 촬영감독은 카메라로 찍기만 하면 되는 그런 관계가 된 것이다. 하마구치는 이런 간단한 관계 속에서도 영화를 찍을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가설. 혹은 하마구치 세계에서 <심도>라는 퍼즐 조각을 이해해보려는 시도. 분명 <심도>는 <열정> 때와 달리 하마구치가 연출적으로 전권을 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철저히 분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는 아마 하마구치가 밝힌 것처럼 토론을 거쳐 자연스럽게 도달한 결과일 테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다. 다른 촬영 현장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충분히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마구치가 <열정> 때 마주한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자. ‘영화에서 연출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실 이와 관련해서 하마구치는 이미 당시의 경험으로부터 ‘운을 만들어내는 것' 혹은 ‘우연을 잘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마구치가 <심도>에서 연출자로서 공력을 기울인 것은 바로 서로 다른 개체들 간의 링크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여기서 ‘서로 다른 개체들'은 ‘배우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연출자' 모두를 함축한다.
하마구치가 <심도>라는 특수한 제작 환경에서 연출자로서 한 역할을 내 식으로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심도> 촬영 팀이라는 하나의 집합이 있다. 이 집합은 ‘한국 스태프/배우들'이라는 소집합과 ‘일본 스태프/배우들'이라는 소집합의 합집합이다. 두 개의 소집합 사이엔 어느 정도의 교집합이 있지만, 그 범위가 넓지는 않다. 그리고 각각의 소집합 내에도 이질적인 서로 다른 원소들이 있다. 두 소집합의 합집합의 원소 중엔 연출자 하마구치라는 원소가 있다. 이 원소(하마구치)는 적어도 다른 원소들(스태프/배우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점에서 분명 지위적으로 우위에 있다. 이것이 다른 원소들과 차별되는 연출자 하마구치 원소의 특징이다. 여기서 하마구치는 이 합집합의 방향을 ‘갑과 을의 관계를 형성하는 방향'이 아니라 ‘같이 영화를 만드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일종의 우정의 시스템 속에서 같이 영화를 만드는 것을 시도한 것이다. 이는 아마 소통의 불완전함이 전제된 한일 합작이라는 특수한 제작 환경에서 하마구치가 최선으로 선택한 연출 방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마구치는 타자의 타자성을 긍정하면서, 즉 타자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친밀해지는 것'(물론 친밀함의 과정은 쉽지 않다. 오히려 하마구치의 말마따나 “가치관이 흔들리고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을 연출 방향으로 잡고, 그 교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의 순간, 감정의 링크의 순간을 영화에 담아내려고 시도한 것이다. 즉, <심도>를 연출하면서 하마구치는 스태프/배우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되, 대신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친밀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맺어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리고 그 공존 속에서 발생하는 우연의 순간, 감정의 링크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영화 작업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여기서 문득 떠오른 사례가 있다. 바로 알베르 세라의 경우다. 세라 역시 <내 죽음의 이야기>(2013)에서 스태프들과의 불완전한 소통의 상황을 영화 작업의 중요한 요소로 끌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세라는 <내 죽음의 이야기>를 4:3 비율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촬영이 진행되던 도중 세라는 문득 ‘이 영화는 사실 2.35:1 비율로 찍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세라는 이 사실을 스태프들과 논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라는 ‘나는 화면 비율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스태프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계속 찍으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라고 생각하면서 촬영을 진행했다. 그리고 영화 촬영이 다 끝난 뒤 편집실에서 세라는 4:3으로 찍은 영화를 2.35:1로 편집했다. 정리하자면, 세라는 촬영 중 우연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했지만, 이를 스태프들과 소통하지 않고 밀고 나아가 영화를 완성한 것이다. 이 사례는 하마구치랑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다. 하마구치는 세라처럼 극단적으로 ‘불통(의 상황)’을 영화 안으로 끌어 오지 않았다. 오히려 하마구치는 소통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교류를 하려고 시도하고, 그 과정 자체가 영화 작업에서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해피 아워> 때부터 정식화되어 본격적으로 영화에 접목되는) 하마구치의 ‘함께 촬영하는 과정에서 스태프/배우들 간의 발생하는 우연적 순간, 감정적 반응을 캐치하는 연출 방식'은 불통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신뢰를 전제로 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자나 깨나> 작업 당시 하마구치는 도쿄예술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사사키 야스유키에게 촬영을 아예 맡겼다. 물론 하마구치와 사사키는 각자 추구하는 예술적 비전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은 같이 작업하면서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같이 영화를 보고, 토론을 거쳐 기준점을 찾았다. 가령 <자나 깨나> 촬영 전에 하마구치와 사사키는 같이 나루세 미키오의 <흐르다>(1956)를 봤다. 그리고 하마구치는 사사키에게 ‘나루세가 인물의 시선들로 공간을 조직하는 느낌'을 <자나 깨나>에서 살리고 싶다고 요청했고, 이에 사사키는 <흐르다>에서 몇 개의 렌즈가 쓰였는지 숏 분석을 해왔다. 그리고 둘은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촬영을 하면 좋을지 토론을 했다. 요컨대, 하마구치 연출 방법에서 우선적으로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토론을 통한 신뢰 관계 형성인 것이다.
