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빛에 대한 회상 -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과의 대담 (카이에 뒤 시네마 2024년 11월호 수록)
Réminiscences* de la lumière (Entretien avec Apichatpong Weerasethakul)
* (옮긴이 주) réminiscence는 회상 외에 기억, 재기억, 상기 등으로도 번역 가능하다.
- 참고1. 본문은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 2024년 11월호에 수록된 글의 번역문이다.
- 참고2. 본문의 큰따옴표(" ")는 원문의 Guillemet(« »)에 해당하며, 대괄호([ ])와 그 안의 내용, 작은따옴표(' '), 그리고 註(* 또는 cf.)는 옮긴이가 임의로 추가한 것이다.
(photo: Harit Srikhao)
퐁피두 센터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행사인 “빛과 그림자”에서 그의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 선보인다. 예를 들어, 그의 장편과 단편을 총망라한 회고전, 발광(發光)하는 인스톨레이션으로 가득한 인공적 밤에 잠긴 조각가 브랑쿠시 아틀리에에서의 전시, 몽유병자-관객들을 우주적 동굴로 안내하는 VR 퍼포먼스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제부터 그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형태의 순수함과 원시적인 감정을 되찾고자 한다. 아피찻퐁이 “창작(création)” 대신 “현현(manifestation)”이라고 명명하는 그 자신의 예술은, 시인 존 키츠가 “사실과 이성을 신경질적으로 쫓아가지 않고, 불확실성, 신비로움, 의심 속에 서 있는” 자질, 즉 “부정적 능력(capacité négative)”을 지칭하는 제스처를 부활시킨다.
Q1. 당신은 3년 전 빌뢰르반에서 “밤의 주변부”*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파리에서 “주변부“로부터 “밤 입자들”**로의 이행은 어떻게 이뤄진 건가요?
A1. 둘 사이에서 저는 밤을 유지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둘은 거의 같은 프로젝트이기는 합니다만, 기억의 어떤 진전, 축적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건 마치 영화나 비디오를 제작하는 것과 유사하죠. 각각은 개별적이지만 전체의 일부입니다. 저에게 있어 각 전시는 그 이전 전시에서 비롯되며,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발광하는 이미지를 다시 살펴볼 수 있게 해줍니다. 브랑쿠시 아틀리에***는 햇빛에 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처럼 어둠과 인공조명을 가지고 작업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이 바로 저희 팀과 큐레이터 마르첼라 리스타가 함께 도전한 과제였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장소의 골격을 항상 볼 수 있는 네거티브 공간[음화(陰畫)적 공간]을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브랑쿠시의 조각품을 보면, 변화하는 유기체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그런 걸 저희가 만든 겁니다. 물론 조명을 활용해서요.
* (옮긴이 주) 빌뢰르반 IAC에서 2021년 7월 2일부터 2021년 11월 28일까지 진행되었다. (링크)
** (옮긴이 주) 퐁피두 센터에서 2024년 10월 2일부터 2025년 1월 6일까지 진행된 “빛과 그림자” 행사 프로그램 중 ‘전시회‘의 제목이다. (링크)
*** (『카이에』 편집자 주) 브랑쿠시 아틀리에는 퐁피두 센터 앞마당에 있다.
cf. 가을 페스티벌(Festival d’Automne, 이하 FA로 표기) 측에서 진행한 아피찻퐁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 브랑쿠시 아틀리에에서 전시를 진행하는 것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햇빛이 그 공간을 활성화하고, 그 공간의 형태를 부각하는데, 자신은 어둠 속에서 작업하기에 그 공간과 그 공간의 역사에 결례를 범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피찻퐁은 오랜 고심 끝에 “영화가 빛의 조형물이 되어 그 건축물을 비추는” 방식으로, 바꿔 말하자면 브랑쿠시 아틀리에의 “야간 버전”이라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전시를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아울러 이를 “꿈 흘끗 보기(a glimpse of dreams)”로 명명한다. (링크)
Q2. 당신은 이전에 <열대병>을 미술관과 같은 공간에 맞춰 틀면 상영 시간이 5분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솔라리움>이나 <하이쿠>와 같은 많은 비디오 작품은 훨씬 더 긴 영화의 싹을 내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A2. 저는 종종 영화관에서 사람들이 좀비가 된다고 말하곤 했었죠. 거기선 길고 밀도 있는 형태들을 더 잘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미술관에서는 관람객이 더 자유롭고 활동적입니다. 씨앗을 심고 각자 그걸 재배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Q3. 그런 서로 다른 공간들 안에 한결같이 어떤 존재가 있죠. 바로 스크린 말입니다. 인스톨레이션 작품인 <솔라리움>에서는 가상현실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스크린이 공간의 중앙을 차지합니다. 그걸 치워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요.
