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DENT ESPOIR (Entretien avec Jean-Luc Godard)
옮긴이 : 임장혁 & 김도형
아망디에 극장(Théâtre des Amandiers)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예정이다. 거기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 그곳의 담당자는 니콜 브르네(Nicole Brenez)이다. 나는 당신들이 보고 싶었다. 바로 당신들이. 마치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의 증손자들을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그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Cahiers du Cinéma (이하 CDC) (1) : 우리는 칸에서 공개된 당신의 영화에 무척 감동받았고, 심지어 압도당했습니다. 특히 "열렬한 희망(l'ardent espoir)"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잔해물 사이를 넘나드는 이 영화[<이미지 책 Le Livre d'Image>]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더군요. 첫 번째 파트 전체는 전쟁의 영원한 리메이크에 관한 것이었죠. 다음으로 전쟁이 보편적 법이라고 설명하는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 그다음으로 질서를 바로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공정한 인간의 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화는 어둠 속에서 진행되고, 당신은 우리를 빛으로 인도합니다. 영화는 불타지만, 다른 식으로 불탑니다.
Jean-Luc Godard (이하 JLG) (1) : 먼저 우리가 같은 언어(langue)[1]로 말한다는 것을 언급해야겠습니다. 제가 같은 언어라고 말할 때, 이는 중국어나 핀란드어, 심지어는 프랑스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몇 편의 영화 이래로, 저는 랑그(langue)와 랑가주(langage)를 구분했습니다. 이는 독일 사회학자인 프리츠 마우트너(Fritz Mauthner)의 랑가주에 대한 책을 읽은 후에 시작된 것입니다. 1910년경에 쓰인 이 책은 랑그 자체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랑그를 랑가주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회화의 영향을 받은 저는 랑가주와 랑그(대체로 텍스트나 단어들)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느낍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텍스트와 단어들의 타락함(perversité)을 경계했습니다. 제가 <영화의 역사(들) Histoire(s) du cinéma>에서 인용한 페기의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행(行)하고 있는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On peut tout dire sauf dire ce que l'on fait. »)[2] 제가 랑가주라고 부르는 것, 즉 모두가 랑그와 혼동하는 그것은 바로 행위(acte)입니다. 현재 영화는 진정한 담지자(dépositaire)이지만, 지식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저를 성가시게 하는데, 왜냐하면 저는 언어/랑그로 말하기 때문이죠. (웃음) 우리 사이를 오가는 언어/랑그는 타락함의 구렁텅이입니다. 랑가주는 일종의 이미지(image)와 말(parole)의 약혼과도 같은 거죠. 하지만 말은 사람들이 언어/랑그라고 부르는 그것과는 다릅니다. "말"이라는 표현이 사용될 때나, 심지어 하이데거적 맥락에서 사용될 때조차도요. 안느-마리 미에빌(Anne-Marie Miéville)의 마지막 작품(<화해 이후 Après la réconciliation>, 편집자 주)의 도입부는 숲속에서 하이데거의 텍스트 『언어로의 도상에서 Acheminement vers la parole』를 다시 읽는, 18세기 복장을 한 여성들의 랑가주를 보여줍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학 전체(지금까지도 "위대한 작가들"이라고 불리는 이들, 하지만 그들이 왜 위대한지는 질문되지 않는 이들. 가령 뒤라스, 도스토예프스키, 횔덜린, 다니엘 디포, 멜빌 등), 그리고 우리가 "위대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들어간 모든 노력(조이스나 랭보는 자기 자신을 위대한 문학가라고 불렀죠), 이는 곧 그들이 랑가주라고 부르는 것을, 그리고 (저에게는 해당되지 않지만) 언어/랑그를 최후의 방어선 안으로 밀어 넣으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플로베르의 작품 『부바르와 페퀴셰 Bouvard et Pécuchet』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플로베르는 SNS나 페이스북, 모든 가능한 정보들을 일찍이 보여주었습니다. 마리 다리외세크(Marie Darrieussecq)도 이를 자기식으로 얘기했는데, 그때 저는 그녀의 첫 번째 소설(『암퇘지 Truismes』, 편집자 주)을 각색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각색은 이뤄지지 않았죠. 왜냐하면 토론은 언어/랑그로 해야 한다고, 그 외의 다른 것으로는 안 된다고, 그래서 소설가와는 토론이 불가능하겠다고 제가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소간 언어/랑그 안에서 대화를 하게 되겠지요. 저는 당신들의 질문에 언어/랑그를 통해 대답하겠습니다. 제가 당신들의 초대에 응한 것은 『카이에』의 손자들, 혹은 증손자들이 역사적으로 어디에 와 있는가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미소) 저는 매우 거대한 사건들 혹은 역사적 흐름들에 민감합니다. 중국에서 일어나든 러시아에서 일어나든 상관 없이요. 앞으로 우리가 나눌 대화는 우리가 읽는 무언가나 인쇄될 무언가가 아님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랑가주는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 구름처럼 뒤편에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보들레르가 <이방인 L'Étranger>에서 말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구름을 사랑한다. 저 경이로운 구름을!" 이에 관한 문제(question; 물음)는 지난 네다섯 작품을 거치면서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저는 <사랑의 찬가 Éloge de l'amour>, 아니면 차라리 <포에버 모차르트 For Ever Mozart> 때부터 제 작품들에 변화가 있었다고 느낍니다.
CDC (2) : 무슨 일이 있었나요?
JLG (2) : 약간 길을 잃었습니다… 저는 이 헤맴 속에 있죠.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항상 의식적으로 했던 것은 바로 영화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비록 제가 전투 의식을 갖춘 주체이자 서명 운동과 사회 운동의 주체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비록 노란조끼라면 누구든지 간에 지지하고, 그리고 응급처치 의사라면 누구든지 간에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스스로 영화에 가두는 것, 그래서 영화의 역사에도 스스로를 가두는 것, 이는 곧 거대한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영화는 작은 역사이지만, 이 역사는 거대하기도 하죠.
제 마지막 고전 영화인 <포에버 모차르트>부터 이런 생각이 시작됐는데, 저는 마치 전쟁통의 스나이퍼나 스파이처럼 옆길로 새서 때때로 단편영화들을 만들지 않고는 못 배겼던 거죠. 저는 <사랑의 찬가>를 두고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의식하기 위해 긴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무의식적이었던 무언가가 영화를 두세 부분으로 나누어버렸습니다. 또한 저는 제가 몽타주의 공리(axiome du montage)라고 부르는 아주 단순한 방정식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마치 유클리드가 다섯 가지의 공리를 만든 것처럼요. "x+3=1" 즉,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둘을 제거해야만 한다.[3] 사실 이건 방정식은 아니죠. 저는 이 방정식을 바디우에게 보여줬으나, 그는 이걸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원 플러스 원 One + One> 같이 분할된 영화들에서 이미 전조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무의식은 <사랑의 찬가> 이후 보다 의식적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영화들이 종종 두세 부분으로 분할되었던 것이죠.
오늘날 제게 정말로 문제인 것은 바로 화면/스크린(écran)이 밋밋(plat)[4]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BFM과 LCI를 시청하는데, 출연진 때문에 LCI를 더 선호합니다. 한때 알고 지냈던 세르주 줄라이(Serge July)가 출연하는 걸 종종 봅니다. 스포츠 경기도 시청하죠. 이런 뉴스 채널들의 문제는, 그들이 노란조끼나 지하철 파업에 대해 말할 때조차 상황을 그저 비추어 보여줄 뿐이라는 점입니다.
안느-마리와 저는 스위스 법을 준수하기로 동의한 스위스에 사는 프랑스 난민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프랑스 TV를 보고, 세 개의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 Libération』, 『르 카나르 앙셰네 Le Canard Enchaîné』, 『샤를리 에브도 Charlie Hebdo』를 읽습니다. 그 외에는 전혀요. 스위스 신문은 읽어본 적 없습니다. 그래서 스위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스위스 여권을 발급받은 상태로, 이곳의 특정 법을 따르며 난민으로서 살고 있습니다. 이 점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제게 프랑스는 자체적인 어려움, 내부적 문제, 혐오, 법률 때문에도 그렇지만, 동시에 [이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매우 흥미로운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영화가 [훗날] 되어야 하는 무언가(ce que devrait être le cinéma)를 가지고 수행적 작업을 한다면, 거기에서 어떤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몹시 까다로운 일이죠. 질병은 우리가 발명하지 않은 약 혹은 발명하고 싶지 않은 약으로 치료해야만 합니다.
오늘 자 『리베라시옹』 읽어보셨나요? 삼성 폴더블 핸드폰에 관한 광고를 보셨나요? 제 흥미를 끄는 것은 이 광고가 책에 대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마지막 페이지의 문구들(mots; 단어들)에 밑줄을 그어뒀죠. 가령, "책처럼 펼쳐져요", "머리맡에 두는 책", "책자", "뒤표지", "호화판본", "독서의 편안함" 등에요. 이미지 속 이런 문구들조차도 제게는 이미 텍스트로 된[되어 있는] 이미지(image qui est déjà du texte)이며, 이들도 이 사실을 명백히 인정합니다. 이런 사태는 '모든 것은 텍스트가 된다'라는 제 생각에 정말로 부합합니다. 휴대전화는 미니-북(mini-livre)입니다. 텍스트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합니다. 광고에서는 항상 단어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단어를 삭제한다면, 이미지와 말의 제시에 있어 무능력함만이 드러나겠죠.
그리고 단어는 밋밋(plat)합니다. 더 이상 "접시/밋밋함(plat) 안에 발을 집어넣는 것"[5]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셀린[Louis-Ferdinand Céline]은 밋밋함을 깊이(profondeur) 안에 놓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깊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밋밋함 위에 밋밋함을 쌓을 뿐입니다. 이는 문제적이죠. 제가 당신들에게 말할 때처럼 단어로 말해지는 경우, 이는 50년 전에 제가 믿었던 것과 같은 어떠한 영향력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자, 여기가 바로 제가 서 있는 곳입니다. 제가 길을 잃은 것은 홀로 남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저는 어떤 위대한 작가도 "랑그는 랑가주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읽은 바에 따르면, 이런 말을 한 유일한 사람이 로베르 레데케르(Robert Redeker)입니다. 저도 예전에 알고 지내던 자이고, 란츠만의 친구였죠. 그는 모든 것을 언어/랑그로 표현하면서 "랑그는 랑가주가 아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랑가주는 말해질 수 없습니다. 제게 무언가를 말해주는 유일한 자들은 바로 화가들입니다. 음악가들도 있기는 하지만, 저는 그 분야는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음악을 전략적(stratégiquement)이 아닌 전술적(tactiquement)으로만 사용하기 때문이죠. 회화, 특히 인상주의나 그보다 조금 이후 시기까지의 회화는 음악과는 반대의 의미를 갖습니다.
CDC (3) : 당신은 행위로서의 랑가주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미지 책>에서는 이미지에 대한 행위가 매우 시각적이죠.