4.
하마구치 연출 방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토론'(혹은 ‘대화', ‘소통', ‘교류' 등)이다. 이는 일종의 우정의 시스템하에서 ‘같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연출자와 스태프/배우들 간의 토론도 중요하지만, 이는 사실 배우들 간의 우연한 감정적 링크를 더 잘 포착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 간의, 혹은 배우와 텍스트와의 대화다. 그래서 하마구치는 <해피 아워> 때부터 ‘워크숍'을 진행했다. <해피 아워>의 경우, 촬영에 들어가기 6개월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총 23회 워크숍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 워크숍에서 진행하는 것은 대사나 동작을 리허설하는 것이 아니라, 르누아르의 이탈리아식 책 읽기처럼 시나리오나 부수적인 서브 텍스트를 읽는 작업이다. 즉, 워크숍 기간 동안 배우는 감정적 뉘앙스를 배제한 채 전화번호부를 읽듯이 텍스트를 계속 읽는 것이다. 배우는 아무 감정 없이 읽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각본을 덮은 상태에서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사를 외운다. 이런 식으로 리딩 훈련을 하면, 일단 배우와 텍스트는 ‘친밀해진다.’ 그리고 큰 실패 없이 몇 번이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배우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러면 현장에서 배우는 텍스트를 자신의 심지로 말하게 된다. 이 정도 단계에 오르게 만드는 것이 하마구치 워크숍의 목적이다. 촬영 현장에선 하마구치는 배우에게 ‘책 읽기' 때와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배우 본인이 원하는 대로 연기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한다. 왜냐하면 만약 배우에게 “어떤 감정이 일어날 경우, 솔직하게 발전시켜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실 배우와 텍스트는 ‘무관계'의 관계에 있다. 배우는 배우이기에(즉, 외적인 동기에 의해) 텍스트를 외워야 하긴 하지만, 텍스트를 자신의 심지로 말할 이유는(즉, 내적인 동기는) 딱히 없다. 그렇다면 배우가 직접 즉흥적으로 애드리브를 하게 하면 어떤가? 하마구치는 애드리브를 요구하는 것은 각본가나 연출자의 역할을 배우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텍스트, 즉 대사는 필요하다. 그런데 배우가 대사를 단순히 외워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면 이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말 그대로 ‘연기’를 하는 것이다.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고 진실되게 ‘텍스트를 말하게' 하기 위해선 바로 배우와 텍스트가 친밀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마구치가 워크숍을 고안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하마구치가 인정했듯이, 배우와 텍스트가 친밀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즉, 배우가 텍스트를 완전히 자신의 심지로 말하게 되는 단계는 사실상 이상(理想)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완전히 친밀해질 때까지 무제한 워크숍을 진행할 순 없다. 그래서 하마구치는 리딩 훈련을 통해 배우가 어느 정도 텍스트와 친밀해졌다고 판단하면 같이 촬영 현장으로 간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선 배우의 ‘연기'와 텍스트에 대한 배우의 ‘반응'의 혼재를 포착한다. 이와 관련해서 하마구치는 “제가 배우를 찍을 때 초점을 두는 것은 단순히 배우가 대사를 잘 외우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배우가 자신의 의지를 넘어서는 대사(‘좋아한다', ‘싫어한다' 등)를 말할 때 신체에서 벌어지는 우연성입니다.”