A3. 스크린은 빛 수신기입니다. 영화는 사소한 것들로 만들어집니다. 가령, 좌석, 영사기, 스크린 같은 것들로요. 그래서 스크린은 제게 항상 그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심지어 그것들이 전혀 활성화되지 않고, 오직 그런 구성 요소, 그런 뼈대, 영화의 정체성만 남아있을 때도 말입니다. 무엇보다 스크린은 가상현실에는 없는 프레임입니다. 더구나 <태양과의 대화>에서는 얼마가 지난 뒤에 스크린이 사라졌죠. 영화의 관례는 이런 프레임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VR이 영화의 증강된 형태라거나 가상현실에 밀려 영화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cf. FA 인터뷰에 따르면, <솔라리움>은 아피찻퐁이 어린 시절에 본 호러 영화, 그리고 초기 실험 영화에 대한 헌정 작품이며, 특히 <빈 눈의 유령 The Hollow-Eyed Ghost>(코만춘, 1981)을 재창조한 것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어느 의사가 앞이 보이지 않는 여자친구를 위해 한 남자를 살해하게 되는데, 그 남자의 혼령이 도둑맞은 눈을 찾기 위해 동네를 떠돌다가 결국 떠오르는 태양에 의해 파괴된다. <솔라리움>에 관한 아피찻퐁의 추가적인 설명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제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눈을 도둑맞은 남자의] 유령의 여러 행동 중 몇몇 대목이 영상에서 묘사됩니다. 스크린 반대편의 영상은 빛의 운동을 보여주고 있죠. 두 영상의 조명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을 조절합니다. 마치 영화감독처럼 유령은 빛을 경험할 수 있는 장치를 항상 찾아다닙니다. 작품의 제목은, 유령이 자기가 만든 일광욕실(solarium)에 영원히 갇힌 채, 새벽의 따뜻한 빛을 느끼기를 갈망하면서 꿈과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암시합니다.”
(photo: Nobutada Omote)
Q4. 그 퍼포먼스[<태양과의 대화>]는 HMD를 아직 착용하지 않는 첫 번째 단계를 전제하는 의식(儀式)이기도 합니다. 그 단계에 뒤이어 우리는 직접 체험해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는 영사실에 착석하고, 스크린 위에서 사람들이 잠을 자고 꿈을 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과 다시 연결됩니다.
A4. 마지막 단계는 영화와 퍼포먼스를 연결하기 위해 퐁피두 센터에 맞게 특별히 고안되었어요. 그건 일종의 에어로크와도 같습니다. 사람들이 사색의 시간을 갖고, 사운드를 통해 제3의 경험을 할 수 있게끔 설계했죠. 처음에는 사람들이 영화 같은 유형의 사운드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 다음 HMD를 착용하면, 그와 똑같은 사운드가 반복되기는 하지만, 그 내부에서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르게 울려 퍼집니다. 이때 사운드는 더 이상 사운드트랙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가 됩니다. 완전 끝 무렵에는 스크린 뒤, 바로 거기서 일종의 의식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마치 영화/영화관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여기에 지적인 것은 전혀 없으며, 단지 ‘생명의 근원인 태양과의 대화’라는 단순한 것을 보거나 집전(執典)하는 것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죠.
cf. FA 인터뷰에 따르면, VR 퍼포먼스 작품인 <태양과의 대화>는 두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해당 작품에 관한 아피찻퐁의 추가적인 설명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 저는 관람객을 같은 물리적 장소 내에 있는 두 공간으로 데려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작품을 상연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물리적 변화 외에도 우리의 기억, 이 작품의 경우에는 그것이 ‘방 안의 다른 관람객들의 운동’과 ‘사운드’의 즉각적 과거일 텐데, 그것에 대한 이해 또는 자각도 일어나는구나. 한편, 퍼포먼스가 진행됨에 따라 [그걸 체험하는] 당신은 현실에 여러 단계가 있음을, 그리고 그 단계들은 주관적이고 환영적인 것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제 생각에 이건 명상할 때 일어나는 일과 비슷한 것 같아요.”