JLG (3) : 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사소한 부분입니다. 표현주의와 야수파 그림에 대한 제 취향이 드러나는 거죠. 피카소를 이해하게 된 것은 그림 선생님이었던 누나 라쉘(Rachel) 덕분입니다. 그녀는 "이 얼굴에는 그림자와 조명 빛이 드리워져 있는데, 그림자가 네모 모양으로 덮여 있어서 두 개의 얼굴처럼 보이게 되지."라고 설명해줬죠. 그녀는 제가 보지 못했던 것을 봤습니다. 회화는 항상 분명하게 현존(présente)했었는데, 그 까닭은 회화가 밋밋하지 않기 때문이죠. 무성영화 시기의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L'Éventail de Lady Windermere>라는 매우 흥미로운 루비치의 영화가 있습니다. 프레민저가 리메이크를 하기도 했었죠. 루비치의 이 영화는 공간입니다. 쉐레, 즉 로메르는 "영화, 공간의 예술(Le cinéma, art de l'espace)"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죠. 우리 모두가 영화를 시간의 예술로 여기고 있던 때에 말입니다. 두 영화를 비교해보면, 프레민저의 영화는 그저 대화와 텍스트(texte; 대사)로 이뤄진 이야기일 뿐입니다. 만약 대화들을 들어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루비치의 경우, 우리는 완벽히 알 수 있었죠. 마치 방금 말한 삼성 광고처럼 '대화'와 '언어/랑그의 전능함'이 대두되면서 그런 영화는 사라졌습니다. 루비치의 경우와 같은 또 다른 영화가 있는데, 거기서는 배우들의 연기, 특히 소녀의 연기가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로즈 호바트(Rose Hobart)가 출연한 영화죠.
CDC (4) : 프랭크 보재기(Frank Borzage)의 <릴리옴 Liliom> 맞나요?
JLG (4) : 네, 맞습니다. 제게 있어 어떠한 여배우도 무언가를 항상 표현하면서 스크린에서 한 장면을 연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로즈 호바트가 위대한 커리어를 갖지 못했던 것은 그녀가 아무 영화에서나 연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재기의 <릴리옴>과 프리츠 랑(Fritz Lang)의 <릴리옴>을 비교해보면, 프리츠 랑은 아웃(out)입니다! 호바트는 무언가를 갖고 있습니다. 이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요. 제가 여전히 비평가였다면, 단어를 찾아보려 했겠죠… "순수함(Innocente)"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는 말해질 수도 없고, 말해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눈에 보일 뿐입니다.
CDC (5) : 장-폴 시베이락(Jean-Paul Civeyrac)의 최근 저서(『로즈는 왜 Rose Pourquoi』)는 그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에 내재된 신비로움에 대해 언급합니다.
JLG (5) : 네, 저도 읽어봤습니다. 그녀는 독보적입니다. 이런 경우를 다른 여배우의 작품들에서도 다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델 에넬(Adèle Haenel) 역시 무언가를 갖고 있지만, 영화들이 같은 수준에 있지 않죠.
CDC (6) : 오늘날 당신은 언어/랑그를 경계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무성영화나 초기 유성영화를 더 많이 참고하나요?
JLG (6) : 특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랑글루아의 시대에 우리는 보재기의 영화와 가렐, 베르누이 혹은 질 그랑지에(Gilles Grangier)의 영화를 동시에 고려할 것을 교육받았습니다. 우리는 딱 서너 명 정도였죠. 리베트, 로메르, 트뤼포, 그리고 저요.
CDC (7) : <이미지 책>에는 도브젠코 작품인 <대지 La Terre>의 커플이 핵심적으로 등장합니다. 길게 늘인 숏-리버스 숏의 이미지가 굉장하고, 매우 심오합니다. 이 커플 및 무성 이미지에 중첩되는 "우리가 만일 살아 있다면/물론 우리는 살아 있죠!"(« Si nous étions vivants/Mais nous sommes vivants! »)[6]라는 텍스트는 당신에게 어떤 중요성을 지니나요?
JLG (7) : 그건 블랑쇼의 텍스트입니다. 저는 블랑쇼의 첫 번째 책을 아주 어릴 적에, 15, 16살쯤에 읽었습니다. 더 앞서가려고 노력하던 다른 이들처럼 『나자 Nadja』와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 Le Paysan de Paris』도 읽었죠. 저는 <아워 뮤직 Notre musique>에서 블랑쇼의 텍스트로 한 시퀀스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완전히 실패했고, 그 부분을 삭제하게 되었습니다. 거짓이지만 진실인 3D(fausse-vraie 3D)를 이미지 안(dans)이 아닌 이미지 옆(à côté de)에 놓인 사운드와 함께 만들어야만 했었죠. 이것이 "중앙 지역(La région centrale)" 시퀀스의 진정한 과제에 해당합니다. 베르나르 에센스키츠(Bernard Eisenchitz)가 제게 "그런데(Mais) 중앙 지역이 무엇이죠?"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물론(Mais) 그건 사랑이죠."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물론(mais) 그렇게 느낀 관객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마이클 스노우(Michael Snow)의 <중앙 지역 La Région centrale>에 대해 말하기를 선호하죠.
CDC (8) : 여자의 얼굴이 등장할 때 우리는 "물론 우리는 살아있죠!"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는 마침내 어두운 숲속을 벗어났을 때와 같은 섬광입니다.
JLG (8) : 두 번째 파트 "행복한 아랍(L'Arabie heureuse)"은 제게는 현실로의 회귀(retour de la réalité; 현실의 귀환)였고, 영화를 조금 더 밋밋하게 만드는 것을 받아들인 결과였습니다. 첫 번째 파트는 보다 다큐멘터리이고, 두 번째 파트는 제가 영화들로부터 따온 배우들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또 소설을 차용했다는 점에서 완전한 픽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다시 봤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아, 너무 다르구나. 유감스럽군."하고 혼잣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 영화가 유감스러워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욱 밋밋합니다. 사운드 역시 더 많이 뒤섞이면서 복잡해졌죠. TV 사운드는 더 이상 구분될 수 없습니다. 마치 항상 다르면서 강렬한 곡을 연주하도록 요청받는 오케스트라의 경우처럼요. 불쌍한 지휘자는 압도당할 뿐입니다.
CDC (9) : 나중에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더욱 밋밋한 순간이 유용하다는 것인가요?
JLG (9) : 러시아군이 독일군에게 패배했을 때, 그들은 다시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차이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독일군은 단순한 전술(tactique)에는 능했지만, 전략(stratégie)은 거의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적 전략을 따랐던 히틀러의 전략을 제외하면요. 반면 러시아군은 독일군과는 다른 전략으로 대응하게 되었는데, 이는 실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CDC (10) : 그래서 마지막 파트가 러시아에 관한 것인가요? (웃음)
JLG (10) : 네, 저는 늘 러시아인들을 옹호할 것입니다. <언어와의 작별 Adieu au langage>에서 한 소녀가 이렇게 말하죠. "러시아인들이 유럽의 일부라면, 그들은 더 이상 러시아인들이 아닐 거야."
CDC (11) : 영화의 끝이 "열렬한 희망"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알고 계셨나요?
JLG (11) : 아뇨. 결말을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뒀습니다. 그런 뒤 조금씩 확장해 나갔어요. 관객들이 아랍이 아닌 다른 것을 보았음을 스스로 상기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열렬한 희망"이란 텍스트는 페터 바이스(Peter Weiss)의 『저항의 미학 L'Esthétique de la résistance』에서 따온 것입니다.
CDC (12) : 『저항의 미학』을 이전에 읽어본 적이 있나요?
JLG (12) : 아뇨. 하지만 그가 『마라/사드 Marat-sade』를 썼기 때문에 『저항의 미학』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위해서 1,000쪽에 달하는 『저항의 미학』 3권 모두를 읽었습니다. 스페인 전쟁 부분부터 작품 끝까지는 바이스 본인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스웨덴으로 망명한 뒤, 그곳에 마찬가지로 머물고 있던 브레히트를 보러 갔을 때의 이야기죠. 저는 여러 작업을 병렬적으로 진행합니다. 뉴스 프로그램도 "병렬적으로(en parallèle)" 소식을 전하긴 하지만, 사실은 '수직(perpendiculaire)'에 대해 말하죠. (웃음)
CDC (13) : 당신의 작업은 차라리 대위법 같습니다… 당신은 대위법과 화성학을 구분하죠.
JLG (13) : 네, 대위법과 멜로디입니다. 이 둘은 함께 가죠. 저는 니콜에게 이와 관련된 수수께끼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마치 스핑크스가 세 명의 오이디푸스 혹은 세 명의 안티고네(니콜 브르네, 장-폴 바타지아(Jean-Paul Battaggia), 파브리스 아라뇨(Fabrice Aragno), 편집자 주)에게 수수께끼를 내는 것처럼, 저도 그들에게 작은 골칫거리를 안겨주는 겁니다 (웃음). 니콜은 제게 어느 인용문으로 답을 하는데, 이 답은 저를 생각에 잠기게 하죠…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 코뮌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아낙사고라스 쇼메트(Anaxagoras Chaumette)는 에베르[Jacques-René Hébert]와 함께 1793년, 즉 공포정치 시기 동안에 음악원을 설립하게 됩니다. 이는 무척 이상한 일이죠. 그로부터 두 세기 후, 이 사건은 <신독일영년 Allemagne année 90 neuf zéro>에서 제가 삽입하게 되는 한 장면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폐허가 되어가던 독일 바벨스베르크의 오래된 스튜디오를 방문한 에디 콘스탄틴(Eddie Constantine)이 젤탄 백작(comte Zeltan)에게 이렇게 묻죠. "어둠의 시대가 도래해도, 우리는 여전히 음악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젤탄에게 브레히트의 말로 [콘스탄틴에게] 답하도록 했습니다. "네, 어둠의 시대의 음악이 있게 되겠죠."[7] 저는 니콜에게 이 모든 걸 전혀 말해주지 않은 채 물었습니다. "이것과 저것 사이에는 연결 고리가 존재할까요?” 그녀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이니까요. 어쨌거나 제가 수행하는 '연결 짓기(liens)'와 '붙여 비교하기(rapprochements)'는 이런 식입니다. '붙여 비교하기' 아니면 '거리 두기(éloignements)'죠.
CDC (14) : 르베르디[Pierre Reverdy]가 말한 것처럼 현실을 "멀리서 적절하게/정당하게(lointaines et justes)"[8]제시하는 것이군요. 당신은 동시에 여러 개의 실을 엮어내기도 합니다.
JLG (14) : 네, 페르시아 양탄자가 대부분 그렇습니다. 페르시아 양탄자는 만(卍)자형으로 가득하죠.
CDC (15) : 예를 들어, <이미지 책>에서 '조제프 드 메스트르'라는 실을 통해 무얼 만들 수 있을까요? 보편적 법은 곧 파괴라고 말하는 그의 끔찍한 문장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JLG (15) : 저는 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기사를 통해 우연히 그를 접했죠. 믿을 수 없는 일이죠. 심지어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프랑스 대사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를 접하고 전쟁에 관해 말할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죠.
CDC (16) : 그는 희생(immolation)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이는 절망의 순간이자 또한 무책임함의 순간인데, 인류는 보편적 법들에 의해 압도당하기 때문입니다.
