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침묵을 통한 침묵 들여다보기: 킥 더 머신 다큐멘터리 콜렉티브의 〈침묵 Silence〉(2020)

• 참고: 〈침묵 Silence〉(2020)은 옵/신 스페이스에서 2021년 10월 29일부터 2021년 11월 14일까지 감상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 ☞ 옵/신 페스티벌 사이트)


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13시, 옵/신 스페이스에서 킥 더 머신 다큐멘터리 콜렉티브(Kick the Machine Documentary Collective)의 〈침묵 Silence〉(2020)을 봤다. 〈침묵〉은 〈메모리아 Memoria〉(2021)와 더불어 올해 본(혹은 ‘체험’한) 것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광주 ACC의 의뢰를 받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이끄는 팀)이 제작한 침묵은 ’1976년 10월 6일 탐마삿대학교 학살 사건’에 관한 2채널 영상설치작품이다. 한 스크린(왼쪽 스크린)에는 다종다양한 사진, 영상 푸티지들을 비롯한 무빙-이미지가, 다른 스크린(오른쪽 스크린)에는 (디스토피아적 소설의 분위기를 풍기는) 텍스트-이미지가 주로 나열된다. 

두 개의 스크린은 옵/신 스페이스 지하, 어두운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 각각의 스크린에 투사되는 이미지는, 물론 한 공간 내에 존재하긴 하지만, 물리적으로 독립되어 있다. 즉, 여기 이미지와 저기 이미지는 일견 ‘직접적으로/상호적으로’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두운 공간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오로지 두 스크린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이기에,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이 그 두 이미지를 이어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어본다’라는 행위다. (문득 2018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아피찻퐁이 선보인 장소특정적 미술작품 별자리 Constellations의 감상 방법이 떠오른다. 구 국군광주병원 내 특정 공간, 사물, 이미지 등이 ‘별’이라면, 여러 개의 별을 이어서 하나의 ‘별자리’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관람객의 몫이다.) 어두운 공간에 붕 떠 있는 듯한 두 스크린의 이미지들을 이어보는 것은 순전히 나의 문제, 정확히는 나의 의지의 문제다. 그런데 일견 ‘직접적으로/상호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이미지를 이어보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천하면, 그 두 이미지가 기묘하게 공명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예를 들면, 침묵의 초반부. 왼쪽 스크린에는 누워 있는(그러나 죽은 것인지, 잠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자의 이미지가 나열되고, 오른쪽 스크린에는 ‘어느 날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은 텍스트-이미지가 나열된다. 이 이야기(의 초반부)는 대강 다음과 같다: ‘그 누군가가 꿈에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계속 잠을 자며 꿈을 꾸려고 한다. 그러다 전국 꿈 대회가 열린다. 그 누군가의 꿈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 일련의 이야기는 왼쪽 스크린의 이미지와 일견 무관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무관하진 않다. ‘어쩌면 이 일련의 이야기는 왼쪽 스크린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을 기반으로 아피찻퐁이 픽션화한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느낌’이 불쑥 든다. 

계속 여기 이미지와 저기 이미지를 이어보다 보면, 어떤 링크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그 지점은 바로 ’욕설=음악 코드’를 표기한 텍스트-이미지가 나올 때다. 이때부터 왼쪽 스크린과 오른쪽 스크린이 동기화된다. 이미지가 양쪽 스크린에서 번갈아 나오기도, 동시에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 오른쪽 스크린에는 더 이상 이미지가 나오지 않고(즉, 블랙아웃 상태가 되고), 왼쪽 스크린에만 점점 확대되는 빨간 원의 이미지가 나온다. 이 압도적 순간 이후에, 왼쪽 스크린에 ’10.6 사태’ 영상 푸티지들이 가감 없이 연쇄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오른쪽 스크린에 나타나는 텍스트-이미지의 이야기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이야기(의 후반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부가 어둠 속으로 도망친 그 누군가를 찾기 위해 불꽃놀이에 예산을 모두 쓰고, 다른 사람들은 그 불꽃놀이 소리 때문에 귀를 막는다. 그 누군가는 더 이상 이미지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다.’

죽임을 당한 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고, 죽인 자는 침묵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 강제된 침묵과 의도적으로 선택된 침묵. 여기에 아피찻퐁은 또 다른 침묵, 즉 수면이라는 축을 추가하여 ‘침묵을 통한 침묵 들여다보기’를 행한다. 결국 침묵은, ‘수면의 정치적 아이디어’[1]를 근간으로 하는 픽션을 (무빙-이미지화하지 않고) 텍스트-이미지화하고, 이를 학살의 가해자들이 숨기려고 했던 ‘바로 그 이미지’와 이어보게 만듦으로써 잊힌 기억과 역사를 지금, 여기에 적극적으로 (재)소환하는 작업이다. 침묵은 학살의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이 학살을 방관한 자들, 혹은 알려고 하지 않는 자들 모두를 저격하고 있다. 욕설을 드러내는 데 마다하지 않는 태도, 혹은 욕을 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 그대로 투영된 침묵은 아마도 아피찻퐁의 가장 노골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주

[1] ‘수면의 정치적 아이디어’, 이는 아피찻퐁의 표현이다.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수면의 경험은 본질적으로 영화, 어둠에 잠긴 방 안의 장치와 연관되어 있어요. 우리는 수면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미지의 세계 내부로 들어갈 수 있죠. 그 안에서 깨어있는 삶에 대한 실마리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맞아요. 어떤 의미로는 수면은 무기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우리가 잊어버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들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Cahiers du cinéma, janvier 2019, 번역문)

※사진

All photos were taken by KIM Do-Hyung (in Ob/Scene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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