Q5. 가상 파트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A5. 디자이너인 타니구치 카츠야와 의사소통이 잘 안돼서 지옥 같았습니다. (웃음) 저는 스토리보드를 많이 그렸어요. 뒤따라서 그가 가상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걸 특정 장소에서 테스트하는 데 1년이 걸렸습니다. 영화는 훨씬 더 많은 한계를 지니는데, 관객에게 이걸 본 뒤에 저걸 보라고 하는 식의 통제를 가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그런 좋은 한계입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제가 상상했던 것처럼 구현할 수 없어서 많은 장면을 삭제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비디오 게임 로직에도 몰두하고 있었는데요. 결국 저희는 ‘그냥 동굴과 태양만 남겨둬도 괜찮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감정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는 남아있었죠. 영화에서는 배우의 연기, 클로즈업, 조명 등에 의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차원에서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Q6. 그런데 VR 안에 (셔터, 조리개 개폐와 같은) 시네마토그라프적 기법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가상 세계 내부에 영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처럼요.
A6. 영화는 수천 년 전에 존재했던 의식(儀式)의 또 다른 버전일지도 모릅니다. 그때 당시 그건 ‘동물’이나 ‘절벽 위에서의 사냥’과 같은 단순한 것들을 재현하는 데 목적을 두었을 겁니다. 벽이야말로 첫 번째 스크린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빛을 가지고 놀면서 그림자와 그림자의 운동이 등장하게 되었죠. <태양과의 대화>는 최초 이미지들의 그런 순수함을 참조한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50년, 아니 5년 후에 <태양과의 대화>를 다시 본다면, 모든 것이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일 거예요! 커다란 HMD도 그렇고, 상영 시간이 30분밖에 안 된다는 사실도 그렇고… 이 작품은 일종의 ‘타임 마커(marqueur temporel)’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네마토그라프의 최초 상영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직 초보적인 기술에 경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드위어드 머이브리지*와 크로노포토그래피를 참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팽창하는 태양도요.
* (옮긴이 주) [1] 원문에는 Eadweard Muybridge라고 되어 있다. 이때 Eadweard를 그냥 에드워드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에드워드랑 이드위어드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리베카 솔닛의 견해를 따른 것이다. 솔닛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가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할 때는 에드워드였고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할 때는 이드위어드였던 것으로 보인다.”(『그림자의 강』, 김현우 옮김, 창비, 2020, 417쪽.) [2] FA 인터뷰에 따르면, 작품 편집 과정에서 아피찻퐁은 음악 담당인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몇 개의 비디오 푸티지와 스토리보드, 그리고 머이브리지의 작업 결과물을 보내줬다. 특히 아피찻퐁이 사카모토에게 강조한 것은 “무한성에 대한 아이디어, 공허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의 즐거움”이었다. 아피찻퐁이 머이브리지를 참조했다고 한 대목은 아마 이런 맥락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photo: Jörg Baumann)
(dessin: AW)
Q7. 이번 달에 출간된 아주 훌륭한 저서 『홈스 Homes』*에는 대략 10년의 간격을 두고 진행된 두 개의 대담이 실려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사랑이 변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런 감정이 다음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A7. 정확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제 다음 영화는 프레이밍, 몽타주의 측면에서 복잡하기 때문이죠… 이건 <메모리아>부터 제가 몰두한 ‘순수함과 단순함에 대한 탐구‘와 모순되긴 합니다. <메모리아>는 매우 단순하죠. 그냥 산책 나온 여자의 이야기예요!
* (옮긴이 주) 작가, 비평가, 프로그래머 등으로 활약하고 있는 앙투안 티리옹이 편집한 저서로, 2024년 10월 Les éditions de l'œil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2024년 10월 10일, 파리에 있는 포템킨(Boutique Potemkine)에서 출간 기념 북토크 비슷한 행사가 진행되었고, 1시간 분량의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다. (링크)
cf. FA 인터뷰에 따르면, 아피찻퐁은 현재 스리랑카를 배경으로 하는 아홉 번째 장편을 준비 중이다. 그가 이렇게 과작(寡作)하는 이유는 꿈을 너무 좋아하고, 또 꿈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게 영화 제작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영화가 “상품이 아니라 성장하는 가족(family)”이라고까지 말한다. 또한 그는 과거에 작업한 것을 되돌아보거나 분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현재 전 작품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이건 휴식 차원의 일이라고 본다. 최근 그는 <열대병>을 다시 봤는데,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더 이상 그걸 만들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Q8. 가르치는 일을 통해 ‘당신의 커리어’와 ‘신진 영화감독들에게 끼치는 당신의 영향력’을 되돌아보기도 하나요?