JLG (16) : 2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다른 관점들에 따라 많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독일의 러시아 침공에 관한 거대한 분량의 책인 『바르바로사 1941. 절대적 전쟁 Barbarossa, 1941. La guerre absolue』(장 로페즈(Jean Lopez)와 라샤 오크메추리(Lasha Otkhmezuri)의 책, 편집자 주)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텍스트들의 대립들/불일치들(oppositions)과도 같습니다. 이 텍스트들은 공식 연설부터 군인들의 일기까지를 망라하죠. 즉, 이 책은 텍스트에 반(反)하는 텍스트(texte contre du texte)와도 같습니다. 스탈린이 단어 하나를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10,000구의 사체(死體, morts)가 발생했습니다. 히틀러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지금 말(馬, chevaux)[의 사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 여전히 기병대(cavalerie)는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때때로 제가 넘어지는 말(cheval qui tombe)을 보여준 것입니다.[9]
CDC (17) : 말에 대해 언급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당신은 전에 당신 영화의 진화에 대해 말한 바 있죠. 정말로 당신의 작품에는 점점 더 많은 동물이 등장합니다. 가령, <언어와의 작별>에는 당신의 개 록시(Roxy)가, <필름 소셜리즘 Film Socialisme>에는 앵무새, 고양이, 라마가 나왔습니다.
JLG (17) : 네, 조금씩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무척 아끼던 개가 있었습니다. 록시가 그 기억을 상기시켜 줬죠. 제가 안느 비아젬스키(Anne Wiazemsky)에게 강아지 한 마리를 준 적도 있었죠. 항상 무언가가 있었는데,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그게 동물들이었죠.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저는 L214[프랑스 동물 권리 보호 단체]를 지지합니다.
CDC (18) : 당신에게 있어 동물들의 시선이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필름 소셜리즘>에서 크고 검은 눈을 가진 라마의 머리를 배치하기도 했죠.
JLG (18) : 개(chien)와 배우(acteur)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신은 원숭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절대 안 돼요(Surtout pas)."라고 말했죠. 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이 그들에게 몸짓은 남겨주었으니까요. 개들은 전투를 치르기 위해 훈련 받지 않는 한 한가하고, 친절하고, 개방적입니다. <필름 소셜리즘>에서의 라마의 경우, 여기서 10km 정도 떨어진 들판에서 한 마리를 발견하여 찍게 된 거죠. 당나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당나귀 발타자르 Au hasard Balthazar>에 큰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브레송의 최고작은 <사형수 탈출하다 Un condamné à mort s'est échappé>이긴 하지만요.
CDC (19) : 왜 <사형수 탈출하다>를 더 선호하시죠?
JLG (19) : 모든 숏에서 영화가 제목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사형수 탈출하다>는 손으로부터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저는 제가 그 영화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또 영화를 손으로부터 시작하기를 잘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여기서 손이란 탈출을 모색하는 손입니다. 그리고 각 숏에서, 카메라는 항상 이 탈출을 포착하려 움직입니다. 절대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습니다. <잔 다르크의 재판 Procès de Jeanne d'Arc> 역시 어느 정도 비슷한 영화이긴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스스로를 강화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이런 자세처럼요. (고다르가 자신의 팔을 안으로 굽힌다.) 그 반대편이 바로 탈출인 것이죠.
『샤를리 에브도』에는 카바나[François Cavanna]의 예전 글들이 실립니다. 그중 하나에서, 카바나는 이제는 거리에서 사라진 말들(chevaux)과 그들의 눈(œil)에 대해 말했습니다. 새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가장 분명하게는 바로 개들이 그렇습니다. 개들은 인간적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인간의 시선과는 다르죠. 그것과 비견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CDC (20) : <언어와의 작별>에는 다음과 같은 굉장한 문장이 나오죠. "개는 자신보다 상대를 더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다."
JLG (20) : 릴케의 문장[10]입니다. 어찌 됐든 다른 길(ailleurs)을 모색하는 훌륭한 작가들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록시를 따라 다른 길을 갔었죠.
JLG (21) : 혹은 [언어/랑그를] 잊게 하는 것. 혹은 이미지 속에서 어떤 말(parole)이 표현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죠. 하이데거는 이 말을 향해 다가갈 수만 있었을 뿐, 그 이상으로 멀리 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 말은 때때로 시(poésie)에 의해 도달되는 그런 것입니다. 가령, 랭보의 시를 통해서요.
CDC (22) : 영화 끝부분에서, 안느-마리 미에빌은 우리가 충분히 듣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11] 세상을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일까요?
JLG (22) : 여기저기에 사는 불행한 자들을 "듣는"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의 의미에서 '세상을 듣는다'는 말은 당연히 아닙니다.
CDC (23) : 동물들이나 자연을 듣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JLG (23) : 네, 혹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죠. 군중에 관한 저서로 널리 알려진 사회철학자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는 세상이 더 나아질 정도로 우리가 충분히 슬퍼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후 그는 "알파벳 문자들로 뒤덮여버린" 땅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저를 지지해준 것이죠. 언어/랑그라고 말할 때, 저는 이를 플라톤은 반대했던 알파벳 문자의 의미로 말합니다.
CDC (24) : 그러면 랑가주는요?
JLG (24) : 랑가주는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약간만 드러나거나 들리는 것이죠. 기술적으로, 영화는 그럴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불가능하죠. 비록 우리가 그쪽으로 가고 있지만요. 제게 랑가주는 루벤스의 그림 <저주받은 이들의 몰락 La Chute des damnés>입니다.
물론 저는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답하기 위해 언어/랑그를 사용합니다. 계란을 어떻게 익힐까요? 계란을 처음으로 익힌 사람은 그 방법을 표현할 단어를 갖지 못했습니다. 제 다음 영화에는 (사실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너무 늙었고, 게다가 지금 영화의 체제에서 수행하기 아주 어려운 일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죠.) 니세포르 니엡스(Nicéphore Niépce)의 성찰로부터 출발하는 시퀀스가 있습니다. 저는 니콜이 라 페미스(La Fémis)에서 그녀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물어볼 수 있도록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니세포르 니엡스가 창문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는 것에 성공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오늘날 이를 상상해볼 수 있을까요? 그가 "내가 뭘 한 거지?"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가 한 것이 무엇인지 오늘날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그가 실제로 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자신이 찍은] 상(photo; 사진, 이미지)을 고정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다게르[Louis Daguerre]가 니엡스와 경쟁하게 되죠. 저는 이 시퀀스를 "고정 관념(l'idée fixe)"이라고 부릅니다.
[이어서] 갑자기 저는 러시아-독일(Russie-Allemagne)로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제 유년기였고, 그 누구도 그곳에서 제게 말을 건네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심지어 스위스에 있는 지금도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었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고정 관념" 시퀀스는 이렇게 구성됩니다. 저는 "고정"의 관념(idée de «fixe»)을 가지고 또 다른 고정점(points de fixation)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가령, 군대식 경례, 차려 자세 등이요.
니엡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정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영화감독들은 자신들이 버튼을 눌러서, 사과나무나 파업을 찍게 되면, 현실의 순간을 포착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니옹(Nyon)에서 열리는 "비지옹 뒤 렐(Visions du Réel; 현실의 풍경들)"이라는 영화제도 있죠. 니엡스는 분명 무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중요한 무언가였으니까요. 물론 사진은 영화가 아닙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공장의 출구를 촬영했을 때, 니엡스와 똑같은 생각을 하기에 그들은 이미 그와 멀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버튼을 누르면 현실이 나오는 그런 기계를 자신들이 발명했다고 생각했을까요? 이후 수많은 텍스트들이 쏟아져 나왔죠. 영화는 현실(réalité)인가요? 진짜(réel)인가요? 픽션(fiction; 허구)인가요? 다큐멘터리인가요?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이 거짓(tout est faux)임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언어/랑그의 타락함도 보게 되죠. 18세기 이후의 모든 전쟁은 사전에 선언되었습니다. 이는 텍스트가 전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선언하고, 선언(문)을 만듭니다. 단지 선출되기 위해서요.
CDC (25) : 오늘날 사람들은 항상 재앙(catastrophe; 참사, 재난)을 선언합니다. 아포칼립스에 대한 일종의 욕망이 있는 거죠.
JLG (25) : 그런데 그러한 재앙에 대한 욕망 속에서도, 할리우드에는 약간의 랑가주가 있습니다. 레지스탕스(la Résistance)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제가 "충격을 받았던" 까닭은 (사람들은 항상 충격을 받지요. (웃음)) 그들이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화를 만들 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화를 런던에서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죠. 미국인들은 그렇게 했지만, 프랑스인들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운동가들과 자주 어울렸던 스테판 헤셀(Stéphane Hessel)에게 이에 대해 한 번 얘기해보려고 했었죠. 그는 <쥴 앤 짐 Jules et Jim>에 영감을 준 부부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 친구 엘리아스 산바(Elias Sanbar)를 통해 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레지스탕스는 텍스트, 성명서, 팜플렛과 시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잘 몰랐지만, 많은 텍스트가 스위스에서 인쇄되었죠. 아라공의 시도 뇌샤텔(Neuchâtel)에 있던 라 바코니에르(La Baconnière)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몸이 아프셨던 제 프랑스어 선생님의 자리가 프랑스인 포로(prisonnier)로 대체되었는데,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죠. "여러분께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러니 저는 지금부터 비밀리에 인쇄된 프랑스어[로 쓰인 텍스트]를 여러분에게 읽히도록 하겠습니다." 시의 경우, 저는 호세 마리아 드 헤레디아(José-Maria de Heredia), 르콩트 드 릴(Leconte de l'Isle),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에 천착했습니다. 저는 롱사르도 몰랐고,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도 몰랐고, 랭보도 몰랐었죠. 그는 우리에게 아라공의 <단장(斷腸)의 아픔 Le Crève-cœur>과 폴 엘뤼아르(Paul Éluard)의 <자유 Liberté>를, 즉 한 번은 고전시(vers classiques)를, 다른 한 번은 자유시(vers libres)를 읽어주었습니다. 이렇게 이 시들은 제 안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CDC (26) : 랑가주와 시는 같은 것인가요?
JLG (26) : 네, 그러나 그것들은 두 가지의 다른 전술(tactiques)입니다.
CDC (27) : 시의 전술과 비교했을 때 랑가주의 전술은 무엇인가요?
JLG (27) : 시는 쓰여진 것입니다. 랑가주는 실제로 쓰여질 수 없는 것이지요. 랑가주는 그려지고, 노래되고, 낭독되고, 표명될 수 있습니다. 노란 조끼(Gilets jaunes)야말로 정말 랑가주입니다. 그래서 뉴스 해설자들의 대부분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며, 어떤 언어/랑그가 말해지는지만을 궁금해하죠.
CDC (28) : 노란 조끼가 왜 랑가주인가요?
JLG (28) : 왜냐하면 노란 조끼는 실제로 말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뉴스 해설자들은 이런 질문들만을 쏟아냅니다. "아, 당신에겐 책임자가 없나요? 아,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걸 모르십니까?"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그게 무슨 뜻인가요?"
CDC (29) : 그렇다면 랑가주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인가요?
JLG (29) : 그게 바로 페기가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말은 심지어 각자 자신의 하루에도 적용되죠. 하루를 말하려고 한다면 15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CDC (30) : 당신과 당신 개의 관계는 랑가주인가요?