고 말했다. 여기서 바로 하마구치는 텍스트를 통한 형상-픽션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텍스트는 각본가가 창조한 픽션의 영역에 있다. 그다음 텍스트에 대한 배우의 감정적/신체적 반응은 연출자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종의 다큐멘터리의 영역에 있다. 그리고 이 두 영역이 맞닿는 순간을 하마구치는 텍스트와 배우 사이의 ‘우연의 일치(coincidence)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이 ‘우연의 일치’는 이제 배우들 간의 감정적 링크의 차원으로 넘어간다. 하마구치가 진행하는 워크숍의 장점 중 하나는 배우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충분히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게 되면서, 촬영 현장에서 보다 진솔한 (텍스트에 대한) 반응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하마구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배우의 ‘목소리’다. 왜냐하면 하마구치는 배우들이 진솔한 반응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의 증거는 바로 배우의 ‘진실한 발음(發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하마구치는 <열정> 이후 10년의 커리어 동안 자신의 관심이 ‘이미지’에서 ‘사운드’로 전이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하마구치는 동일본 대지진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면서 어떤 목소리를 영화에 담아야 할지를 배웠다고 한다.
이처럼 하마구치가 본격적으로 ‘말'과 ‘대화’를 다시 시네마 안으로 끌고 들어온 것은 주지할 만하다. 왜냐하면 “21세기 영화의 한 가지 경향은 다큐멘터리에 대한/의한 새로운 질문"(정성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유행처럼 일군의 다큐멘터리는 마치 아다치 마사오의 풍경론을 (잘못) 배운 듯한 태도로 말을 단순히 최소화하고, 인물이나 풍경을 오랜 시간 동안 응시하였다. 그렇게 말이 제거된 이미지로 범벅된 영화들이 나왔다. 즉, ‘이미지주의 시네마'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런 흐름이 형성되었다. 물론 그중에는 기억해야 할 작품도 있다. 가령 연출자가 아니라 (카메라) 설치자로 불러야 할 루시엔 카스탱-테일러와 베레나 파라벨의 <리바이어던>(2012)과 같은 작품. 이 영화는 어떤 감정, 판단, 설명 없이, 즉 말이 없이 배에 설치한 카메라로 채집한 이미지만을 나열하며 21세기에 뤼미에르적 태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서 몇몇의 감독들 중 특히 하마구치는 마치 로메르가 그러했듯 “말의 힘"(장-뤽 고다르의 1988년도 작품 제목)을 강조하고 있다. 하마구치는 “타자와 공존하기 위해서, 또는 관계를 맺기 위한 도구로서" 말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하마구치는 ‘대화’를 자신의 영화 내/외적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로 삼은 것이다. 대화의 과정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은 ‘해피 아워'이고, 이질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해피 아워'이다. 하마구치는 이 두 가지 순간 모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동질적인 느낌이 달성되었을 때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산산조각이 났을 때도 소중한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하마구치는 (현실에서 연출자와 스태프/배우들 간의, 혹은 가상에서 인물들 간의) 대화의 과정에서 생기는 이 두 가지 순간을 영화에 담아내거나, 영화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5.