A8. 매우 까다로운 질문이네요. 터르 벨러와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이런 신조를 갖고 있었죠. “교육하지 말고, 그저 해방시켜라.” 그런데 그는 많은 학생들이 결국에는 흑백으로, 롱 숏으로 촬영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저도 오즈, 허우샤오시엔, 브루스 베일리에게서 영감을 받았을 겁니다. 이는 창작하는 방식, 또는 자신을 현현하는 방식의 일부죠. 저는 창작의 기원이 단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늘 앤디 워홀을 예로 들긴 합니다. 그를 매우 좋아하거든요. 아니면 마르셀 뒤샹을 언급하죠.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그분들을 숭배했어요. 하지만 그분들의 작업 방식과 주변 세계, 기술, 생활 양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분들이 모든 것을 기초로 하여 자신을 현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들은 갑자기 나타난 천재가 아니에요.
Q9. 샹탈 아케르만의 경우도 마찬가지인가요? 얼마 전에 파리에서 그녀의 전시회*가 열렸죠.
A9. 샹탈 아케르만은 제게 매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녀의 영화를 통해 소량의 집착과 모티브를 가지고 끊임없이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웠고, 아울러 그녀가 미술관 공간에 최초로 공을 들인 이들 중 한 명이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죠. 1990년대에는 전시 공간에서 영사기보다 비디오가 더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아케르만은 모니터를 가지고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에는 영화와 비디오 간의 경계가 매우 분명했습니다. 실제로 시카고에 있는 제가 다닌 대학에는 두 개의 학과가 따로 있었죠. 비디오는 퍼포먼스에 좀 더 가까운 “즉각적인” 성격이 훨씬 강하고, 영화보다 더 쉽게 동시대 미술 공간에 들어갈 길을 찾아냈습니다. 제가 동화되었던 실험 영화의 세계는 그 나름의 장소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은 그 경계가 모호해졌지만, 특정 작품에는 상영관, 영사의 선형성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건 단지 몽타주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저는 종종 단편 영화를 블루레이나 스트리밍 형태로 출시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하는데요. 저는 일관되게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우선 시간 낭비이기 때문입니다. 제 영화들 대부분이 이미 공유 사이트에 업로드가 되어 있죠. 또한 어떤 작품은 특정한 유형의 경험을 요청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옮긴이 주) 주드폼(Jeu de Paume)에서 2024년 9월 28일부터 2025년 1월 19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전시회 제목은 “샹탈 아케르만: 트래블링”이었다. (링크)
Q10. 그렇다면 비디오 아트 씬은 실험 영화 씬보다 당신에게 영향을 덜 주었나요?
A10. 백남준이나 브루스 나우만의 작품과 같은 퍼포먼스 비디오를 제외하고는 그쪽을 접한 바가 없었던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반에 영화가 본격적으로 갤러리에 들어오면서 전시 조건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죠. 유럽의 어느 미술관에 갔을 때 관람객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 시간표에 맞춰 갤러리에 들어가 착석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던 게 기억납니다.
Q11. 영화와의 관계야말로 더 개연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에 봤던 영화들, 특히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감안하면 말이죠. 이런 영화들과 당신이 만든 영화들 사이의 어떤 연결고리를, 내러티브적인 측면보다는 기술적인 장인 정신의 측면에서 찾아보고자 시도하기도 했어요.
A11. 어렸을 때 저는 그런 초자연적이고 SF적인 것으로 넘어가는 이야기들을 좋아했지만, 오늘날 저에게 있어 그런 영화들은 환영(illusion)과 같은 영화에 대한 특정 개념을 구체화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특히 <E.T.>나 <폴터가이스트> 속 연기(煙氣)와 같은 효과 장치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건 이 영화들을 즉각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지게 만드는 미학[적 요소]이기는 한데, 제게는 시네마토그라프적 경험의 본질을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는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시각적, 음향적 짜임으로 이루어진 수공업적 건축물입니다. 제가 보기에 스필버그 영화와 실험 영화는 같은 평면에서 작동하며, 둘 다 강력한 시각적, 감각적 자극입니다.
추가 자료/정보
답글삭제1. 퐁피두 센터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영어 및 프랑스어 자막 포함)
: https://youtu.be/NjK-C8K1xpU?feature=shared
2. 작년 11월 말, 12월 초에 MMCA와 전남도립미술관에서 '태양과의 대화(VR)'를 볼 수 있었다.
: https://view.mmca.go.kr/streamdocs/view/sd;streamdocsId=xOy2no2l-Kd3opHC82ITieD3rOQESYJTZEvWmpl-n04 (9쪽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