JLG (30) : 물론이죠! 특히 안느-마리와 개의 관계가 랑가주죠. 그녀가 개의 주인이거든요. 혹은 개가 안느-마리의 주인일 수도 있겠네요. 우리에게는 록시 다음으로 들인 두 번째 개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호소에서 발견한 스페인 유기견입니다. 이 개는 이상한 체형을 가지고 있어 무척 기이하게 생겼습니다. 두 앞다리가 약간 벌어져 있고, 또 스페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 개가 국제 여단 대대에서 들것 운반자가 윤회한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개는 우리 집에 왔고, 우리는 우리만의 난민 수용소(캠프)를 만들었죠. 이름은 루루(Loulou)입니다.
CDC (31) : 그가 다음 영화와 관련이 있나요? 그에 대한 단편 영화라도 나올까요?
JLG (31) : 아직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CDC (32) : 자연의 랑가주는 존재하나요? 당신은 라뮈[Charles-Ferdinand Ramuz]의 『우리 사이의 기호들 Les Signes parmi nous』을 자주 인용합니다. 보들레르의 <만물 조응 Correspondances>도 떠오르네요. 세계는 기호들의 랑가주인가요?
JLG (32) : 제가 라뮈를 자주 인용한 것은 그를 가지고 영화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뮈는 책으로 남아 있는 게 더 낫습니다. 저는 라뮈의 책 제목을 <영화의 역사(들)>의 한 챕터 이름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재앙의 문학적 기호들은 재앙의 전조로 전혀 간주된 적 없습니다. 사람들은 결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런저런 일을 해야만 한다."라고 말하지 않았죠. 오늘날 우리는 결국 자연이 악화되고 있음을 확인한 후,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문학적(littéraire; 허구적)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를 별로 믿지 않습니다. 혹은 홍수나 녹는 빙하를 보여주는 영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은 가짜 텍스트죠.
CDC (33) : 『카이에』 [2019년] 4월호 "식물도감(Herbier)"에서 우리는 나무와 꽃을 집중해서 다뤘습니다. 당신은 이것이 흥미롭다고 말했죠.
JLG (33) : 네, 약간의 랑가주가 있었기 때문이죠. 기존 비평가들의 익숙한 텍스트들이 모두 바뀌었더군요. 심지어 제가 흥미롭게 본 글들조차도요. 영화의 늘 같은 이미지들, 가령 소년을 바라보는 소녀의 이미지 등이 아니었습니다.
CDC (34) : <이미지 책>에서 반복되는 베카신(Bécassine)에 대한 수사의 출처가 어디인가요?
JLG (34) : 그 명구(銘句, exergue)는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의 문장[12]입니다. 저는 베카신을 프랑스에서 알려진 모습 그대로 보여주죠. 그녀는 입을 닫고 있습니다.
CDC (35) : 그 제스처가 당신에게 흥미로웠나요?
JLG (35) : 저는 심지어 베카신에게 입이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안느-마리와 장-폴이 이 사실을 제게 일깨워 줬죠. "아랍(L'Arabie)"의 시작 부분에서 한 문장과 함께 베카신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의 의미는 우리가 행하는 것의 의미보다 덜 빨리 다가온다."(« Le sens de ce que l'on dit vient moins vite que ce que l'on fait. ») 말은 행동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는 거죠.
CDC (36) : <오명 Les Enchaînés>의 열쇠 장면 직전에 등장하는 이미지죠.
JLG (36) : 그렇습니다. 새로운 시퀀스의 도입부와의 연결을 위한 장면이죠. 여기서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생각은 행동보다 덜 빠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죠.
CDC (37) : <이미지 책>은 매우 단언적이면서 정치적인 문장들로 넘쳐흐릅니다. 가령, "나는 늘 폭탄 편을 들겠다."(« Je serai toujours du côté des bombes. »), "혁명이 있어야 한다."(« Il doit y avoir une révolution. ») 등의 문장들이요.
JLG (37) : "혁명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 텍스트를 들을 뿐입니다. 이미지를 보지는 않죠. 사람들은 당나귀 그리고 굴러가면서 점점 풀리는 필름 릴을 보게 됩니다. 중세 시대의 누군가가 이런 이미지를 보았다면, 그는 혁명을 릴과 연결시키는 동시에 "그런데 천천히 움직이는 당나귀도 있네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셋을 배치하고, 이 셋을 믿습니다. 'x+3=1'이니까요.
저는 이제 밋밋한 스크린/화면(l'écran plat)을 결함으로 여깁니다, 특히 단지 하나의 속임수, 특수효과(trucage; 트릭), 전술이었던 <언어와의 작별>의 3D 작업 이후에 말이죠. 저와 안느-마리에게 깊은 인상을 준 영화는 피알라의 <반 고흐 Van Gogh>입니다. 우리는 여러 개의 공간을 감지했는데, 이는 영화의 시나리오가 반 고흐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피알라가 화가였다는 사실 모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니, 정말 3D의 순간들이 있더군요. 보여드리죠. 저는 이 두 개의 숏을 캡처했습니다. (고다르가 자신의 아이폰을 보여준다.) 반 고흐의 동생과 의사 가셰가 도착합니다. 하녀가 나오고, 뒤트롱[Jacques Dutronc, 고흐 역]이 그 앞에 서 있습니다. 전경은 일종의 비(非)-피사계 심도(non-profondeur de champ)의 상태[아웃 포커싱의 상태]에 있으며, 초점은 도착한 인물들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하녀 뒤에 선 반 고흐는 그녀의 엉덩이를 치고, 그녀에게 곧바로 얻어맞습니다. 3D 및 공간에 대한 느낌은 엉덩이를 치는 행위가 아닌, 얻어맞을 때의 대포와도 같은 소리에서 기인합니다. 이 대포 같은 소리는 엉덩이를 치는 행위에 존재감을 부여합니다. 3D에 대한 느낌이 사운드로부터 오는 것이죠.
이보다 조금 앞서 등장하는 다른 숏을 봅시다. 두 명의 하인이 테오의 형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구석에는 손님들이 모여 있습니다. 여기서 느닷없이 이 장면이 3D로 촬영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모두 2D로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는 2D로, 저기는 3D로 되어있는 것만 같죠. 이 영화에는 그런 순간들이 많습니다. 안느-마리와 저는 이 영화에 대여섯 개의 평면들(plans)[13], 가령 인상주의의 평면, 회화의 평면, 코뮌의 평면, 알코올 중독의 평면 등이 연달아 놓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각자 피알라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었죠.
CDC (38) : 그 층위들 사이의 관계(rapports d'échelles)는 매우 놀랍죠.
JLG (38) : 층위들 사이의 관계 안에는 종종 평면들(plans), 그리고 상이한 평면들 사이의 변화가 있습니다. 몇몇 영화에서 때때로 피사계 심도가 활용되지만, 진정한 층위들 사이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에 이 관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너무 많이 잘려 나갔고 편집되었기에 이를 더 이상 볼 수 없죠. 제게는 다른 사진들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자신의 아이폰을 훑어본다.) 보세요, 여기 오늘 나온 『카이에』에 실린 사진입니다. 제가 잡지를 구매하지는 않지만, 신문가게에서 알아서 보내주더군요. 이는 <잔 다르크 Jeanne>와 관련한 두 사진입니다. 장-폴에게 영화 DVD를 보내달라고 부탁했었죠. 어린 소녀의 전면 사진(1)이 있고, 영화에서 캡처된 또 다른 사진(2)이 있습니다. 저는 시선에 있어 거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오직 사진에 관해서만 말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영화에서는 전혀 표현되지 않는 것을 때때로 표현하죠. 첫 번째 사진에서, 소녀는 어딘지 모를 곳을 쳐다봅니다. 그녀가 어느 장소에 있는지 따지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영화의 숏(plan du film)인지는 모르겠네요.
CDC (39) : 네, 영화의 숏입니다.
JLG (39) : 사진으로 된 숏(plan en photo; 사진상의 숏)은 더 이상 영화의 숏이 아닙니다. 반면 여기 사진으로서의 두 번째 이미지는 영화의 숏입니다. 여기서 그녀는 지시받은 그곳을 쳐다봅니다. 저는 여기서 시선의 차이를 인지합니다. 첫 번째 이미지의 경우, "허공을 쳐다보세요."라고 그녀에게 지시했을 것입니다. 영화의 사진(photo du film)과 사진으로 남을 수 있는 사진(photo qui peut rester photo) 사이의 차이를 고려해야만 합니다. 뒤몽의 영화에 대한 비평에서 이 차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죠. 특히 이 영화가 아주 길고 고정된 숏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제가 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첫 번째 사진의 경우, 아직 미국 여배우 로즈 호바트의 수준은 아니지만 그녀와 비교해 나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사진의 경우, 가령 레아 세두(Léa Seydoux)와 같은 여배우라면 이 사진과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첫 번째 사진처럼은 할 수 없습니다. <잔 다르크>의 소녀는 10살이었기에 첫 번째 사진처럼 할 수 있었죠. 하지만 두 번째 사진에서, 그녀는 배우가 되어버렸습니다.
CDC (40) : 첫 번째 사진이 비록 덜 영화의 사진(photo de cinéma) 같아 보이더라도, 더 "영화(du cinéma)"에 가까운가요?
JLG (40) : 그 사진은 영화의 정지된 순간입니다. 따라서 포토그램이 되고, 아카이브가 되겠죠. 저는 이런 정지된 순간을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이미지 책>에는 아베든이 찍은 마릴린의 숏[14]이 있습니다. 그녀는 옆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고, 흑백이며 매우 아름답습니다. 이 숏은 아베든이 연달아 찍어댄 시퀀스의 일부죠. 저는 이런 것들[정지된 숏들]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자주 작업합니다. 특히 첫 번째 시선(à première vue; 제1의 눈)으로요. 왜냐하면 이후의 두 번째 시선 혹은 세 번째 시선은 첫 번째 시선과 더 이상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첫 번째 시선의 산물입니다. 영화도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간직했었죠. 이 때문에 수많은 테이크를 찍는 것입니다. 우리는 18번째 시선이 반드시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브레송처럼 60번째를 강조할 수도 있죠. 혹은 <시티 라이트 Les Lumières de la ville>의 채플린처럼 600번째 테이크에서 맹인 소녀의 시선을 만들/포착할 수도 있겠죠. 저는 "페이크 뉴스(Fake News)"라는 제목의 시퀀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이 시퀀스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심지어 만들기를 시도할지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들을 모신 후, 편안한 분위기 아래 그들의 집에서 르포르타주(reportage)를 제작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텔레비전에서와는 같지 않게 되는 공간에서요. 그 누구도 이런 프로젝트를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멸 Le Mépris>을 찍은 직후라면 몰라도, 지금은 불가능하죠. 배우가 이를 연기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 경우 배우는 두 번의 연기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제 유명한 정리(定理) 'x+3=1'에 따르면, 반드시 둘(2)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아이폰을 뒤적거린다.)
CDC (41) : 이미지를 기록하기 위해 핸드폰을 사용하시나요? <이미지 책> 이후 제작된 이흘라바 영화제(festival de Jihlava)의 트레일러[15]에서처럼요.
JLG (41) : 네, 영화제 측에서 제작을 요청했었죠. 여기 보세요. "언어/랑그의 타락함(perversité de la langue)"을 설명하기에 좋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뱀이 입으로부터 나오는 이미지죠. (잡지 『이데 Idées』 표지에 실렸던 언어/랑그-도마뱀(langue-lézard)의 이미지다. 편집자 주) 그리고 이건 아이폰으로 만든 자화상입니다.