그런데 <심도>에는 언어적 장벽 때문에 대화를 하기 힘든 두 사람이 주연으로 나온다. 그 둘은 바로 한국의 유명 사진작가 배환과 방황하는 일본 소년 류이다. 잠시 우회해서 <심도>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심도>는 배환이 일본에 도착해서 친구 길수의 결혼식을 가면서 바깥 풍경을 카메라로 찍는 숏으로부터 시작한다. 길수는 일본인 유카와 결혼을 한다. 한편, 길수와 유카의 결혼식날 근처 호텔에선 류가 남자 손님을 상대한다. 류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직에 몸을 담고 있으며, 영화 속 표현에 따르면 남창(男娼)이다. 류가 상대하던 남자가 갑자기 미끄러져 죽자 류는 매니저를 불러 시체를 처리한다. 다시 결혼식. 유카는 결혼식장에 찾아온 한 여자의 손을 잡고 떠난다. 즉, 길수와의 결혼을 포기한 것이다. 유카가 떠나는 모습은 잠시 결혼식장에서 빠져나온 아이와 배환에 의해 목격된다. 배환은 그 순간을 카메라로 찍는데, 찍으려는 순간 류와 부딪힌다. 그렇게 배환은 류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순간적인 시선의 교환. 류는 아이가 놓친 풍선을 잡아준다. 배환은 그 순간도 카메라로 찍는다. 유카가 떠나 소위 멘붕 상태에 빠진 길수를 위해 배환은 일본에 며칠 머물면서 길수의 스튜디오(UP Studio)에서 사진작가 일을 하게 된다. 며칠 지내면서 배환은 길수가 유카를 위해 사진 스튜디오를 세웠고, 그 과정에서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린 사실을 알게 된다. 돈을 갚기 위해 길수는 누드 사진이나 특이한 컨셉 사진을 찍어왔다. 그런 의뢰가 배환이 체류하는 동안에도 몇 번 들어왔고, 그때마다 배환은 개의치 않고 다 작업을 했다. 배환 역시 한국에 있었으면 유명작가라서 하지 않았을 사진 작업들에 재미를 느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길수가 돈을 빌렸던 조직에 속한 류가 홍보 사이트에 게재할 목적의 사진을 찍으러 매니저와 함께 스튜디오에 오게 된다. 배환과 류의 재만남. 사실 배환은 처음 류를 마주했을 때부터 무언가를 느끼고, 그걸 사진으로 포착하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필 사진 작업이 끝나고도 배환은 류에게 자신이 돈을 더 줄 테니 조금만 더 사진을 찍자고 부탁한다. 류와 매니저는 승낙하고, 결과적으로 프로필 사진보다 그 이후에 찍은 사진을 마음에 들어 하게 된다. 매니저는 배환이 고급 고객이라고 판단하고, 류의 머리를 염색시킨 뒤 좋은 옷도 사 입힌다. 하지만 이렇게 외양적으로만 변화된 류를 보고 배환은 매력이 사라졌다며 촬영을 접어버린다. (그리고 류는 바람을 맞으면서 쓸쓸하게 걸어간다.) 이후 류는 스튜디오에 다시 찾아오는데, 촬영은 답보 상태에 빠진다. 길수는 옆에서 류에게 모델로서 능력이 없다고 핀잔을 준다. 그리고 류의 결단. 삭발을 하고 나타나 카메라를 응시한다. 배환은 류의 그런 모습을 보고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자신이 한국에 갈 때 같이 가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길수는 제대로 통역을 해주지 않는다. 그러자 배환은 진심이라면서 제대로 통역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류는 이 제안을 들어도 한국으로 갈 생각은 없다. 혹은 자신이 정말 모델로서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이런 상황에서 류가 속한 조직의 보스는 류와 매니저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음(고객이 죽은 것을 보고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매니저는 류를 빼낸 뒤 멀리 도망가라고 한 뒤 다시 조직으로 돌아간다. 류는 비를 맞으면서 스튜디오로 간다. 그리고 배환에게 자기를 한국으로 데려간다는 말이 진심인지 물으며, 자기도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환은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여기서 며칠 같이 생활하면서 정말 한국으로 가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 같이 가자고 말한다.