CDC (42) : "페이크 뉴스"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실 건가요?
JLG (42) : 저는 특정 지방에서만 작업을 진행하고, 그 이외의 다른 곳으로는 가지 않는 고고학자처럼 작업합니다. 사막에서 돌과 나뭇가지를 모았던 제 증조부 중 한 분인 테오도르 모노(Théodore Monod)처럼 무언가를 수집하죠. 『사랑의 포로 Un captif amoureux』에서 장 주네(Jean Genet)는 이미지를 찾으려면 사막에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CDC (43) : <영화의 역사(들)> 에피소드 4B의 후반부, 우리는 숲속을 통과한 후에 손 안에 있는 노란 장미의 이미지와 재회합니다.
JLG (43) : 백장미단(Rose blanche)을 가리키는 장미입니다. 1943년에 처형되었던 독일 레지스탕스 한스·조피 숄 남매(Hans et Sophie Scholl)가 이끌던 집단이죠.
CDC (44) : 이 장면에서 '남자가 꿈에서 낙원을 횡단하여…'로 시작하는 대사가 들립니다.
JLG (44) : 보르헤스의 텍스트입니다. 낙원을 횡단한 뒤에, 그 증거로서 그에게 장미가 주어집니다.
CDC (45) : "꿈속에서 남자가 낙원을 횡단하여, 그 여정의 증거로서 꽃 한 송이를 받고 난 후 꿈에서 깨어나, 그 꽃을 자신의 손 안에서 발견한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바로 그 남자였다."[16] <이미지 책>의 가장 마지막에서도 저는 이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검은 화면을 통해 열렬한 희망을 품은 당신이 우리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는 듯한 느낌이요.
JLG (45) : 전쟁 문제를 많이 다룬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제게 "영화가 좀 슬프네요."라고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불행과 실패만을 말하는 페터 바이스의 텍스트를 사수한 것이죠. 제가 아주 좋아하는 것은 그가 패배주의자라는 사실입니다.
CDC (46) : 당신은 마치 현실에 영향을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JLG (46) : 글쎄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죠. 저는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많이 인용했던 작가인 드니 드 루즈몽(Denis de Rougemont)의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바로 희망 속에서다." 여기에 그가 덧붙인 말은 저를 미소 짓게 만듭니다. "물론 이 희망은 진실이다."[17]
CDC (47) : 왜 영화가 <쾌락 Le Plaisir>의 가면을 쓴 남자로 끝나는 것인가요?
JLG (47) : 우리는 여전히 쾌락 속에 있으니까요.
CDC (48) : 우리는 아직 심연 위에서 춤추고 있죠.
JLG (48) : 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CDC (49) : <쾌락>에서의 춤은 희망보다 허상에 가깝습니다.
JLG (49) : 모파상의 소설[18]에서 누군가 사내를 그의 집에 데려다주자, 아내가 그의 가면을 벗깁니다. 우리는 인생을 여전히 누리길 원하는 노인을 보게 되죠.
CDC (50) : 희망과 허상을 동시에 취하는 것은 항상 변증법의 문제입니다.
JLG (50) : 네, 변증법이죠. <필름 소셜리즘>에는 사르트르의 아름다운 텍스트가 등장하는데, 그는 변증법이 전체이자 동시에 그 반대이고, 무(rien)이자 그 반대라고 말합니다. <언어와의 작별>의 초반부에는 철학의 정의에 대한 사르트르의 또 다른 텍스트가 등장합니다. "철학은 하나의 존재이며, 이 존재는 자신의 존재 내에 있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그 존재가 자기와는 다른 하나의 존재를 함축하는 한에서."[19] 이 말에는 좌익주의와 고전주의가 동시에 담겨 있죠! 저는 사르트르의 가장 멋진 텍스트는 그림에 관한 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1950-60년대의 화가 라포우자드에 관한 글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아아, 격분이 그의 붓끝에 이르지 못하는구나." 이는 이른바 투쟁영화에 대해 제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부정적 생각에 부합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격분은 붓끝에 이르지 못하죠.
CDC (51) : 전단영화(ciné-tracts)를 만들던 시기에 당신은 화가 제라르 프로망제(Gérard Fromanger)와 함께 작업했습니다.
JLG (51) : 그는 제게 그림을 가르쳐주고자 했습니다. 아주 즐거웠지만, 저는 나중에 그의 그림이 너무 틀에 박혀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함께 흐르는 피에 대한 영화[20]를 만들었죠. 그런데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계속 까먹게 되네요… 나이가 들면서 단어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파편화됩니다. 단어들이 정말로 많이 쓰였죠. 그리고 그것들은 종종 순탄히 다시 돌아왔습니다. 잠시 동안은 그랬죠. 제가 단어를 그다지 믿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CDC (52) : 그러면 더 나빠질 것도 없네요!
JLG (52) : 네, 더 나빠질 것도 없죠! 저는 신경 쓰지 않아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도, 이를 다시 되찾으려 하지 않고도 잠들 수 있죠. 단어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원한다면, 돌아오겠죠. 저는 미슐레[Jules Michelet]의 『프랑스 혁명사 L'Histoire de la Révolution française』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 책에는 파브르 데글랑틴(Fabre d'Églantine)이 체포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혁명력을 만든 사람이 바로 그입니다. 그는 시인이자 극작가였습니다. 저는 심지어 [그가 작곡한] "비 온다, 비 온다, 양치기야(Il pleut, il pleut, bergère)"라는 노래의 첫 소절 단어들조차 떠올리지 못했죠. 하지만 그 단어들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CDC (53) :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와 엘렌 프라파(Hélène Frappat)의 대담 제목인 "비밀과 법(Le secret et la loi)"(『카이에』 720호, 2016년 3월)이 <이미지 책>에 등장합니다. 당신은 시네마테크에 제출한 리베트에 대한 추도문[21]에서 이 경구가 모든 것을 개괄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리베트는 비밀(즉 개인적인 것)과 법(즉 상징적인 것) 사이의 변증법을 다뤘습니다. 저희는 법의 현혹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당신의 생각을 <이미지 책>에서 느낍니다. 헨리 폰다(Henry Fonda)는 <젊은 링컨 Vers sa destinée>에서 법전을 찾고 황홀경에 빠지지만, 3분 후에, 그는 <오인 Le Faux Coupable>에서 창살 뒤에 갇히게 됩니다. 법이 부당하기 때문이죠.
JLG (53) : 저는 리베트와 프라파의 그 대담을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들은 법이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법을 바꾸더군요. 저는 리베트와 같은 방식으로 법을 보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말이죠.
CDC (54) : 당신의 영화는 오히려 법에 반(反)합니다.
JLG (54) : 네, 하지만 저는 법을 좋아합니다. 테니스의 법을요.
CDC (55) : 그것은 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규칙이죠, 게임의 규칙이요!
JLG (55) : 사람들은 게임의 규칙에 합의하게 되죠.
CDC (56) : VAR(비디오 판독)을 통해 모두가 규칙과 관련한 '이미지의 모호함'을 발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JLG (56) : 저는 항상 심판의 편입니다. 비디오 화면의 경우는 믿지 않습니다. 심판이 화면을 확인하러 갈 때, 저는 그에게 제대로 된 장면이 제공되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일단 화면이 주어지면, 뭐라도 한 마디 하게 되죠. 이차적 해석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는 [VAR 없는] 단순한 법을 더 좋아합니다. 이 법은 심판을 착각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소리 지르게 만들죠. 골이 인정되거나 거부되면, 그저 다른 한 골을 넣으면 그만입니다.
제가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축구가 저를 제 청소년기와 연결해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청소년기, 혹은 이보다 조금 이후 시기의 기억 속에서 주로 살아가며 "예전이 더 나았어."라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날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면서, 동시에 하나의 변증법적 동인으로서 "예전이 더 나았어."라는 입장을 철저히 고수하죠. 지금은 아주 끔찍해 / 예전이 더 나았어 / 그러나 아마 지금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야.
CDC (57) : 대담 초반에 당신은 프랑스가 갖는 어려움들이 프랑스를 흥미롭게 만들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왜인가요?
JLG (57) : 프랑스는 미지를 향해 조금씩 헤엄쳐 나갑니다.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뒤섞어버리고 있죠. 프랑스는 무언가를 말하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합니다. 무언가를 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책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 뿐입니다. 저나 스트라우브는 세상을 변혁하는 데에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보는 것에 어울리며, 그게 전부입니다. 제게 스트라우브는 그만의 비타협적 태도를 통해 만들어진, 하지만 우리가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조각의 잔존입니다. 스트라우브의 영화들은 밋밋하지 않은데, 이는 그가 끊임없이 깊이 파고든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너무 거창한 예시일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작업에 착수했던 것처럼 말이죠. 세잔이나 몽테뉴에 대한 그의 영화, 그리고 토농(Thonon)과 로잔(Lausanne) 사이에서 난민이나 레지스탕스를 통과시킨 보주의 뱃사공(passeur vaudois)에 대한 그의 최근작(<호수의 사람들 Gens du lac>, 편집자 주)은 존경스럽기 그지없으며, 때로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저는 프랑스와 라틴 국가들이 북유럽 국가들보다 문제 해결에 더 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사회주의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자본주의를 이룩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굴곡이 많았죠. 페터 바이스의 책에는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에 대한 훌륭한 분석이 등장합니다. 그는 깃발을 든 여인이 아닌, 정장용 모자를 쓴 부르주아 남자에게 관심을 둡니다. 이 인물은 『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에 나오는 바리케이드의 영웅 앙졸라(Enjolras)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앙졸라는 강경파 투사이기 때문에 정확히 그를 떠올린 건 아닙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는 로맹 구필(Romain Goupil)을 떠올리게 합니다. 1968년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베트남 고등학생 위원회(comités Vietnam lycéens)를 설립한 구필은 당시에 저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죠. 지금 그는 BFM 아니면 LCI에 속해있습니다. 페터 바이스는 자신의 책에서 국제여단(Brigades internationales) 활동으로부터 살아남은 독일인으로 등장하는데, 그가 파리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한 일은 바로 루브르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들라크루아 그림 속] 부르주아 예복을 입은 인물을 보게 되는데, 이 인물은 소총을 가지고 있지만 쏘지는 않습니다. 바이스에 따르면, 그는 쏘기를 망설입니다. 물론 그는 시위에 가담할 것입니다. 그는 시위에 찬동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마치 1848년에 국민위병(Garde nationale)의 공격을 목도한 『감정 교육 L'Éducation sentimentale』 속 프레데릭 모로(Frédéric Moreau) 같죠. 모로는 거기서 오래된 친구를 알아봅니다. 이때 플로베르의 문장은 경이롭습니다. "그리고 프레데릭은 놀라, 입을 벌린 채, 세네칼을 알아보았다." 예전에는 극좌파였던 그 세네칼 말입니다. 그리고 뒤따르는 문장은 경이로운 몽타주를 이룹니다. "그는 여행을 떠났다."[22]
이런 것들이 제게 영감을 주어서, 저는 첫 파트 이후 '행복한 아랍(l'Arabie hereuse)'과 함께 극동으로 떠나게 되었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CDC (58) : 영화는 여행입니다. 우리는 이미 기차로부터 출발했죠.