그런데 그날 밤, 길수가 류가 쉬고 있는 방으로 들어와 ‘너가 배환을 망치게 될 것이다'고 말하며 빨리 나가라고 말한다. 류는 지지 않고 ‘당신에게도 보답이 있을 거다'고 말하며 길수의 눈을 응시하다 키스를 한다. 그렇게 둘은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이 상황을 모른 채 배환은 류와의 사진 작업을 이어나가다 우연히 류가 길수와 키스를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고, 결국 길수는 배환에게 ‘너는 다 가졌으니 류라도 놔두고 가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 말을 듣고 배환은 화가 나서 길수를 때려눕힌다. 그리고 류를 빼내어 같이 공항으로 간다. 하지만 서울로 가는 비행기가 결항하여 어쩔 수 없이 근처 호텔로 가게 된다. 둘은 각자 방을 쓰기로 한다. 그리고 배환은 류에게 ‘내일 아침 8시에 보자’고 말하는데, 통역자였던 길수가 없으니 이 말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배환은 사진 작업을 하면서 류에게 모델로서의 매력 그 이상을 느꼈는지, 자기 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류의 방 앞에서 서성거린다. 이때 자기 방에서 전화벨소리(자신의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자 그냥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류 역시 나와서 배환의 방 앞에서 서성거리는데 이내 포기하고 대신 바(bar)로 내려간다. 바에서 한 남자가 추파를 던져도 류는 무시하다가 결국 시비가 붙게 된다. 갑자기 비행기가 이륙하는 숏이 삽입된 뒤 다음날이 된다. 류는 그 낯선 남자와 하룻밤을 보냈다. 한편, 배환은 류를 깨우지 않고, 오해가 생겨 길수와 몸다툼을 하기 직전에 암실에서 작업하던 사진을 류의 방문 틈새로 집어넣은 뒤 유유히 호텔을 빠져나와 택시를 탄다. 류도 무언가 느꼈는지 가방을 챙긴 뒤 1층 로비로 내려가서 배환이 없는 것을 보고 택시를 탄다. 그렇게 두 대의 택시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우연히 배환은 옆 택시에 류가 타고 있는 것을 본다. 류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손 인사를 건넨다. 그 순간 길이 갈린다. 류는 배환을 따라 공항으로 가지 않고 또다시 떠도는 삶을 택한 것이다. 배환은 부리나케 카메라를 들어 마지막으로 류를 찍으려고 한다. 하지만 류가 탄 택시는 빠른 속도로 멀어진다. 그래서 배환이 셔터를 누르는데 프레임 안에 류는 담기지 않는다. 배환이 찍은 숏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드는 의문. 아침이 밝자 배환과 류는 왜 같이 공항으로 가지 않고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우선 배환과 류는 소통을 할 수 없다. 배환은 일본어를 할 줄 모르고, 류는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둘 사이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길수가 통역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인, 일본인과 소통이 가능한 길수는 아내가 떠나는 것을 막지 못했고, 자신을 도와준 친구와 싸웠으며, 심지어 같이 하룻밤을 보낸 갈 곳 없는 소년을 붙잡으려는 시도도 실패했다. 달리 말해, 언어적인 측면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해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말 대신 불필요한 말을 덧붙이면서 오해가 생기고,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가다 결국 파국을 맞을 수 있다. 반면, 배환과 류는 언어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서로에게 조심스럽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언어 외의 다른 방식을 통해 서로의 의중이나 감정을 파악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어 표정이나 제스처, 목소리 등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둘이 정신적 교류를 할 수 있었던 매개체는 바로 ‘사진’이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심도>가 하마구치 필모에서 돌출적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하마구치는 다른 작품에서와 달리 유독 <심도>에서 소통의 도구로서 ‘말’(대화) 외에 ‘사진’(이미지)을 전면적으로 채택한다. 정확히는, ‘사진을 찍는/찍히는 행위'에 대한 강조. 이런 맥락은 하마구치의 연출 방법과 더불어 메타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배환과 류는 작가와 모델이라는 관계 속에서 몇 번의 사진 작업을 하면서 자기 자신과 상대방(타자)에 대해서 알아간다. 먼저 배환은 일본에서 우연히 마주친 소년에게 모델로서 묘한 매력을 느끼고, 같이 사진 작업을 하면서 류의 잠재능력을 발견한다. 또 류에게 잠재된 무언가를 찍으려고 노력하면서 작가로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쾌감을 느낀다. 한편, 류는 자신의 잠재능력을 알아봐준 배환과 작업하고, 그 결과물을 보면서 처음으로 신뢰받고 존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서 이전까지 몰랐던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과 가능성을 발견해나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배환과 류는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같이 한국으로 떠나기로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카메라라는 장치를 통해 배환과 류는 링크되었지만, 그러지 못한 길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길수가 둘의 관계에서 빠진 뒤 처음으로 배환과 류는 통역자 없이 단둘이 남게 된다. 둘은 공항으로 갔다가 서울행 비행기가 결항하는 바람에 근처 호텔로 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둘은 딱히 대화를 하진 않는다. 그리고 각자의 방에서 밤새 숙고할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고, 둘이 결심한 것은 ‘헤어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히 소통의 불완전함 때문은 아니다. 이미 두 사람은 서로를 신뢰할 정도로 친밀해졌기에 언어적인 장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헤어지기로 결정한 것은 왜일까? 일단 배환과 류가 같이 한국으로 가려는 이유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면, 단순히 감정적으로 링크가 되어 둘이 한국으로 가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감정적 링크 이면에 각자의 도구적 목적이 있다. 일종의 동상이몽적 상황. 배환은 자신이 새롭게 발견한 소년 류를 모델로 만들어 작가로서 느끼는 권태로움을 이겨내려고 한다. 한편, 류는 조직에서 도망쳐 나온 입장에서 어디로든 도망을 가야 한다. 물론 이런 도구적 목적 자체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배환과 류는 서로의 니즈를 충족하는 선에서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같이 떠나기로 했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둘은 작가와 모델로서 느끼던 감정이 다른 감정으로 전이되는 것을 우려했던 것 같다. 배환과 류가 호텔에 도착해서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가 서로 다른 타이밍에 한 번씩 나와서 상대방의 방 앞에서 서성이던 씬을 상기해보자. 이는 분명 배환과 류가 서로에게 동성애적 감정을 느낀 것이다. 어쩌면 이 감정이 언어적인 맥락이나 일적인 맥락에서 벗어나 둘이 서로에게 느끼는 가장 순수하고 솔직한 감정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배환은 결혼을 해서 자식이 있다. 그래서 배환은 전화벨소리가 울리자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간 것이다. 한편, 류 역시 배환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류는 배환의 방문을 열지 않고 바에서 술이나 마신 것이다. 왜냐하면 배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선을 넘으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둘의 관계, 특히 작가와 모델의 관계가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둘은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갔기에 별일 없이 밤은 지나갔다. 하지만 둘은 서로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각자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느꼈다. 그래서 둘은 이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렇게 아침이 밝고, 둘은 서로의 방문 앞에 잠시 서서 어떤 변화된 분위기를 감지하고 따로 택시를 탄 뒤 각자 갈 길을 간다. 그렇다면 짧지만 강렬한 교류의 결과로서 헤어짐은 각자에게 상처만 남긴 것일까? 그렇진 않다. 하마구치가 했던 말이 있다. 교류와 과정에서 “가치관이 서로 부딪치고,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퇴행적인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상처와 균열은 또 다른 가치관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헤어짐이 배환과 류에게 남긴 교훈이자 가치이다. 결국, 배환과 류는 이 상처와 균열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의 삶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6.