JLG (58) : 네, 저는 "기차들의 놀라운 시퀀스(la séquence étonnante des trains)"라고 말하는 비평가들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들은 기차에 대해서만 말하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CDC (59) : 네, 그와 비슷하게 동시대의 예술가는 헛되이 수많은 기차 이미지를 수집할 수 있겠죠. 크리스찬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의 <시계 The Clock>에서 시계 이미지들이 수집되었던 방식을 따라서요.
JLG (59) : 저는 그걸 혐오하지만, 사람들은 찬탄합니다. 그건 물신 숭배적 수집이죠. 최소한 초현실주의자들은 콜라주(collage)에 대해 말했습니다.
CDC (60) : 반면 예술가들의 그런 [물신 숭배적] 작품들에는 (인과)관계/이야기(rapport)[23]가 없습니다.
JLG (60) : 저는 '영화로 된 보고서/기록물(rapport en film)'을 요구하는 정부는 아예 본 적이 없습니다. 정부가 이를 영화감독에게 요청할 수는 있겠죠. 만약 뤼팽[24]이라면 이를 잘 할 것입니다. 예전이었다면 크리스 마커(Chris Marker)에게 요청했을 수 있겠습니다. 그는 보고서/기록물에 대해서는 환상적이었으니까요. 저는 보고서/기록물에 대한 철학이나 학문 쪽에 더 끌립니다. 마커는 보고서/기록물에 몰두했죠. 학교에는 보통 각도기(rapporteur)라고 불리는 작은 도구가 있습니다. 저는 "몹쓸 각도기/밀고자(vilain rapporteur)"로 불렸는데, 제가 사소한 일들을 밀고(rapportais)했기 때문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프랑스어(langue française)는 그 타락함 속에서도 다른 언어에 비해 더 흥미로운 무언가를 갖고 있습니다.
CDC (61) : 프랑스어가 더 다층적이고 모호한가요?
JLG (61) : 프랑스어에는 많은 관계들(rapports; 어울림들)이 있습니다. 이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르베르디가 요구했던 것처럼 "멀리 떨어지고 적절한/정당한(lointaines et justes)"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현재 제가 있는 상황에 대한 예언처럼 보이는 두 편의 옛날 영화를 DVD로 다시 봤습니다. 바로 <누벨바그 Nouvelle Vague>와 <아메리카의 퇴조 Made in USA>요. <아메리카의 퇴조>는 별로 좋아하던 영화가 아니었는데, 제가 그 영화를 만들었던 방식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작품은 보르가르[25]를 만족시키기 위한 호객용 영화였고, 심지어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Deux ou trois choses que je sais d'elle>과 동시에 만들어졌습니다. 1시간 반 분량으로 시퀀스 길이를 늘려서 얼마간 관객을 끌고자 했었죠. 오늘날 저는 <아메리카의 퇴조>를 회화적 영화로 바라봅니다. <아메리카의 퇴조>는 그저 하나의 색깔 이후에 다음 색깔이 연이어 등장하는, 무정부주의-좌파-투사적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 이상 설명은 못하겠네요… 반면 <누벨바그>에는 오직 텍스트만 존재합니다. 저는 저를 돕던 에르베 뒤아멜(Hervé Duhamel)에게 흥미롭거나 요즘 표현으로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qui frappent)" 구절을 수집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그런 구절밖에는 없죠!
CDC (62) : <누벨바그>에 그런 구절들밖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빛이 있고, 자연이 있고, 밀물과 썰물이 있습니다.
JLG (62) : 네, 리버스 숏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체로 텍스트에 관한 영화입니다.
CDC (63) : <이미지 책>의 "행복한 아랍" 파트 초반부에는 바다에 대한 다수의 근사한 숏들이 등장합니다. 마치 해양화 같죠. 당신은 <언어와의 작별>에서 호수, <미치광이 피에로 Pierrot le fou>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랭보의 "태양과 함께 가는 바다(la mer allée avec le soleil)"에 이어 또다시 바다를 찍었습니다.
JLG (63) : 네, 하지만 예술가의 진화를 지켜보는 것은 비평의 몫이죠. 저는 그런 걸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CDC (64) : <필름 소셜리즘> 도입부에 석유처럼 검은 바다가 등장합니다. 당신은 바다를 다루는 보기 드문 화가 중 한 명입니다.
JLG (64) : 물론 인상주의자들을 따른 것입니다. 엡슈타인과 플래허티를 따른 것이기도 하죠.
CDC (65) : 알베르 코세리(Albert Cossery)의 『사막에서의 열망 Une ambition dans le désert』에서 발췌된 텍스트를 읽는 것은 누구죠?
JLG (65) : 장-피에르 고스(Jean-Pierre Gos)입니다. 저는 그가 비디 극장(théâtre de Vidy)에서 연기하는 것을 본 적 있죠. 그는 제가 만든 단편 <자유와 조국 Liberté et Patrie>에서도 연기한 바 있습니다. 원래 저는 배우를 쓰는 것을 선호해왔지만, 제가 직접 말하기도 하죠. 고스와 저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가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로부터 [통로를 통한] 제 목소리로의 이행은 항상 저를 조금 불편하게 만듭니다. 다른 모든 해설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목소리는 진실을 말할 때 높아집니다. 저는 낮아지는 목소리를 더 좋아하죠. 마침표(point)를 찍는 것처럼요. 배우들은 마침표를 찍는 것[문장을 마치는 것]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쌍반점(points-virgules; 세미콜론)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죠. 그들은 쌍점(double point; 콜론), 쌍반점, 마침표, 쉼표 사이의 차이를 구별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억양(intonations)이 있어야만 합니다. 퀴니[Alain Cuny]와 같은 과거의 몇몇 배우들은 이걸 알고 있었죠.
CDC (66) : 당신도 운율법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나요?
JLG (66) : 조금은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CDC (67) : "열렬한 희망"을 말할 때 기침으로 찍는 구두점이 아주 강렬합니다.
JLG (67) :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부분을 딱 두 번 녹음했는데, 거의 똑같은 텍스트를 말한 후에 이를 한 번에 중첩시키려고 했습니다. 바로 직전에는 으젠 쉬(Eugène Sue)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텍스트가 나오는데, 정말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가 없죠. (웃음)
CDC (68) : 그렇군요…
JLG (68) : 이 부분은 설치 작품의 형식을 통해 봐야만 합니다. 이 경우 말소리를 왼쪽에서 먼저 듣게 됩니다. 그 소리에 주목하게 되죠. 그런 다음, 말소리를 오른쪽에서 듣게 됩니다. 그러면 그 소리에 주목한 후 [반대편 소리와] 비교하게 됩니다. "아, 똑같은 텍스트가 아니군." 이런 중첩은 다른 장면, 즉 스텔리오 로렌지(Stellio Lorenzi)의 영화에서 가져온 로베스피에르의 의회 연설 장면에서도 등장합니다. [이런 장면을 방영한] 당시의 텔레비전은 시시하지 않았죠.
CDC (69) : 이 영화에서 당신은 트뤼포, 로메르, 리베트의 사진을 또 한 번 배치했습니다.[26] 세 명이 연달아 등장하죠.
JLG (69) : 제게 있어 그들은 누벨바그의 세 인물입니다. 『카이에』에 속해 있지 않던 로지에가 빠져있지만, 그는 혼자만으로도 누벨바그였습니다. 샤브롤은 그 밖의 인물이죠.
CDC (70) : [샤브롤의] <착한 여자들 Bonnes Femmes>까지의 초기작들도 누벨바그 밖에 있는 것인가요?
JLG (70) : 당시에 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샤브롤은 영화를 파는 것에 더 가까웠습니다. 트뤼포를 그와 같은 부류에 넣을 수는 없었죠. 비록 『히치콕 Hitchcock』을 집필했다 하더라도, 샤브롤은 약장수(pharmacien)입니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양의 영화를 찍었죠. 얼마 전에 저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타인의 피 Le Sang des autres>를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 영화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CDC (71) : 장-피에르 모키(Jean-Pierre Mocky)의 죽음이 당신에게 충격을 주었나요?
JLG (71) : 모키는 호감 가는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아주 좋아했죠. 그의 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요. 그래도 저는 그의 영화들에 호감을 가질 수 있는데, 그 영화들을 만든 것이 바로 그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제가 무척 좋아했던 작품이 하나 있긴 합니다. <싸움 기계 La Machine à découdre>요.
CDC (72) : 당신은 『카이에』 시절을 자주 떠올리나요?
JLG (72) : 네, 제 삶이니까요.
CDC (73) : 바로 그 지점이 <이미지 책>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입니다. 당신의 삶 전체가 켜켜이 쌓이죠. 당신은 당신에 관한 모든 걸 붙잡아두고 있습니다.
JLG (73) : 저는 『르뷔 뒤 시네마 Revue du cinéma』의 두 번째 호를 통해 시작했었죠. 당시 이 잡지는 갈리마르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도니올-발크로즈[Jacques Doniol-Valcroze]를 통해 『카이에』에 서서히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도니올-발크로즈는 제 어머니의 빅토르 뒤뤼(Victor-Duruy) 고등학교 동창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그가 저를 반겼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가 제대한 후 스위스로 망명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프랑스의 토농으로 그가 건너올 수 있게 해준 사람이 바로 제 어머니입니다. "트레뒤니옹(le trait d'union; 붙임표, 하이픈)"이라 불리던 작은 모터보트로 그를 도왔는데, 이 보트를 타고 할아버지 소유지로 자주 휴가를 떠나곤 했죠. 저는 이 사실을 도니올-발크로즈의 죽음 이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카이에』의 운영 방향에 반(反)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쟁과 함께 편집장이었으니까요. 그는 말 그대로 "젠틀맨(gentil homme)"이었습니다. 바쟁의 경우, 저는 트뤼포와 달리 그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바쟁을 알게 된 것은 그가 보자르(Beaux-arts) 바로 맞은편에 있던 공산주의 단체 '노동과 문화(Travail et Culture)'의 대표자가 되었을 때부터입니다. 그 앞에는 리베트의 루앙(Rouen) 출신 친구가 운영하던 작은 서점이 있었죠. 저는 이런 이야기에 조금씩 덧붙여진 것이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정말로 붙잡고 싶습니다. 저는 들라크루아라는 인물처럼 매사에 사려 깊었습니다. 그래서 리베트의 첫 단편영화 <카드리유 Le Quadrille>의 자금 마련을 위해 삼촌들 중 한 명에게서 약간의 돈을 훔치기도 했죠.
CDC (74) : 당신은 누구에게 가장 큰 친밀함을 느꼈나요?
JLG (74) : 리베트. 다음으로는 트뤼포이죠. 하지만 <개구쟁이들 Les Mistons>을 찍기 전까지만요. 그가 당시에 이미 마들렌 모겐스턴(Madeleine Morgenstern)과 결혼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아주 좋아하던 여자입니다. 그 시절 트뤼포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마들렌 모겐스턴의 아버지가 코시노(Cocinor)라는 이름의 프랑스 북쪽 지역 및 파리 지역 배급사의 사장이었거든요. 트뤼포가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Une certaine tendance du cinéma française)"을 썼을 때쯤에, 저는 그와 자주 어울려 다녔습니다. 리베트와는 덜 어울려 지냈죠. 당시에는 영화를 오후 2시에 보러 가서 자정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연속 상영이었거든요. 저는 한두 시간 정도 지나면 포기하고 나왔었습니다. 리베트는 끝까지 남아 있었죠. 로메르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교수였고, 소르본 앞의 작은 호텔에서 살았습니다. 원래 이름은 쉐레(Schérer)였지만, "로메르(Rohmer)"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방탕한 영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모르게 하기 위해서였죠. 이렇게 완전히 다른 세 친구들이 있습니다. 쉐레(저는 항상 그를 쉐레라고 부릅니다), 리베트, 트뤼포와는 진정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죠. 쉐레는 제가 어떤 여자를 사랑했는지 알고 있던 이들 중 하나였고, 저는 그가 공산주의자였던 CNC[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의 예전 기관장의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메르는 저보다 10살 더 많았으며, 바쟁과 피에르 카스트(Pierre Kast) 사이의 균형을 맞췄습니다. <이미지 책>에서 저는 파리 해방(Libération de Paris) 장면을 넣었습니다. 뒤돌아 서 있는 FFI[프랑스 내부 저항군] 한 명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등에 총을 메고, 무릎을 꿇은 여자에게 말하는 중이죠. 제게 이 뒤돌아 있는 남자는 항상 피에르 카스트였습니다. 저는 이 생각이 정말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CDC (75) : 당시에 당신은 『카이에』에서 정치적 논쟁을 펼치진 않았던 것 같은데요.
JLG (75) : 거의 하지 않았죠. 제겐 영화가 중요했습니다. 여자도 아주 개인적인 비밀이었을 뿐, 중요하지 않았죠. 알제리 전투 중의 한 순간이 기억납니다. 당시 저는 리베트와 알마 광장(place de l'Alma)에 있었습니다. 어떤 차가 "OAS[군사비밀조직]의 앵앵대는 소리(pin-pon OAS)"를 내며 지나갔었죠. 저는 이 장면을 더글라스 서크(Douglas Sirk)의 한 숏으로 보았습니다. 그러자 리베트가 제게 욕을 퍼부었죠. 당시에 저는 그런 장면들을 정치적으로 규정할 수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가장 쉽게 규정하는 사람은 바로 스트라우브죠. 그는 처음부터 그런 위치에 있었으니까요.
CDC (76) : 당신은 프랑스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습니다. 당신은 2019년에 경찰의 폭력으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봤죠. 경찰 권력이 커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JLG (76) : 정말 아주 강해졌고, 역겹습니다. 어쨌든 저는 영화 안에 머뭅니다. 게다가 저는 스위스인입니다. 프랑스에서 투표할 수 없었으니, 프랑스에는 외국인으로서 간 셈이었죠. 프랑스의 스위스 출신 단속반(brigade)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당신이 말한 것은 어디서든지 사실입니다. 러시아에서는 경찰 권력이 프랑스에서보다도 더 강하죠. 저는 항상 경찰과 군복무에 대한 혐오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폭탄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반-군국주의자입니다. <이미지 책>에서 제가 "나는 늘 폭탄 편을 들겠다."라고 말할 때, 영양을 어루만지는 남자의 이미지가 나오는 것을 사람들은 잊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미지와 텍스트를 연결 짓지 못하며, 텍스트에 의해 이미지가 반박되는 순간을 보지 못합니다. 이미지가 텍스트에 우선하는지, 혹은 그 반대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CDC (77) : 처음 감상할 때, 저는 어루만지는 행위만을 보았습니다. 두 번째 감상 때, 텍스트가 이미지를 퇴색시키더군요(déteignait). 그제서야 영양의 공포가 보였습니다.
JLG (77) : 분명히 확인하려면 두세 번은 봐야만 합니다. 편집하는 동안 저는 당신이 말한 의미에서의 영양의 공포를 보지 못했습니다. 영양은 떱니다. 다만 마치 어루만져주자마자 떠는 강아지처럼요. 우리는 과거 스페인에서 들것을 끌던 우리 강아지를 일주일에 세 번, 모임에 나갈 때 데려갑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번은 그가 달을 향해 짖어대기 시작하더군요. 달이 그에게 과거를 떠올리게 한 탓에, 공포를 느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길 강아지 출신이거든요. 그 장소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기뻐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주 세차게 짖어댑니다. 잭 런던(Jack London)의 소설에서처럼 달을 향해 짖어대야만 하는 것이지요.
저는 최근에 로지에의 단편영화 <신학기 Rentrée des classes>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거의 최초의 생태학적 영화로, 다른 누구보다도 한참 앞서 있죠. 또 <신학기>는 시민 불복종에 관한 영화입니다. 마치 소로의 책처럼요. 저는 불복종에 찬성하지만, 여전히 영화 안에 머무릅니다. 저는 한때 제가 세상사에 개입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때문에 안느-마리가 저한테 욕할 때 이렇게 말하죠. "세상으로 나가서 네 혁명을 일으켜봐. 그러면 오늘 커피는 없을 거야!" (웃음)
CDC (78) : 특히 유머 감각도 유지해야만 합니다.
JLG (78) : 우리는 『샤를리 에브도』가 다른 여러 만화가들을 찾는 데 겪었던 어려움을 봤습니다. 저는 여전히 빌렘[Bernard Willem Holtrop]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암흑 같은 불행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겠죠. "정말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시대야."
CDC (79) : 시대는 슬프면서도 아름답죠. 하지만 예술과 예술적 사유는 기술 지상주의(mystique technologique)에 의해 공격받기도 합니다.
JLG (79) : 자본주의가 치켜올리는 개인은 광고를 통해 자본주의가 박살내려는 개인이자, 동시에 그저 개인으로 남아 있는 개인입니다. 네, 슬픈 일입니다. 상당한 철학을 갖춰야만 하거나, 에드가 모랭(Edgar Morin)처럼 아주 열성적이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말이죠. (웃음) 현시대의 유해함은 바로 개인들이 항상 무언가를 발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멈춰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네요.
현재 저는 수학 관련 책을 읽고 있습니다. 게오르그 칸토어(Georg Cantor)에 관한 책인데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더군요. 칸토어는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바람에 약간 미쳐버렸죠. 이후 그는 수학적으로 무한을 사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유는 수많은 질문을 낳았고, 텍스트가 되어 다뤄졌습니다. 저는 수학의 역사를 추적하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비록 이해하지는 못해도요. 러셀[Bertrand Russell]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전체의 무한이 부분의 무한보다 더 큰가?" 제게 이 질문은 말이 안 되는데, 이 물음은 텍스트로 다뤄진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모네의 그림 하나를 보는 편이 낫죠.
제가 구상하던 프로젝트가 하나 있습니다. 19세기 노르웨이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Niels Henrik Abel)의 이야기에 관한 것이었죠. 그는 자신이 5차 방정식을 발견했다고 믿었습니다. 2차 방정식[뒤집어 보는 시선][27]에 머물러 있었던 저는 그에게서 무언가 깨달을 만한 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파리에 와서 과학 아카데미의 수학자 코시[Augustin-Louis Cauchy]에게 자신의 정리를 제출했지만, 코시는 이를 그다지 흥미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걸어서 왔다가, 다시 걸어서 돌아갔습니다. 결국 그는 5차 방정식에는 해(解; 해답)가 없음을 논증하였습니다. 이후 필즈상과 유사한 아벨상이 생겼죠. 저는 이 [아벨의] 여정에 관한 영화를 찍을 구상을 했습니다. 가는 길에서는 계속해서 파리에서 발표할 명제를 논증하고, 돌아오는 길에서는 그 역을 증명하기 시작하는 거죠.
투쟁이 벌어지던 시기에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규탄하지 않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리." 사람들은 아직 완전히 붓끝에 이르지[붓끝을 휘두르지] 못했지만, 계속 시도는 했죠. 붓과 물감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북베트남인들에게 한 편의 영화[28] 제작을 제안한 적 있습니다. 우리는 폭격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는 『베레니스 Bérénice』를 공부 중인 한 학급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는 지하에 숨어 수업을 계속하는 그들을 쫓아갑니다. 마지막 숏에서 그들은 『베레니스』 공부를 이어가며 이 구절을 읽습니다. "한 달 후, 일 년 후, 우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영화의 이 부분은 별로였습니다. 너무 전술적이고, 너무 분명했었죠. 하지만 라신[Jean Racine]의 이 구절은 제 다음 영화인 <시나리오 Scénario>에 등장합니다. 저는 이것이 어떻게 조금씩 성립되는지, 어떻게 시내가 강보다 앞서 흐르는지, 어떻게 길이 나 있는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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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대담은 2019년 9월 18일 스위스 홀르(Rolle)에서 스테판 들롬(Stéphane Delorme)과 조아킴 르파스티에(Joachim Lepastier)에 의해 이뤄졌다. (한국어 번역 : 김도형 & 임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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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의미를 내포하는 프랑스어 'langue'는 크게 두 가지 의미, 즉 (a)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등 통상적인 '언어'의 의미와 (b) 소쉬르적 맥락에서 '랑가주'와 대비되는 '랑그'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대화 맥락에 맞게 'langue'를 '언어'와 '랑그' 중 하나로 선택하여 옮겼으며, 필요한 경우 그 둘을 같이 표기하였다. 또한 'langue'와 대비되어 개념적 차원에서 거론되는 'langage'는 '랑가주'로, 그리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언급되는 'parole'은 '파롤'이 아닌 '말'로 통일하여 번역하였다. (추가로 고다르의 'langue'와 'langage' 개념에 대해서는, 이를 푸코의 용어와 연결지어 사유한 유운성의 「아르케이온의 도둑」(『오큘로』 9호) 47쪽을 참고하라.)
[2][↺] 고다르가 언급한 이 대목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내게 1초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루가 있어야만 한다. 내게 1분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1년이 있어야만 한다. 내게 1시간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생이 있어야만 한다. 내게 하루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원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행하고 있는 역사를 제외하고는."(« Il me faut une journée pour faire l'histoire d'une seconde. Il me faut une année pour faire l'histoire d'une minute. Il me faut une vie pour faire l'histoire d'une heure. Il me faut une éternité pour faire l'histoire d'un jour. On peut tout faire, excepter l'histoire de ce que l'on fait. »)
[3][↺] 'x+3=1'이라는 방정식과 관련해서는 2018년 칸 영화제에서의 고다르의 발언을 추가적으로 참고하라. ☞ 링크 "제가 방정식을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영화는 'x+3=1'이다. 이때 'x'는 '-2'다.> 두 개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세 번째 이미지를 찾으려면, 두 개의 이미지를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화의 열쇠(clé; 핵심)이지만, 자물쇠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J'ai fait une équation une fois, un film c'est x+3 =1, x est égale à moins 2. Quand on fait télescoper deux images pour en trouver une troisième, il faut en supprimer deux, c'est la clé du cinéma mais il ne faut pas oublier la serrure. »)
[4][↺] 프랑스어 'plat'는 형용사 '밋밋한', '평평한', '납작한' 그리고 명사 '접시'의 의미 모두를 지니고 있는 단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대화 맥락에 맞게 'plat'를 ('평평한', '납작한' 등의 의미를 모두 함축하는) '밋밋한' 혹은 '접시'로 번역하였다.
[5][↺] 프랑스어 'mettre les pieds dans le plat'는 원래 일종의 관용어로서 '실수를 저지르다', '무례한 언동을 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plat'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직역하여 '접시/밋밋함 안에 발을 집어넣는 것'이라고 옮겼다.