‘교류'에 관한 하마구치의 이 말, 서문에도 인용했던 이 말은 <심도>의 제작 배경과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여러 번 음미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심도> 이후 하마구치 작품을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마구치는 “<심도>를 찍은 후, 이제부터는 정말 내 자신이 찍고 싶은 것만 찍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때부터 <자나 깨나>까지 상당히 수월하게 진행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찍을 수 있었습니다.”고 말했다. 즉, <심도>는 하마구치에게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던 것 같다. 다만 하마구치는 <심도>를 작업하면서 소통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타자의 타자성을 긍정하며 교류하는 방식, 그리고 교류의 끝에 헤어짐을 마주하더라도 그 헤어짐에 가치가 있음을 배웠다. 이는 분명 하마구치가 이후 작품을 작업하는 방식이나 이야기의 주제를 잡는 데 있어서 어떤 의미로든 영향을 끼쳤다. 결국 <심도>는 일종의 메타 영화, 혹은 ‘하마구치 연출 방법'의 프로토타입 모델이라고 볼 수 있고, 그래서 하마구치 필모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하마구치의 <자나 깨나> 이후 신작 <Our Apprenticeship>(‘우리의 견습 수업' 정도로 직역이 가능할 것이다.)에서도 <심도>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시놉시스에 따르면, <Our Apprenticeship>은 한때 아이돌이었던 일본 소녀 나오미가 연기를 배우기 위해 파리에 있는 드라마 스쿨에 가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가치와 에너지를 얻는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나오미는 프랑스 게이 커플인 피에르와 장, 시리아 출신의 타힘, 벨기에 출신의 메리, 한국 출신의 여배우 소니와 친구가 된다. 이 친구들은 한 가지 규칙을 정하는데, 바로 ‘각자의 모국어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영화의 말미가 인상적이다. 나오미가 떠나는 날, 공항엔 소니만 배웅하러 온다. 이때 나오미는 소니에게 “나는 너를 항상 좋아했어. 그런데 말하기가 두려웠어.”라고 말한다. 그러자 소니는 나오미의 손을 잡은 채 “그런 말 하게 해서 미안해. 나도 너를 무척 좋아해.”라고 답한다. 둘은 웃으며 포옹하고 영화는 끝난다. 아직 시놉시스만 읽은 상태라 조심스럽지만, <Our Apprenticeship>은 상황 설정이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심도>가 분명 떠오른다. 특히 ‘각자의 모국어로 대화를 하는 규칙'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헤어지는 설정'은 <열정>, <심도>, <친밀함>과 궤를 같이하는 것 같다. <Our Apprenticeship>은 하마구치가 판이 좀 더 커진 <심도>를 파리에서 다시 찍는 작품이 될 것인가? 혹은 외국에서(적어도 지금까지 본 하마구치 영화에서 일본 바깥의 국가가 배경인 적은 없었다.) 자신의 초기작들의 변주를 시도하는 작품이 될 것인가? 물론 아직 확신할 순 없다. 다만 조만간 하마구치가 흥미로운 결과물을 가지고 돌아올 것임은 분명하다. 벌써부터 <Our Apprenticeship>이 기대가 된다.
※참고자료
1. 백종현, “[인터뷰] <심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현실의 균열 속에서 영화는 탄생한다””, 맥스무비, 2011년 3월 16일, http://news.maxmovie.com/85818
2. 심윤보, 이주익, “<심도> : 해외공동제작의 모든 것”, 한국영화아카데미 네이버 블로그, 2011, https://blog.naver.com/kafafilm/40125653909
3. 정성일, “[리뷰] <리바이어던> - 뤼미에르의 순간”, 서울아트시네마 티스토리 블로그, 2015, https://trafic.tistory.com/entry/리뷰-리바이어던
4. 정한석, “<루이 14세의 죽음>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영화의 전당 시네마테크, 2018년 6월 30일
5. 하마구치 류스케, “하마구치 류스케 인터뷰 1. 오오데라 신스케와의 대담”, 월간소식지 『시네마테크 Cinematheque』 vol.166, 2019, pp. 12-15
6. 하마구치 류스케, “하마구치 류스케 인터뷰 2. 홍상현과의 대담”, 월간소식지 『시네마테크 Cinematheque』 vol.166, 2019, pp. 16-18
7. 하마구치 류스케, “<열정>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2019년 6월 1일
8. 하마구치 류스케, “<아사코>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2019년 6월 2일
9. HAMAGUCHI Ryusuke, “<Our Apprenticeship> Synopsis”, The Hong Kong - Asia Film Financing Forum, 2019, https://www.haf.org.hk/upload/files/project/20190118143554_2358.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