[6][↺] 블랑쇼의 『기다림 망각』(박준상 옮김, 그린비, 2009) 85쪽 참고.
[7][↺] 이는 <신독일영년> 47분 40초경에 등장하는 장면(☞ 링크) 속 대사로, 고다르가 <신독일영년>에서 차용/변용한 브레히트의 시구의 원문 및 프랑스어,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 원문 : In den finsteren Zeiten, / wird da auch gesungen werden? / Da wird auch gesungen werden. / Von den finsteren Zeiten.
- 프랑스어 : Chantera-t-on encore / Au temps des ténèbres ? / Oui, on chantera / Le chant des ténèbres.
- 영어 : In the dark times / Will there also be singing? / Yes, there will also be singing / About the dark times.
[8][↺] 르베르디의 사유에 관한 개괄은 김용민의 「르베르디의 이미지론」(한국불어불문학회, 1993)을 참고하라. 한편, 『카이에』 측이 인용한 부분의 전문에 대한 김용민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접근된 두 현실의 관계가 멀면 멀수록, 그리고 적절하면 적절할수록 이미지는 보다 강력할 것이다. 즉, 보다 큰 감동력과 시적 현실성을 얻게 될 것이다."(« Plus les rapports des deux réalités rapprochées seront lointains et justes, plus l'image sera forte – plus elle aura de puissance émotive et de réalité poétique. »)
[9][↺] 고다르는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문장('보편적 법은 곧 파괴다')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재자 한 개인의 말이 보편적 법처럼 기능했던 경우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그는 독재자가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수천, 수만 구의 사체가 나왔는데, 그것이 '말'과 같은 동물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임을 명확히 지적한다. 당시 기병대의 존속은 '말'이 죽어 나가지 않았다는 것의 근거다. 그리고 <이미지 책> 전반에 걸쳐 '말'의 모습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말'이 쓰러지는 모습은 8분 20초경에 삽입되는 조르주 프랑쥐(Georges Franju)의 <짐승의 피 Le Sang des bêtes>의 한 숏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0][↺] <언어와의 작별> 중 릴케가 언급되는 대목은 27-28분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 Ce qui est au-dehors, ecrivait Rilke, nous ne le savons que par le regard de l'animal. » 고다르는 원문에서의 동사 'connaître'와 명사 'yeux'를 각각 'savoir'와 'regard'로 바꾸어 사용했다. 한편, 『카이에』 측의 인용(원문은 다음과 같다: « Et Darwin, citant Buffon, affirme que le chien est le seul être sur terre qui ne vous aime plus qu'il ne s'aime lui-même. »)은 앞서 언급한 문장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것으로, 이는 사실 릴케의 말이 아니라 뷔퐁을 인용한 다윈의 말이다.
[11][↺] 안느-마리 미에빌의 말은 <이미지 책>의 1시간 22분경 참고: "내버려진 땅, 알파벳 문자들로 뒤덮여, 지식에 짓눌려 질식하며, 들으려는 귀는 더 이상 없다."(« La terre abandonnée, surchargée de lettres de l'alphabet, étouffée sous les connaissances et plus guère d'oreilles qui soient à l'écoute. »)
[12][↺] <이미지 책>에 인용되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문장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기에, 세상의 지배자들이 두려워한다."(« Les maitres du monde devraient se méfier de Bécassine précisément parce qu'elle se tait. ») 신은실의 「중앙 지역의 고현학(考現學)」(『오큘로』 9호) 80쪽 참고.
[13][↺] 프랑스어 'plan'은 (영화에서의) '숏', '평면', '지도', '구상', '계획'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다. 본문의 'plan'은 대부분 영화 용어의 맥락에서 ‘숏’으로 번역했으나, 모리스 피알라(Maurice Pialat)와 관련된 고다르의 말에서 'plan'은 다른 'plan'들과 중첩되거나 이어질 수 있는 '평면'이라는 단어로 번역하였다.
[14][↺] <이미지 책>의 37분경에 등장하는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이미지는 사실 리차드 아베든(Richard Avedon)이 아닌 버트 스턴(Bert Stern)이 찍은 사진이다.
[16][↺] 디디에 쿠로(Didier Coureau)의 「장-뤽 고다르: 시네아스트의 자화상(들)」이라는 제목의 2009년도 글(☞ 링크)에 따르면, <영화의 역사(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리고 고다르가 직접 발화하는 해당 텍스트는 보르헤스가 인용한 새뮤얼 콜리지(Samuel Coleridge)의 텍스트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 Si un homme traversait le paradis en songe, qu'il reçut une fleur comme preuve de son passage et qu'à son réveil, il trouva cette fleur dans ses mains, que dire alors? J'étais cet homme. »
[17][↺] 드니 드 루즈몽의 『손으로 생각하기 Penser avec les mains』 1972년도 판본(☞ 링크)을 보면 원문은 다음과 같다: « Car c'est en espérance que nous sommes sauvés, mais cette espérance est certaine. » 고다르는 루즈몽의 문장에서 'sauvés'를 'vivants'으로, 'certaine'를 'vraie'로 바꿔 인용했다.
[18][↺] 막스 오퓔스(Max Ophüls)의 <쾌락>의 원작은 모파상의 『가면 Le Masque』, 『메종 텔리에 La Maison Tellier』, 『모델 Le Modèle』로, 여기서 고다르는 『가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9][↺] 사르트르가 쓴 원문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 La conscience est un être pour lequel, il est dans son être question de son être en tant que cet être implique un être autre que lui. »(Jean-Paul Sartre, L'Être et le néant: Essai d'ontologie phénoménologique, Gallimard, 1943, p.29) 고다르는 사르트르의 문장을 인용할 때 'conscience'를 'philosophie'로 대체했다.
위대한 지성들은 지껄였다
숨가쁘게 동족상잔에 대해서,
알파벳을 고문하면서
소크라테스에서
구글에 이르기까지 헛되이 :
권세와 영광,
자유와 우애,
평화와 전쟁,
무한과 총체,
빈곤과 민주주의,
공포와 미덕,
시와 진실,
기타 등등,
잠깐 나는 덧붙이고 싶었다
자연과 은유를
이 모든 소란스러움에,
현실을 파악했다고 믿으면서, 마치
프로들과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말해지는 것처럼,
뒤섞으면서 숏과 리버스-
숏을,
그러나 이는 곧 벗어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헛됨으로부터, 루앙의 어린
소년이, 그의 영화 인생에서 선두를
마침내 되찾았으며,
단순하고 복잡한 사람이었던
그는 연합했다
자기 자신과 그리고 정확하게 선언했다 :
비밀과 법, 왜냐하면 스크린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장-뤽 고다르, 2016년 3월
[22][↺] 본문 속 플로베르의 문장은 모두 『감정교육 2』(지영화 옮김, 민음사, 2014) 280-281쪽을 참고했다.
[23][↺] 프랑스어 'rapport'는 '이야기', '보고(서)', '(인과)관계', '어울림', '유사성', '비율'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고다르는 'rapport'의 다층적 의미를 활용하여 일종의 말장난을 시도하고 있는데, 'rapport'나 이로부터 파생된 단어가 사용된 경우 모두 원어를 병기했다.
[24][↺] 프랑수아 뤼팽(François Ruffin)은 프랑스 정치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고마워요 사장님! Merci patron!>, <햇볕을 쬐고 싶어요 J'veux du soleil>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25][↺] 조르주 드 보르가르(Georges de Beauregard)는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À bout de souffle>, 드미의 <롤라 Lola>, 로지에의 <아듀 필리핀 Adieu Philippine> 등의 프로듀서였다.
[26][↺] 고다르는 <프랑스 영화의 2 X 50년 Deux fois cinquante ans de cinéma français>(☞ 링크)에서 로메르, 트뤼포, 리베트 순으로 그들의 글과 사진을 삽입한 바 있다.
[27][↺] 프랑스어 'équation du second degré'는 ‘이차방정식’을 뜻하지만, 동시에 '은유적인', '암시적인', '바로 이해할 수 없는', '해학적인', '뒤집어 보는' 등의 의미도 지닌다.
[28][↺] <머나먼 베트남 Loin Du Vietnam> 도입부에는 일련의 폭탄 이미지가 삽입되며, (<머나먼 베트남>에 수록된) "카메라-눈(Camera-Eye)"에서는 한 학급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하지만 "카메라-눈"에서 『베레니스』에 관한 이미지나 사운드는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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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시나리오 Scénario>의 시나리오 (p.16)
우린 위층으로 올라갔다. 장-뤽 고다르의 사무실과 편집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편집실 안쪽 끝에서 책과 DVD로 가득 찬 선반을 발견했다. 선반 아래편에는 '랑그의 타락함'을 보여주는 이미지, 즉 입에서 나오는 도마뱀 이미지가 있다. 옆쪽에는 <오르페의 유언 Le testament d'Orphée>이 포함된 장 콕토 컬렉션 VHS가 있는데, 고다르는 우리에게 "<이미지 책>에 가장 인접한 영화"라고 말했다.
"이건 <시나리오>라는 제 다음 영화의 시나리오입니다. 각 선반당 시퀀스 하나씩 배치되어 있어요. 영화는 총 6개의 시퀀스로 구성됩니다.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마치 전투 대형과도 같죠. 이를 바꾸진 않을 거예요. 구성하는데 6개월, 1년이 걸렸거든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natura rerum)', '아케나톤(Akhenaton)', '아르시의 국회의원(Le Député d'Arcis)', '페이크 뉴스(Fake News)', '고정 관념(L'idée fixe)', '베레니스와 함께(Avec Bérénice)'. 먼저 '아르시의 국회위원'은 지방 선거에 관한 발자크의 단편 소설을 각색한 것입니다. '아케나톤'은 그냥 갑자기 떠오른 시퀀스인데, 단절(rupture)을 만들기 위한 부분입니다. 나기브 마푸즈(Naguib Mahfouz)의 멋진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아마 다른 영화로도 각색된 적이 있는 소설일 겁니다. 유일신을 창조한 파라오 아케네톤이 누구였는지 조사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사무실에서 고다르가 <시나리오>에 대한 노트를 보여준다.
"이건 6개 시퀀스로 되어있는 <시나리오>의 시나리오입니다. 표지는 파라자노프의 그림에서 따왔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 '베레니스와 함께'에 관한 페이지에서, 우리는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만화가 코코(Coco)의 엠마누엘 마크롱 풍자화를 발견했다. 그 옆에는 수정액으로 약간 수정된 라신의 비극 한 구절이 있다. "한 달 후, 일 년 후, 우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 폐하, 이토록 큰 씁쓸함이 당신과 나를 갈라놓게 되면." ("이토록 큰 바다(tant de mers)"를 "이토록 큰 씁쓸함(tant d'amer)"으로 수정)
2. 그림들 (p.19)
위층에 있는 첫 번째 방의 책장 아래 편, 우리는 고다르의 그림들이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다르가 책상 위에 그림 한 점을 올려 놓았다. "이건 들라크루아의 하늘인데, 원래는 수채화였지만 제가 과슈(gouache; 고무 수채화법)로 다시 그린 겁니다." 우리는 사진 한 장 찍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는 "아, 그러죠. 렘브란트나 벨라스케스를 밖으로 꺼내주기만 한다면야…"라고 답했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벨라스케스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